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기린 Nov 20. 2022

회식이 좋아졌다.

내가 사회생활 중 가장 싫어하는 것 두 가지!

바로 회식과 워크숍이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의 일이다. 일이 바빠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하고 야근까지 하던 때였다. 팀장은 유일한 쉬는 시간인 점심시간조차도 워크숍에서 할 장기자랑을 연습해야 한다고 들볶았다. 그때 정말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었다. 팀원들이 지쳐있건 말건 장기자랑에서 ‘1등’을 하고 싶다는 팀장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뿐이겠는가? 본인이 삼겹살 싫어한다고 족발집만 고수하던 팀장은 소주가 아닌 맥주를 시켰다고 핀잔까지 주니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회사에 대한 마음만 더 멀어졌다.




그러나 가장 최악이었을 때는 대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때였다.

연말, 연초에 승진, 발령 등으로 한 달에 6번의 회식이 있던 적도 있다.

심지어 그중 절반은 당일에 생긴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계약직.

2년 이상 쓰면 정직원으로 고용해야 하기에 2년만 쓰고 버리는 계약직 아닌가!

이 회사 사람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애매한 사람이기에 선약이 있다고 둘러대고 빠졌다.


그러나 연말 회식은 한참 전에 고지한 것이기에 빠질 수가 없었다.

부장은 30명이 넘는 팀원들 모두 한 명씩 일어나 건배사를 하라고 했다.

회식은 무슨 얼어 죽을 회식. 이것은 마치 한 명을 위한 재롱잔치 같았다.

그나마 성의를 보이려 식상하지 않은 건배사를 하기 위해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탁자 밑으로 검색을 하며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어쩐지 웃펐다.

숙제 같은 건배사가 끝나고 나는 다른 계약직 동료와 테이블 제일 끝에서 먹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부장 입안의 혀처럼 구는 차장이 나에게 오더니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부장 옆에는 팀에서 가장 예쁘장하고 밝은 여직원이 앉아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자리에 나보고 앉으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돌아가며 바꿔 앉는 것인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부장은 자꾸만 맥락 없이 하이 파이브를 하자고 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술집 여자 취급을 하는 것 같아 역겨웠다.


2차는 노래방이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내키지 않지만 끌려가는 상황이었다. 노래방으로 이동하는 도중 몇 명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집에 가버렸다. 나는 노래방에 도착해 얼굴만 비추고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부터 부장은 나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나만 도망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안녕하세요!”

바로 눈앞에서 인사를 몇 번을 이어서 해도 부장은 본체도 하지 않았다.

민망함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장은 업무시간에 괜히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에게 한 명씩 말을 시키면서 나만 보란 듯이 건너뛰었다.

그래서 어떡했냐고? 나도 똑같이 투명 인간 취급해줬다. 받지도 않는 인사. 안 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정직원도 아니니 승진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계약도 몇 개월 남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 양반이 그렇게 군다 한들 나에게는 어떤 피해도 줄 것이 없었다.


그 회사는 업무 능력보다는 윗사람과 술자리만 몇 번 하며 친분을 쌓으면 술술 풀리는 웃기는 곳이었다. 그래서 인사평가 철이 되면 앞다투어 술 약속들을 잡느라 혈안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회식과 워크숍이 사라져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어쩌면 극한의 개인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회식이라도 했으면 좋겠는 곳이다.


입사 첫날,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인사에도 모두가 본체만체였다.

심지어 5명인 팀원 모두가 다 따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사무실은 종일 숨 막히게 조용했다. 뱃속에 꼬르륵 소리도 모두가 알아챌 만큼.


한 달이 지나 처음으로 회식을 하게 되었다.

점심 회식이었다. 들어간 지 한 달도 넘어 5명이 처음으로 밥을 먹은 날이었다.

연말 회식이었기에 올해 고생했다는 말도 나누고 할 줄 알았지만, 음식이 나오자 코만 박고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먹어 치우기 바빴다.

그렇게 20분 만에 연말 회식이 끝났다.

이것은 말 그대로 모일 회(會), 먹을 식(食)이었다.


영 기분이 찝찝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서로에게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을까?

자연스레 오갈 말도 하지 않는 분위기가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심성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고작 5명끼리 소통도 잘되지 않았다.

일에 대해 요청을 할 때도 조심스럽고 작은 수정요청에도 서로 감정이 상해 보이기도 했다.

이후 말도 없이 모여서 밥을 먹어치우는 회식이 두 번 더 있었다.




5명 중 나와 항상 같이 점심을 먹는 동료가 있다.

그녀는 자기 취향이 확고한 편이고, 가끔 쏘아붙이듯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초반엔 점심시간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점심을 먹고 주변을 산책하며 시시콜콜한 수다를 떤다. 유일하게 회사 동료와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사무실로 돌아오면 그런 시간이 무색하게 다시 서먹한 시간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속이 쓰리다고 했다. 그런 지가 오래되었다기에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병원에 다녀온 그녀가 좋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장기에 문제가 생겨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전 반차를 내고 검사를 받고 온 그녀에게 우리들은 ‘몸은 어떠냐, 수술 일정은 어떻게 되냐’ 물으며 처음으로 진심 어린 마음들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걱정해줘서 고맙다며 병원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우리는 처음으로 당일에 회식을 잡았다. 수술하기 전에 같이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니냐며…

내가 이곳에 온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한 저녁 회식이었다.


회사 주변 고급 중국집에서 여러 가지 요리를 주문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고량주도 한 잔씩 했다.

처음으로 팀장님의 큰 웃음소리도 들었고, 과묵하기만 했던 차장님의 엉뚱함도 보았다.

서로에게 존재했던 벽들이 허물어지며 소통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사무실에는 변화가 생겼다.

일에 대한 피드백을 한층 편하게 나눌 수 있게 되니 효율이 올라갔다.

잠깐 무료한 시간이 생길 때면 '인터넷에서 그거 봤어?' 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회식이 좋아졌다.




회식이 좋아졌다는 내 말을 듣고 팀장님은 말했다.

“늙어서 그래~”


40대가 되니 말할 사람이 없다. 30대에 느끼지 못한 외로움이다.

재밌는 영화를 보고 나와도, 일상에 어이없는 일이 생겨도 말할 사람이 없다.

만날 친구도 줄어들고, 지인들에게 일부러 연락하지도 않는다.

취미가 없는 한 회사가 일상의 전부다.


예전엔 회식에 환장하는 상사들을 보면 '일을 좀 저렇게 열심히 하지' 생각하며 꼴 보기가 싫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된다. 용돈 받는 유부남들이 걱정 없이 회삿돈으로 맛있는 것 먹고 술도 마시니 얼마나 신나겠는가.


물론 내가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 다시 회식을 싫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곳에는 권위적인 사람도 없고, 술을 억지로 권하는 사람도 없으며, 몸을 가눌 수도 없이 만취해서 민폐를 끼치는 동료도 없기에 잠시 한시적으로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면 그녀가 수술하러 가기 위해 한동안 자리를 비운다.

그래서 그전에 또 저녁 회식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수술 잘하고 건강하게 돌아오라'고 건배 제의라도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그가 떠오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