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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Mar 16. 2023

나를 찾게 해 준 친구

자원봉사 모임에서 만난 성희는 여상을 나오고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회사에 취직을 했다. 우린 같은 신림동에 살면서 친구가 되었다. 나는 신림2동에, 그녀는 신림9동에. 큰 대로변을 사이에 두고 좀 떨어져 있었지만 그런 거리는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성희 어머니는 신림동 시장터에서 생선을 파셨다. 앞에 두른 두툼한 비닐 앞치마엔 생선의 비늘이며, 내장 조각과 피가 튀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생선 냄새로 가득한, 지저분해 보이는 그 앞치마는 그녀가 성실하게 보낸 하루의 훈장처럼 느껴졌다. 


성희 어머니는 내가 성희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무척 좋게 여기셨다.

"너처럼 반듯한 아이가 성희랑 친구라 참 좋다."

하지만 난 성희가 내 친구라서 좋았다.

성희는 서울대에선 보기 드문 계산이 없는 아이였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계산이라는 것을 도통 모르는 아이였다. 자신이 가진 것은 남들을 위해 다 나눠주고, 더 나눠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그런 아이였다. 옳은 일을 하고도 칭찬이나 감사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을 아예 잊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성희와 자원봉사를 하며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성희는 혹여나 조금이라도 더 소외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 보다는 어울리지 못하고 쭈뼛쭈뼛 주위만 맴도는 아이들을 먼저 챙겼고, 우리에게 칭찬의 말씀을 해주시는 어르신들보다는 한 마디 말씀도 없이 조용하기만 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조용히 챙겼다. 성희에게는 그런 사람들을 잘 찾아내는 보배 같은 눈이 있었고, 눈을 따라 몸이 빨리도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성희랑 자원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이면 우린 신림9동 골목에 있는 '아저씨 철판' 집에서 아저씨가 볶아주는 철판볶음밥을 먹었다. 철판 볶음밥을 섞고, 볶으며 우리의 마음도 섞이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너 정말 좋아하신다. 너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주래. 시골에서 혼자 올라와 서울 생활하는 게 힘들진 않아?"

"니가 있어서 안 힘들어. 히히. 맨날 이렇게 맛있는 거 같이 먹을 수 있잖아."

오징어와 콩나물과 김치, 김과 갖은 채소 양념이 잘 섞여 철판 위에서 살짝 탈 듯이 볶아지면 입을 호호 불며 같이 나눠먹는 밥은 밥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하루의 즐거움과 고단함, 만족스러움을 숟가락에 담아 나눠 먹고 있었다.


성희는 내가 서울대생이라고 주눅 드는 법도 없었고, 나를 대단하다며 치켜세우는 일도 없었다. 나에게 '서울대'라는 꼬리표를 떼고 언제나 '나'라는 사람만으로 날 봐준 친구였다. 그런 성희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 다른 서울대 애들하고는 정말 다른 것 같아."

"왜? 내가 좀 덜떨어져 보여서 그런 거지?"

"응, 맞아, 하나도 안 똑똑해 보여 ㅋㅋㅋ. 너 정말 말 안 하면 서울대생 티가 너무 안나는 거 알아? 하하"

"아, 이런... 앞으론 서울대 마크가 새겨진 가방이라도 둘러매고 다녀야겠네. 히히"


학교에는 자신이 서울대임을 온천하에 드러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옷이며 가방이며 모자에 서울대 마크가 새겨진 용품들을 두르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이 꼭 과시를 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조금도 과시하고픈 생각이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서울대 마크가 새겨진 옷이나 가방이나 모자가 너무 예뻐서 샀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 그것을 사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니까.


사실 나도 입학하자마자 서울대 마크가 조그맣게 새겨진 가방을 사서 들고 다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타인에게 내가 '서울대생'임을 만천하에 광고하고 다니는 느낌이 거북하게 느껴졌고, 그 가방을 더는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내가 서울대생임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서울대'라는 딱지는 나를 나의 모습으로 드러내주지 못했다.


하지만 성희는 나를 나의 모습이 될 수 있게 도와준 친구였다. 서울대를 입학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며 잃어왔던 나를 조금씩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였다. 주말이 되면 낮에는 같이 자원봉사를 하며 삐질삐질 땀을 흘린 얼굴로 같이 웃었고, 밤에는 이곳저곳을 같이 쏘다니며 떡볶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또 같이 웃었다. 한 여름엔 한강으로 가서 여름밤 서울 풍경을 즐겼고, 겨울에 시골로 봉사를 가는 날엔 성희 어머니께서 싸주신 따뜻한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꽁꽁 언 밭길을 같이 걷기도 했다. 


그렇게 성희와 사계절을 보내다 보니, 난 어느새 내가 찾던 나의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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