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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Jul 30. 2023

혼자도 잘 지내는 연습

“너무 한 자세로 오래 앉아만 계셨는지 골반과 고관절 유연성이 많이 떨어져 있어요. 주말에는 주로 뭐 하세요?”

“늘어지게 누워있다가 산책도 하고, 카페도 가고 그러죠. 뭐”

“저는 주말 한 끼는 반드시 혼자 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친구 만나러 다녔더니 지금 와이프 만나서 결혼했거든요. 주말에 친구 만나러 다녀보세요~”


한동안 매주 도수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나와 동갑인 도수치료사와 치료 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는 얼마 전 아기가 태어나 아빠가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여전히 그 감격에 흠뻑 취해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는 기승전'결혼예찬'으로만 흘러갔다. 풀어진 근육이 다시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치료받고 온 날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불쾌함이 남아있었다. 내가 그렇게 결혼하고 싶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만나러 다니고 소개팅하고 선도 보고 결혼정보회사에라도 등록을 했겠지 왜 이러고 있겠는가?




주말마다 도수치료를 받느라 가지 못했던 고향 집을 오랜만에 내려갔다. 매년 부모님과 거의 휴가를 떠났기에 8월 말쯤이 어떠냐며 달력을 보며 휴가날짜를 조정하고 있었다.

“엄마, 근데 여름휴가 어디로 가지? 가고 싶은데도 없고…. 하… 지금도 이런데 더 나이 들면 얼마나 더 심심할까?”

“너한테 대시하는 사람도 없어?”

“주변에 아저씨들밖에 없는데 무슨 대시야”

“아니, 길에서라도.”

“엄마, 내 나이가 마흔인데 길에서 마음에 든다면서 다가오면 사기꾼이거나 도를 아십니까 아닐까?”

엄마는 본인도 인정한 건지, 실망한 건지 대답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그 이후의 나였다. 내 말을 내 귀로 듣고 나니 현실이 인지되었는지 왠지 모를 서러움이 몰려왔다. 까만 밤, 자리에 누워있으니 아까 내가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리에 맴돌았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어.’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났다. 하지만 다음날, 종일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들들 볶아대는 엄마를 보며 ‘아, 내 팔자가 상팔자지. 그럼 그럼’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 생각보다 오래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서 일 것이다. 이제는 뭔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같은 것도 들지않고... 단지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늙어가리라는 것뿐.




요즘 그 어떤 유대감이나 인정과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다. 회사에서만 해도 그렇다. 나의 MBTI는 INFP인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사무실 사람들은 모두 IST*이다.


"주말에 00 갔는데 길이 많이 막히더라고요. 3시간이나 걸렸어요."

"3시간이요? 어휴 힘드셨겠어요."

"아니오. 힘들진 않았어요."

"..."


T들 속에 홀로 있는 F는 종일 거절 아닌 거절을 많이 당한다. 게다가 그들에겐 필요 없는 공감을 해줘서 의아하게 만든다. 내 일상은 바닥이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건조하다.


퇴근길에 지하철 문 위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화면이 전환되느라 잠깐 화면이 어두워진 순간 모니터 화면에 반사된 나를 보았다. 아주 찰나에 보인 모습이었지만 마음이 철렁했다. 미간에는 깊게 패인 내 천(川) 자 주름에 앵그리 버드처럼 잔뜩 힘준 눈썹. ‘누구 하나만 걸려봐!’라는 듯 신경질과 짜증을 온 얼굴로 내뿜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사람으로 외로움을 벗어날 수 없는 것 또한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다. 내가 마음을 닫아버려서 일 것이다. 현재 만족하고 있는 것이 없기도 하고...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을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 없이 혼자도 잘 지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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