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현모양처도, 전업주부도 아니었다. 난 엄마처럼 살림 따위나 하는 그런 평범한 여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의 난 살림씩이나 하는 대단한 여자가 되어 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그러다 힘에 부쳐 소파에서 졸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너 이러자고 서울대 나왔니?'
할 때가 많았다.
'니가 이 집 식모니? 난 살림하는 여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고, 뭔가 더 대단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니 꼴이 이게 뭐니?'
라며 나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할 때가 많았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그 '대단한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일?
무언가 다른 사람들 눈에 그럴싸 해 보이는 업적을 쌓는 일?
결국 깊이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대단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속물이라고 생각하며 더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내가 '살림 따위'로 쉽게 폄하했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걸쳐해 오던 그 '살림'이라는 것이 실상은 그렇게 만만한 것도 아닌데, 난 살림이라는 것을 아주 우습게 보았다.
'살림'을 사전에 찾아보면 1번으로 나오는 정의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다. 실제로 한집안을 이루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살림'이다. 살림을 잘해야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를 살리는 일을 내가 그토록 하찮은 것으로 폄하한 것은 이 세상에서 '살림'이 받는 대접이 그러했기 때문이고, 아무도 나에게 '살림'의 중요한 의미를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가사 노동'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이 마치 3D 직종의 일인 양 기피하며 누군가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여왔기에 난 '살림'이라는 것이 오래도록 누군가를 '살리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살림'은 소중한 생명을 보존하고, 보호하고, 더 나아가 생명을 번영시키는 그야말로 '생명 구조 사업'이다. 의사만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림하는 사람도 생명을 구하고 살리는 대대단한 사람인 것이다.
내가 지금 살림만 하는 여자가 되었기에 어떻게든 살림을 포장해 보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오랫동안 살림을 하면서 난 가치 없는 단순 노동에 고급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믿어왔기에 제대로 살림을 하지 못했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는 일이 아무런 학력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오랫동안 살림을 건성으로 했었다. 살림은 내게 빨리 해치워버려야 하는 무언가였지, 잘 꾸려서 즐거움을 찾아가는 보람 있는 일이 되진 않았다. 그래서 나의 살림은 대충대충 겨우 위기만 모면할 정도였고, 나 자신도, 식구들도 제대로 '살림'을 받지는 못했다.
나의 호주 친구들 중에는 유독 차일드 케어(어린이 집)에서 일하는 친구가 많다. 내 친구들은 다른 사람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자녀를 다른 차일드 케어에 맡기고 직장을 다니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정말 무언가 이상한 상황이었다. 나의 아이를 내가 돌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나의 아이를 다른 누군가의 손에 맡겨야만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나의 쓸모를 찾기 위해 방황하면서, 난 내 가족이 받아야 할 '살림'을 외면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이란 것이 잘 살아보기 위한 것인데, 난 그 잘 살아보는 것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식구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가 생각해 오던 '살림'의 개념이 무너져 내리고 진정으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살림'의 의미를 살림에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림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나니 설거지도 청소도 나에게 그저 해치워야 하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누군가의 살 자리를 마련해 주는 고귀한 일로 여겨졌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중 가장 크게 살리는 일에 속했다. 식구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해, 식품첨가물과, 보존제, 색소가 들어간 음식들은 모두 배제하고 좋은 재료로 건강한 입맛을 살리는 음식을 하는 것은 살림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렵고도 막중한 임무였다. 도파민 과잉의 시대에 음식에서만큼은 자극적이지 않은 맛으로 식구들의 입맛을 즐겁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 먹는 음식은 손쉬운 한 끼가 될 수 있었지만, 내 에너지가 절약되는 대신 가족의 건강이 희생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외식을 줄이고 집밥만 오롯이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살림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뀌자 음식을 하는 모든 과정이 신성하게만 느껴졌고,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하는 나 자신에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섬섬한 음식에서 진국을 느끼며 음식을 대하는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살림은 나를 변화시켰다. 성과 중심의 사고에 길들여져 있던 나에게 오랜 시간을 들이는 고된 노동의 중요함을 일깨워주었고, 누군가를 위해 나를 사용하는 일의 고귀함을 가르쳐주었다. 단순 노동이라 치부했던 일들이 실은 지혜를 일깨워주는 고난도의 창조적인 일이라는 점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살림을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자 어느 순간 살림에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지혜까지 배울 수 있었다. 살림의 본질은 뭐니 뭐니 해도 자녀를 잘 살려내는 일이었다. 육체적으로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녀 교육은 그 이상의 섬세한 지혜들이 필요한 그야말로 '살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실 살림을 제대로 못했던 시절은 자녀 교육 역시 엉망이었다. 밤새 젖을 물리고, 난장판이 된 집안을 아이가 잠든 사이 해치워야 했고, 잠이 너무 부족해 아기가 잘 때 쪽잠을 자는 나 자신을 보며 아이를 키우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육아를 전혀 즐기지 못했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견뎌가기 급급했다. 하지만 살림을 제대로 하기 시작하자 내게 어렵기만 하고 짐스럽기만 했던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도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결국 '살림'은 사람을 살리는, 식구를 살리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