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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Feb 26. 2023

작은 온기

유독 이상하리만치 피곤한 월요일이었다. 공기가 다 빠져나간 풍선처럼 힘이 없었다. 심지어 빙글빙글 어지럽기까지 했다. 도대체 피곤하지 않고 멀쩡한 날은 없는 것일까? 한 주의 시작인데 빨리 토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평일엔 주말만 기다리고, 주말엔 지나가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이렇게 52번을 하면 1년이 간다고 생각하니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사는 것 같아 허무했다.


수백 명이 꽉꽉 들어찬 지하철 안임에도 불구하고 안내음과 운행 소음뿐. 마스크 안엔 표정 없는 얼굴들… 모두 나처럼 마지못해 회사로 가고 있으려나? 요즘 보람 있는 일도, 기분 좋은 일도 없었다. 일부로라도 웃으면 뇌가 행복하다 착각한다는데 인위적인 것은 머저리 같고 싫었다.




오후에 웬일로 9살 조카가 톡을 보내왔다. 카톡을 잘 보내지 않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이모티콘을 받기 위해 10명에게 같은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행운의 편지 같은 느낌이었다.

‘카카오톡에서 이런 이벤트도 하나? 이상한데...’

잠시후, 미션을 수행했는데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조카는 실망감에 ‘ㅠㅠ’를 가득 채워 보내왔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이모티콘 하나 받겠다고 그나마 있는 인맥 10명 싹싹 긁어모아 보냈을 텐데 기대했던 것을 받지 못해서 얼마나 속상할까?

“에구... 이모가 이모티콘 하나 사줄까? 갖고 싶은 거 하나 골라봐”

조카는 학원 가고 숙제하느라 바빴는지 도무지 내가 보낸 메시지의 ‘1’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낮의 카톡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답장을 받았다.

“춘식이요!!!” 하며 신나서 하트가 있는 이모티콘을 마구마구 보내왔다. 나는 부리나케 춘식이 이모티콘을 하나 골라 보내주었다.



“이모! 고맙습니다!” 하며 대화창 가득 행복한 춘식이 이모티콘을 가득 보내왔다. 신나서 꺅 소리를 지르며 이모티콘을 남발하고 있을 조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메시지를 타고 행복의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해졌다. 미소가 지어지고 힘이 났다. 겨우 2,500원짜리 이모티콘에 조카는 저녁 내내 신이 났을 것이다.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었다.


꽉 들어찬 퇴근길 지하철의 뒤에서 밀고, 부딪치며 지나가는 사람들 속 짜증 나고 지친 순간들이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한순간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순간 요즘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주 기본적인 생계와 생활만 반복하며 무채색 같은 나날만 반복하고 있었다. 지인들도 만나지 않고, 건강한 식사도 하지 않았다. 주말에는 간간이 하던 산책도 나가지않고 깜깜한 방안에서 유튜브 영상만 들여다보며 이불속에서 보냈다. 화장도 하지 않고 편한 옷만 입고 돌아다녔다. 지금부터라도 스스로를 아끼고 응원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온기라도 전해야겠다. 이제 곧 봄이니까, 웅크려 있던 나도 깨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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