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처럼 톡 쏘지 마'레'

by 나무향기

'레'몬 같은 나의 말에 곡선은 없었다. 나의 말은 모두 직선의 형태였다. 원형은 없었고 모가 난 각형들이었다.


난 상대방이 가장 빨리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달하는 것이 대화의 목적에 맞다고 생각했다. 다분히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나다운 발상이었다. 사람들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빙빙 둘러말하는 걸 보면 답답해서 그들이 하고 싶어 했음직한 말을 대신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톡 쏘는 '레'몬 같은 말이었다. 상큼하지 않았고, 견딜 수 있는 시큼함을 넘어서 톡톡 쏘아대는 레몬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레' 음을 낼 때마다 시디 신 레몬을 먹은 것처럼 울거나, 도망가거나, 화를 냈다.


내가 '레~~~'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런 '레'는 정말 못 들어주겠다며 인상을 찡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난 '레'음을 정말 못 잡았다. 그래서 어른들한테 입바른 소리 하다가 엄마가 난처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뻔히 보이는 그 말들을 안 하고 빙빙 두르고, 못 본 척 넘기는 어른들이 어린 나의 눈에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큰 이모에겐 외동아들이 있다. 나에겐 이종 사촌 오빠이고 나보다 나이가 15살은 많다. 내가 열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니 오빠가 20대 초반이었을 무렵이다. 큰 이모는 매일 같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오빠가 속을 썩여 힘들다고 하소연하셨고 내 눈에 사촌오빠는 엄마 속 썩이고, 돈을 탕진하는 부랑자처럼 보였다. 불효자도 저런 불효자가 없구나 싶었다. 그러던 중 나는 외가댁에 가서 사촌오빠를 만나게 되었는데 사촌오빠는 자기가 입은 메이커 브랜드의 옷을 식구들에게 자랑했다. “이 정도는 입어줘야 사람이 뽀대가 난다.” 며 걸친 옷을 흔들어 보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기가 찼다. 어린아이도 기가 찰 노릇인데, 어른들은 다들 “그래그래, 옷 참 보기 좋다.”며 오빠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난 이 부조리해 보이는 순간을 참을 수가 없어서 한 마디를 뱉고 말았다.

“옷만 좋은 거 입으면 뭐해요, 사람이 좋은 사람이어야지.”


엄마와 아빠는 뜨악해하시고, 이모와 이모부는 당황해하셨다. 조그만 어린애 입에서 나오는 입바른 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하시니, 화가 나신 듯했다. 안 그래도 아들 때문에 속상한데 그게 꼬맹이의 입으로 그대로 튀어나와 낱낱이 드러나니, 속상하실 만도 했겠다. 이모는 엄마에게 애가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냐며 분해하셨다. 그날 난 엄마에게 알 수도 없는 매를 맞고 다시는 어른들 앞에서 그런 소리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왜 내가 잘못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인 걸 뭐.’하며 이불 덮어쓰고 잤던 기억이 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야 직성이 풀리던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말은 톡 쏘는 '레'몬 말고, 상큼한 레몬이 되어야 한다는 걸. 레몬처럼 톡톡 쏘던 나의 말 때문에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나에게 와서는 '이건 레몬 정도가 아니라 염산 수준'이라고 했다. 내 말이 어떨 땐 염산 테러처럼 그들을 아프게 한다고 했다.


그런 나의 '레'는 튜닝이 필요했다. 말은 말을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어야지,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하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테러를 당한 사람들의 아우성 때문에 알게 되었다. 마치 음을 잡지 못하고 내지르는 '레'가 누군가의 고막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나의 말은 그들의 마음의 고막을 찢어 놓았다.


아직까지도 이 '레'는 나에게 어렵다. 그래서 내가 '레'음을 낼 때 얼마나 그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겐 견딜 수 없이 시큼한 톡 쏘는 '레'음이 되었을까 싶어, 여러 번 나의 '레'를 다시 들어보았다. 나중엔 음치 교정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음치 교정 전문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세게 소리 내면 사람들 귀 다쳐요. 공을 던질 때 던지고 싶은데로 세게 막 던지지 말고, 상대가 공을 잘 받을 수 있게 그렇게 던지는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좀, 다시 '레~~' 해볼까요?"


상큼한 '레'음을 내는 일은 피나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했다. 시큼과 상큼은 한 끗 차이인데, 그 한 끗 차이를 잘 다루어 말로 옮겨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상대방이 맛있게 들을 수 있는 상큼한 '레'가 되기 위해 나의 말은 곡선의 모습으로, 원형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야만 했다. 내게 직선과 모서리만 있다고 옹졸하게 굴기보다, 내가 가진 직선은 구부리고, 모서리는 펴서 부드럽게 만들어야 했다.


'레~~~'

난 '레'음이 제일 어렵다.


음치 튜닝 '레' 카드--톡 쏘지 않는 상큼한 ‘레’ 몬 카드


<그림: 나무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