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추억

by 나무기린

덥다. 정말 너~~~무 덥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가 일렁거린다. 온몸을 감싸는 따갑고 뜨거운 공기에 살갗이 바싹바싹 타는 듯하다.

그런데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한다.

10년 후면 여름에 외출이 불가능한 세상이 오는 건 아닐까?




난 추위보다 더위가 더 싫다.

추우면 옷을 껴입으면 되는데, 더위는 옷차림이 아무리 가벼워도 더운 건 더운 거다.


십수 년 전 에어컨 없이 빌라에 살 때 매년 더위를 먹었다. 단열 시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빨간 벽돌집은 낮에 품은 열을 밤에 뿜어냈다. 구석진 내 방은 유독 바람이 잘 들질 않았다. 숨 막히는 열기가 방을 꽉 채웠다.


낮엔 카페에 가거나 백화점을 백바퀴 돌며 시간을 떼웠다. 밤엔 물에 적신 수건을 얼려 수시로 몸을 쓸어내리고, 요도 안 깐 맨바닥에서 얼린 페트병을 안고 잤다. 1.5L 페트병을 수건으로 감싸안았을 때 그 반갑고도 불쾌한 냉기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페트병에 의지해 가까스로 잠에 들면 지나가던 취객이 내 방 담벼락에 오줌을 갈겨댄다던가, 담배를 피워 그 연기가 고스란히 들어오면 잠깐 기절하듯 멀어졌던 끔찍한 더위를 각성시켰다. 낡은 창문 틈새로 들어온 모기들과 사투를 벌이다 보면 죽을 만큼 피곤한 아침이 되어있었다.


색안경을 쓴 것처럼 앞이 노랗게 보이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속은 울렁거리고, 머리도 아팠다. 결국 비실거리는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으면 여름이 끝났다.




그땐 열대야가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이라 버티면 됐는데 요즘은 여름내내 열대야다. 에어컨 없이는 생존이 힘든 폭염의 시대가 왔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냉기가 나오는 지금은 그때가 잔혹한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에어컨의 스며드는 찬 바람이 싫어 켰다 껐다를 반복하는 배부른 시절을 살고 있다. 사실 냉방비가 무서워 선풍기로 버티다 에어컨을 켠다는 것이 더 솔직하겠다.


어쩌면 이젠 ‘폭염’이라는 말도 식상하다. 이런 더위가 당연한 여름이고, 잠깐 버티면 됐던 그 여름은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년이면 다시 그리워하게 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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