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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Dec 04. 2022

한동안 수제비는 먹지 못할 것 같다.

“아~ 오늘은 뭐 먹지?”

“수제비 어때요?”


메뉴 선택에는 항상 소극적인 나였지만 그날 점심시간엔 간만에 주장을 펼쳐 동료와 회사 앞 수제비집에 갔다. 전날 유튜브에서 수제비 먹방을 봤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 시작과 동시에 부지런히 가도 매번 2~3팀은 줄을 서 있었는데 그날은 운 좋게 자리가 있었다. 비록 제일 안쪽 협소한 구석 자리였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수제비 둘이요.”

주문하고 수저를 놓고 겉절이김치를 몇 개 집어먹으니 커다란 은색 그릇에 담긴 수제비가 나왔다. 내가 이곳 수제비를 좋아하는 것은 시원한 국물과 얇은 수제비 때문이다. 양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지만, 가격 또한 착하다.


멸치 육수에 간장 고추 양념장을 한 스푼 넣어 칼칼함까지 더했다. 고명으로 올려진 김 가루가 섞이게 숟가락으로 열심히 휘적이고 맛을 보니... 아! 이 맛이다. 이제 열심히 먹기만 하면 된다.


무의식에 수제비를 몇 번 더 휘적이자 가느다란 실 두 가닥이 보였다. 평소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와도 빼내고 먹는 나다. 그런데 가만 보니 두가닥의 실은 한 개의 덩어리에 이어져 있었다.

갈색의 몸뚱이. 바퀴벌레였다.

“엇. 바퀴벌레…”

같이 간 동료도, 옆자리 손님도 내 말에 대화가 멈췄다. 게다가 난 이미 바퀴벌레가 우러난 국물을 두세 번 떠먹은 상황이었다.


급하게 하지만 유난스럽지 않게 아줌마를 불러 말하자 미안하다며 바로 새 수제비를 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벌레보다 수제비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다. 그러나 수제비가 줄어들며 그 욕망이 충족되어가자, 머릿속엔 고명처럼 떠 있던 바퀴벌레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다 먹고, 진상 손님이 되기 싫어 값을 치르고 조용히 나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분한 마음이 든다.

‘따끔한 소리를 해야 했나, 음식값을 못 내겠다고 할 걸 그랬나?’

자꾸만 둥둥 떠 있던 바퀴벌레 생각이나 속이 메슥거린다.

‘그래도 먹기 시작할 때 발견한 게 어디야’ 하면서 긍정 회로를 돌려 봤지만 제 주장을 펼치지못한 자신에게 분한 마음이 들었다. 난 매번 이런 식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동생들과 같이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마지막 남은 어묵을 들었을 때 국물 바닥에는 정말 큰 바퀴벌레 두 마리가 배를 뒤집고 누워있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의 크기였다.


동생들이 무서워할까 봐 별일 아닌 듯 동요하지 않았고, 값을 치르며 아줌마에게 용기 내서 말했다. 나는 장녀니까! 동생들을 대표해서 꼭 말을 해야 한다.


“아줌마, 오뎅에서 벌레 나왔어요.”

“아 그래? 진작 말하지. 다시 줬을 텐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아줌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돈만 받아 챙겼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왜 벌레라고 했을까? 벌레라는 건 초파리 같은 것도 있는 거잖아? 왜 도대체 벌레라는 단어를 선택했을까? 바퀴벌레라고 했어야지.’ 자신을 질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분식집에 다시는 가지 않는 것이었다.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날도 수제비집에서 계산하러 걸어 나가며 무수한 생각을 했다.

‘바퀴벌레 나왔다고 말을 할까? 주변에 먹고 있는 사람들이 듣고 밥맛 떨어질 것 같은데. 그렇다고 아무 말 안 하기는 억울하잖아. 근데 돈내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싫어. 어쨌든 다 먹었잖아. 요즘 다들 어려운데 문제 만들지 말고 그냥 조용히 나가자.’


그 생각 속엔 수제비집 사장님과 손님들의 사정만 있지 나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늘 이런 식이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인데 매번 제일 후순위다. 게다가 귀찮은 논란을 만들기 싫어 늘 회피를 선택하고 그것으로 한동안 자신을 질책한다.


한동안 수제비는 먹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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