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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Dec 18. 2022

쓰레기 보석함

“너 그거 전 남친에 대한 복수 아니야?“

2020년 새해 계획을 묻기에 글쓰기를 배워볼 생각이라고 하자 조롱 섞인 웃음을 날리며 그녀는 말했다. 10년 넘게 친하게 지내던 언니였다.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온갖 정이 다 떨어졌다.


전 남친이 글을 쓰는 사람이었던 건 맞다. 하지만 복수? 아니다! 결코 아니다. 나의 신성한 계획에 그런 경박한 말을 갖다 붙이다니 울화가 치밀었다. 더 화가 났던 것은 그 말로 인해 정말로 나 자신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글을 쓰게 된 첫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어릴 때 엄마는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이었다. 매 순간 시댁과 아빠를 원망했다.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나와 여동생은 그런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작은 실수에도 어른도 듣기 힘든 쌍욕을 들어야 했다. 등교하려고 집을 나서다가도 가방에서 버리지 않은 껌 종이라도 발견되면 엄마는 가방을 뒤집어 쏟아버리기도 했다. 우리가 사고를 치는 말썽꾸러기들도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 엄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뒷덜미가 잡혀 현관으로 내동댕이쳐진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정작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지만 말이다. 엄마는 우리를 쥐 잡듯이 잡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묵직한 불덩이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고모 댁에 갔을 때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 고모의 노하우 아닌 노하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시집살이하면서 답답한 거 있으면 그냥 공책에다가 죄다 적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유일한 대나무 숲이 글이 된 것이... 


답답한 일이 있으면 일단 적는다. 일상적인 기억력이 좋은 나는 힘든 일을 잊기가 쉽지 않다. 일기장이든 핸드폰 메모장이든 어디든 토해놓으면 마음속에서 덜어진다. 일종의 쓰레기 외장하드 같은 것이다. 글은 나를 나무라지도 않고, 야단도 치지 않는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도 글은 나를 살렸다. 

연인과의 인연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1분 1초가 고통이었던 그때,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그냥 적었다. 대부분 욕이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심경 등을 써 내려갔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글은 차마 열어보지 못하고 있다. 


전 남자 친구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하기도 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잘되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순간까지 옆에서 다 지켜봤었다. 아침 드라마 공식처럼 그는 성공 가도에 들어서자 변했고 우린 헤어졌다. 이제는 그에 대한 분노나 아련함 같은 일말의 감정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로 인해 생긴 수많은 글감 빼고는... 나의 순수한 글에 대한 열망을 전 남친에 대한 복수쯤으로 치부해 버리다니. 평생 절교와는 거리가 먼 나였지만 그 언니를 손절했다.




글쓰기 수업 등록을 망설이는 동안 간혹 블로그에 글을 썼다. 조회수가 한자리를 넘기는 일도 드문 내 블로그에 어느 날 댓글 알람이 왔다. 스팸이겠지 하고 무심코 열었다가 나는 울어버렸다. 우연히 내 글을 읽게 되었고 힘내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댓글이었다. 


내 상처를 글이라는 도구로 열어 보여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힘을 줬다는 것.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아팠던 기억을 단지 쓰레기로 남게 하지 않겠다고. 담금질하고 연마해서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돌려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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