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미'옥아

by 나무향기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나처럼 내향인들은 그 말을 하려면 대단한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냥 내가 미안하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의 눈빛과 표정과 행동을 보며 알아차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말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말은 나에게 '미'련이 되고, 후회스러운 '미'안함이 되어 남았다.


'미' 음은 내가 음을 잘못 잡아서 나오는 불쾌한 소리가 아니라 내가 충분한 성량을 가지지 못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미'였다. '미' 음을 내기 위해선 음을 잡는 것에 신경 쓰기보다는 풍부한 성량을 장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사람들은 내가 '미' 음을 낼 때마다 잘 들리지 않는다며 불평을 했고, 도대체 그 기어들어갈 듯한 '미'는 뭐냐고 물어왔다.


나는 수십 번도 '미~~~'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상대방은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학교 때 난 처음으로 '왕따'를 경험했다. 겨우 아홉 살이던 나는 우리 반에서 꼬질꼬질하고, 얼굴이 말처럼 길쭉한 어느 여자 아이가 반 아이들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괴롭힘 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아이 이름은 미옥이었다. 미옥이는 아이들의 괴롭힘에 울지도 않았고, 슬픈 표정도 없었다. 그저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이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괜히 미옥이에게 가서 씻지 않아 수세미처럼 엉킨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책상과 의자를 넘어뜨리기도 했다. 못된 어느 남자아이는 미옥이에게 발길질까지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이 미옥이를 왕따 시키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으셨다. 묵인이었다. 마치 미옥이는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된다고 암묵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옥이가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고, 꾀죄죄하기 때문에 선생님은 미옥이를 돌봐주기 싫으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난 그런 미옥이를 감싸줄 용기가 없었다. 용기 없는 나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미옥이와 같은 편이 되면 나도 같은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미옥이와 얽힐 어떤 행동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바른말 잘하기 유명했던 나의 입은 비겁하게도 그땐 잠자코 만 있었다.


20년이 지나 미옥이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말끔해지고, 키도 훌쩍 커버린 미옥이는 더 이상 내가 기억하는 미옥이가 아니었다. 어쩐 일인지 미옥이는 내가 한때 동네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생각한 오빠의 부인이 되어있었다. 미옥이는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지? 정말 반갑다. 나 동기 오빠랑 결혼했어."

"어... 그렇구나... 반가워 미옥아."


난 반갑다고 했지만, 사실 전혀 반갑지 않았다. 왕따 당하고 있던 그녀를 외면했던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하는 것 같아 불편하고 죄스러웠다. 미옥인 자신의 왕따를 지켜만 보고 있던 나에게 어떻게 반갑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걸까? '미'가 입 안을 맴돌았지만 제 소리를 내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입으로 계속 '미... 미...' 하다가 미안하단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지금도 살면서 참 미안한 일이 많다. 사람들에게 미안할 일들이 매일매일 생긴다. 그럴 때마다 자존심에, 혹은 부끄러워서 그 '미안하다'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풀어질 일들이 '미'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나 때문에 꼬이곤 한다. 제때 나오지 못한 '미'음이 노래를 망쳐버리는 것처럼 제때 말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말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쳐버리곤 했다.


그래서 연습했다.

'미~~~ 안해.'라고 말하는 연습. 오랜 연습 끝에 서투르지만,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용기 있게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들은 듯, 환히 웃으며 '괜찮아.'하고 답해 주었다. '미'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게 되자 나의 노래도 아름다운 노래가 된 것일까? 그들이 나의 '미'를 괜찮다고 해주자 난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난 '미'를 배워갔다.


아직도 안동에 가면 미옥이를 가끔 만난다. 그럼에도 난 아직 미옥이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지 못했다.

미안해 미옥아.

그땐 나도 너무 어렸고, 무서워서 널 도와주지 못했어. 부끄럽지만 지금에서라도 너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다.

너에게 나의 '미'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미'안해, '미'옥아.



음치 튜닝 '미' 카드—'미'안하다고 말할 용기 카드



<아들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