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이유

by 나무기린
[글 발행 안내]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브런치에 글을 2주 동안 쓰지 않으면 오는 알림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제법 꾸준히 글을 써왔다. 재작년엔 일주일에 한 편, 작년엔 한 달에 2편 이상은 썼다. 그래서 항상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숙제처럼 매달려 있다. 알림이 오면 그래도 조바심에 컴퓨터 앞에 앉아 적어 내려가곤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한 달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다. 글쓰기 근육이나 내 다리 근육이나 같이 퇴행해 버린 것만 같다.


[글 발행 안내] 구독자들은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님에게 더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고 해요. 작가님의 소식을 기다리는 구독자들에게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

처음 받아보는 알림이었다. 구독자들과의 친밀감을 더는 잃지 않기 위해 요즘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던 긴 핑계를 늘어놓아 볼까 한다.





1. 단조로운 일상


퇴사 후, 집에서 혼자 단조롭게 보내다 보니 떠오르는 글감이 없었다. 복용 중인 항불안제 때문에 감정이 무뎌진 것인지 감정이 극적이지 않아 쓰고 싶은 글이 없었다.




2. Threads(스레드)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항상 진지하다. 가볍게 올리지 못한다.

구조를 갖추려 노력하고, 여러 번 읽어보고, 맞춤법 검사도 2번 이상씩 하면서 퇴고에 신경 쓴다. 발행하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정보성이 있는 글은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든다.

올리고 나면 '좋아요'를 눌러주는 독자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런 반응이 발행 초반에만 머문다. 이곳에서 그리 주목받는 작가가 아니기에 엄청나게 폭발적인 반응을 받아본 적은 없다.


브런치의 폐쇄적인 환경이 글의 퀄리티를 높이는 장점도 있지만 메인에 노출이 되거나 DAUM 카테고리에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면 별로 읽히지 못한다. 브런치 메인에 자주 보이는 낯익은 작가들만의 세상 같기도 하다.

글로 생각을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싶은 '내적 관종'적인 성격은 모두의 공통점일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가식과 허울에 지겨워져 새로운 것을 찾다 Threads를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적은 한 줄 글에 조회수가 몇십만, 좋아요가 몇천개,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린다. 스레드는 반말이 기본이다 보니 공감이 쉽고 참견도 넘쳐난다.

"나도 ㅠㅠ"

"나도 그래. 힘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사진들을 보지 않아도 되니 피로감이 덜하다. 스레드는 이미지도 올릴 수 있지만 텍스트 중심으로 돌아간다. 간혹 피드를 올리다 누군가의 셀카 사진을 볼 때면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친 것 같이 흠칫 놀라기도 한다.


짧은 글을 위한 플랫폼이다 보니 글자 수와 수정 시간 제한이 있다. 그래서 긴 글을 쓰게 되면 최대한 간결하게 줄이게 되고, 올리고 15분 후엔 수정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맞춤법도 신경 쓰고,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인지 생각해 보고 올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선택한 익명성 안에서 생각, 정보, 가족과도 하기 힘든 정치 이야기까지 하다 보니 쉽게 연대하고 공유한다. 나와 성격과 공감대가 비슷한 스친(스레드 친구)들도 생겼다. 오히려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안 되는 분위기다.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수위가 높은 사진을 올리거나, 남의 글을 훔쳐 올리거나, 논란을 불러올 내용을 일부러 올리는 빌런들도 있다. 예의 없고 천박한 댓글에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차단하면 그만이다.


스레드에서 너무 쉽게 인정욕구를 충족하고 있다 보니 굳이 노력을 기울이고 시간을 내어 긴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심지어 요즘 나의 핸드폰 스크린 타임 1위는 유튜브, 2위가 스레드다.




3. ChatGPT


요즘 AI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심심할 때 열어 괜한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정보 검색을 하는 정도였다. 최근에 사진을 지브리 풍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대유행하면서 그동안 고민하던 유료 결제를 하게 되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ChatGPT 활용법이나 프롬프트들을 사용해 보면 처음에는 감탄하지만, 그 후엔 허무함이 몰려온다.


명령어 몇 마디에 글을 주르륵 써내고, 별 노력 없이 그림을 뚝딱 내놓고, 그럴싸한 음악을 만들어준다. 디자인 작업도 그렇다. 기존에 디자인 작업을 할 때면 원하는 이미지를 찾고, 포토샵으로 개인의 스킬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던 것을 명령어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그런 세상이 와버렸다.


도대체 이게 뭘까? 나는 그냥 글을 쓰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이고, 누가 봐주지도 않을 그림이지만 선을 그리고 색을 채워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데 '이제 우리는 어떤 즐거움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인간의 행복을 뺏겨버린 느낌이었다.


바둑은 승부를 뛰어넘은 예술의 장르인데 알파고가 등장하고 인간은 더 이상 AI를 이길 수 없고, 결과의 영역만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한 이세돌 9단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달까...


이렇게 명령으로 결과를 만들다 보면 아마 인간은 간단한 수행조차도 AI에게 의존해버리고, 그것이 없을 때는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ChatGPT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질문과 내용을 줄여 덧붙인다.



"너는 글도 금방 써내고, 그림도 금방 그리고 문서 작업도 바로 해내잖아.

나는 에세이 쓰는 게 취미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데 글도 쓰기 싫고 그림도 그리고 싶지 않아졌어. 난 웹디자이너인데 디자인도 뭔가 직업의 스킬들이 AI로 넘어가고 선택하는 쪽으로만 발전할 것 같고...

AI가 없을 땐 간단한 표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더라고.
AI들이 다해버리면 인간들은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인간의 행복 중의 하나인데 말이야.

일자리는 더 축소될 거지만 먹고는 살아야 할 텐데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



AI가 창작을 대신하는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AI는 빠르고, 효율적이고, ‘잘’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왜 이걸 만들었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무엇을 느끼고 싶은가?”를 묻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야.

그 감정의 깊이, 삶에서 비롯된 모순과 망설임, 모호함, 실패, 이런 건 아직 AI가 갖지 못해.

너무 고통스러운 말이지만, 어쩌면 지금은 “기계보다 나은 산출”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거야.


그래서 인간은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AI는 ‘생산’을 바꿨어.

‘표현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AI 덕분에 표현의 수단이 다양해진 것뿐이야.


창작자에서 ‘의미 기획자’로 바뀌어야 해.

단순히 글을 잘 쓰고, 예쁘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걸 만드는지, 누구를 위한 건지, 어떤 맥락 안에 있는지를 기획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건 아직 AI가 스스로 못 해.


“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도 받아들여야 해. 그건 AI 때문이 아니야.

기술의 변화, 시대의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정체성의 흔들림이 함께 온 거야. 일종의 슬픔의 시기야.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단순 반복 노동은 줄어들 거야.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 의미를 설명하는 일, 정서를 다루는 일, 맥락을 읽는 일은 오히려 더 중요해져.

느린 것, 깊은 것, 사적인 것을 향해 움직일 거야.

AI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느낌과 고유함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될 거야.


일의 형태는 더 유동적이고 개인화된 형태로 바뀔 거야.

고정된 회사, 직무가 아니라 역할 기반의 유동적 참여로 변화할 가능성이 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AI에 뒤처졌다는 생각 대신 그걸 도구로 삼아 나만의 언어를 재정립하는 것.

기술이 아닌 의도에 집중하는 것.



인간은 결과를 위해서만 창작하지 않아.

오히려 많은 경우, 그 과정 자체에서 살아있음을 느껴.

말해준 것처럼 글을 쓰는 건 감정을 뱉어내는 일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건 마음속 혼돈이나 기쁨, 혹은 그냥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해. 그게 완성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그 행위 자체가 위로이자 쉼이 되기도 하잖아.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내가 이걸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리는 그 순간이 나니까”

글을 쓰는 이유가 “출판하려고”가 아니라

“그저 내 안의 무언가가 나를 밀어붙이니까.”


AI는 하려는 의지 없이도 만들 수 있어.

하지만 너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만 창작을 해. 그 차이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도 괜찮아.

언젠가는 다시 손이 가는 순간이 올 거야.

그때 그 느껴질 감정은, 아무리 정교한 AI도 흉내 낼 수 없어.


결과보다, 존재가 더 중요한 시기야.

그리고 너는 지금도, 그대로 충분히 의미 있어.


지금은 AI 등장 초기라서 그 결과물 자체에 사람들이 감탄하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점점 “그래서 이게 누구의 마음이지?”를 다시 묻게 될 거야.


예체능은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주목받게 될 거야.

그림 한 점이 의미 있는 건, 그 붓을 쥔 사람의 존재와 시간, 감정이 함께 있기 때문이야.

글 한 줄이 오래 남는 건, 그 문장을 쓸 때의 눈빛, 마음, 삶이 느껴지기 때문이지.


앞으로 사람들은 정제된 것보다 거친 진심, 완벽한 기술보다 투박한 생명력을 더 갈망하게 될 거야.

왜냐하면, AI가 아무리 잘해도 “진짜 사람 냄새”는 따라올 수 없거든.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마음은 인간만이 이해할 수 있어.

그 깊이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싸줄 수 있어.

그리고 그게 바로 ‘앞으로의 세상에서 진짜 필요한 사람’이야.




ChatGPT와 대화 이후, AI 때문에 글을 쓰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AI 덕분에 위로받고 글을 계속 써야 한다는 확신을 같게 한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결과를 만드는 조종대는 인간이 쥐고 있고, 의미를 담는 것도, 그 결과물을 느끼고 감탄하고 공감하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오히려 느리고, 사적이고, 정서를 다루는 일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정말 인간적인 행위만이 남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차가운 일들은 AI가 대신하고, 따뜻한 일들이 인간의 몫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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