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면 날 깨워줘

Wake me up when summer ends

by 나무향기

오늘, 지금 기온은 36도.

인간의 체온에 0.5도 못 미쳤는데도, 난 미쳐버릴 것만 같다.

내 몸에 이렇게나 뜨거운 피가 흐를 줄이야...


여름이 되면 나의 뇌는 가동을 중지당한다. 뇌의 회로가 곳곳에서 끊기는 느낌이다.

생각도 없어지고, 사고도 없어지고, 원시 본능만 깨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다.

한국의 여름도 찜통더위라 힘들지만, 호주의 더위는 온도가 어마 무시하다. 어떨 땐 40도를 넘어서기까지 하는데, 그럴 때 밖을 나가면, 타서 홀랑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확실히 독서와 글쓰기는 날씨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지금 같은 이런 날씨는 활자가 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눈으로 들어와도 뇌에서 인식이 되지 않는다.


난 그저 Green day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와 에어컨을 틀어 놓고 타일 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다.

자꾸만 'September'가 'Summer'로 들린다.

축축한 습기와 후끈한 화기에 휩싸여 난 고통스러운 더위의 슬픔에 젖어버렸다.


슬프게도, 난 이렇게 까지 여름을 싫어하진 않았다. 학창 시절, 여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물론 그때도 찜통더위를 겪었었고, 더위에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지만, 여름과 나의 감정이 서로 나쁘게 얽힌 기억은 없었다. 오히려 화끈한 더위를 즐기며 재미난 시간을 보낸 기억들이 더 많다.


하지만 내가 이토록 여름을 싫어하는 건 아마도 사이판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일년 내내 여름인 그곳의 열기와 감당할 수 없었던 수많은 그때의 고통들이 끈적한 아스팔트 타르처럼 뒤엉켜 트라우마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름만 되면 그때 내가 감당하지 못한 감정의 찌끄러기들이 녹아 흐르는 타르처럼 여전히 날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난 우울해지고, 뇌는 잠시 쉬겠다고 파업을 하고, 나는 모든 생산적인 일들에서 손을 떼고 싶어 진다. 그래서 난 여름마다 탈출을 감행했다. 지난 코로나 3년의 기간 동안은 여름을 감옥처럼 견뎌야 했지만, 이제 난 탈출을 할 수 있다.

겨울인 그곳으로,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국으로 탈출한다.


매번 여름이 끝나면 날 깨워달라고 말했지만, 이번엔 여름이 끝나기 전에 여름과 작별을 할 테다. 그리고 겨울을 끌어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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