지난 주말, 3년 5개월간의 서울 생활을 마치고 동생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2년의 회사 생활 후 공백기를 보내다 고심 끝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취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신이 그 결정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일주일안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년 5개월 동안 멈춰있던 동생의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계약이 한참 남은 월셋집이 가장 걱정이었다. 다행히 아직 방이 나가지 않았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빼주었다. 지원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와 면접을 봤고, 관련 자격증을 땄고, 고향 집으로 이사를 하고 전입신고까지 마쳤다. 엉성하게 비어 있던 동생의 방에 다시 책상과 책장, 컴퓨터를 들이고 나니 언제 서울 생활을 했냐는 듯 예전 그대로였다.
나도 2, 30대에 방황을 많이 했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방구석에서 고민만 하다 자책하며 흘려보냈던 시간이 있다. 하지만 나는 중간중간 공백이 있었어도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갔었고, 동생은 이런저런 일을 하였기에 경력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더 고민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
딱히 친구나 지인을 만드는 것에 별 뜻이 없는 동생은 서울에서 만날 사람이 누나인 나밖에 없는 걸 알았기에 일주일에 한 번은 불러내어 밥을 사주고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돌아다녀야 한다며 불러내어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같이 다니곤 했다. 동생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나 혼자가 아니니 든든한 구석도 있었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동생이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래. 잘 생각했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서운한 감정도 스쳐 갔다.
‘이제 또 혼자구나.’
3남매의 첫째인 나. 동생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동생이 나의 20대처럼, 30대처럼 길을 찾지 못하고 방구석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동생도 그런 것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서울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돈도 덜 들이고 고생도 덜했을 것이고, 내가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면 공백도 그렇게 길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들이 나를 괴롭혔다. 난 첫째이니 모든 것이 처음이고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디게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
‘결심’이 아닌 ‘결정’을 해라.
동생은 드디어 결정을 한 것이고, 제 길을 찾은 듯 술술 풀리고 있다. 북적이고 외롭고 치열한 서울에서의 시간이 앞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아직 면접 합격 소식까지는 듣지 못했다. 부디 잘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어찌됐건 동생 일은 그렇게 되었고, 이젠 내가 결정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