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춤추는 빨래처럼' 연재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빨래의 수줍은 스텝이 시작됩니다. 좌우로 살랑살랑 몸을 움직이며 리듬을 타보기 시작하는 거죠. 그렇게 시작된 빨래의 춤은 바람이 점점 세게 불수록 과감해집니다. 팔을 위아래, 좌우로 흔들고 과감한 춤사위를 선보이죠. 팝핀 현준보다도 더 현란한 몸 꺾기 기술을 선보이며 만드는 몸의 곡선은 수줍게 시작한 스텝을 잊을 만큼 과감하고 대담하게 그려집니다. 그렇게 격렬한 춤을 추면서 빨래들은 서로를 부여잡기도 하고, 서로 엉키기도 하고, 서로 얼싸 안기도 하죠.
관계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처음엔 수줍게 시작해서 나중엔 엉키기도 하고, 끌어 안기도 하는 빨래들의 춤 같은 것이요. 하지만 빨래가 항상 춤을 추는 건 아니죠.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그 바람이란 것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할 때도 있죠.
어느 날 문득 각자의 옷가지가 빨랫줄에 널려 있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 빨래는 우리 가족 모두의 옷이었어요. 바람이 불어 빨래가 춤을 추더군요. 그렇게 춤추는 빨래를 한참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우리 가족 모두가 저렇게나 신명 나게 춤을 같이 춘 적이 있었나 하고요.
우리 가족의 모습은 저렇게 신나거나, 저렇게 다정하진 않았어요. 바람이 불지 않아 축 처져 잠자코 만 있는 빨래들 같았죠.
살면서 대부분의 관계들은 내가 선택해서 만든 관계죠. 하지만 결혼해서 만난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관계예요. 그런 관계에서 서로 다정함을 붙잡고 산다는 것이 제겐 힘든 일이었어요. 배우자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지만, 배우자의 부모님은 내가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아예 피로 엮인 가족 관계라면 속 시원히 아무 이야기라도 하고 털어버릴 일들을,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의 울타리에선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 털어버리기 힘들었죠.
처음 시부모님을 만날 때, 전 세탁기에 돌려져 깨끗하게 몸을 씻고 자신을 단장해 햇빛을 보고 싶은 빨래와 같은 마음이었어요. 깨끗한 마음으로 햇빛을 기다렸죠. 빨래는 햇빛도 기다렸지만, 바람도 기다렸어요. 더 신나는 일이니까요. 춤을 추면서 자신을 말려 제 쓰임새로 돌아갈 수 있는 빨래처럼 전 햇빛과 바람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늘 햇빛과 바람이 제게 주어지진 않았죠. 햇빛이 주어지긴 했어도 바람까지 주어진 날은 드물었어요.
그러다 바람이 불어 춤을 추는 빨래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각자의 몸에서 빠져나온 빨래들은 저렇게나 손을 잡고 춤을 추는데, 나는 왜 이 '가족'이란 관계에서 그러지 못하고 있을까 하고 말이죠.
춤추는 빨래가 되고 싶었어요. 현실에서도 춤추는 빨래들과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바람이 필요했죠. 나를 춤추게 할 바람이요. 없다면 제가 만들어서라도 바람을 불러와야 했어요. 스스로 공기를 불어넣고, 바람을 만들어야 했죠.
그런 공기와 바람을 찾으며 인생에서 어려웠던 '관계'를 쓰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관계'는 어려운 숙제 같아요. 그 숙제를 함께 하고 싶었어요.
누구를 알게 되고, 상처를 받고, 용서를 하는, 관계의 긴 여정에서 제 자신이 커 가는 걸 느꼈어요. 빨래가 부풀어 올라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솟아오르듯이요.
지금도 바람이 없을 땐 여전히 풀이 죽어 잠잠한 빨래예요.
하지만 계속 바람을 찾고, 나를 채울 공기를 찾고 있습니다.
춤을 출 수 있게 말이죠.
서로가 엉키다가도 결국 풀어져 제 모습으로 돌아와 손잡아주고 안아주면서
춤을 추는 빨래가 되고 싶어요.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 아래 더 힘든, ‘가족’이란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든 이들과 함께,
바람과 공기를 나눠 갖고 싶네요.
(이 매거진의 모든 그림은 열세 살 아들이 그려준 그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