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향기 Oct 20. 2023

사람의 입김

이른 아침, 혹은 해가 지기 바로 직전 햇빛이 내뿜는 벌꿀색 빛은 모두를 달콤하게 만든다. 온 세상이 벌꿀색으로 물들면 사람도, 사물도, 이 세상 모든 것에서 벌꿀향이 나는 것만 같다. 그런 빛이 가득한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모든 것이 고양이 털처럼 부드럽다.


빛 한 줄기가 온 집을 가득 채울 수 있듯이 사람이 내뿜는 벌꿀 같은 입김은 집을 벌꿀향으로 가득 채운다.

사람의 입김은 얼굴에서, 웃음에서, 우리의 말에서 나온다. 얼굴에 벌꿀색 미소가 흐르고, 꿀병에서 꿀이 흘러나오듯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벌꿀처럼 달달한 말들이 우리의 입에서 나온다면 집은 벌꿀 같은 입김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현실은 늘 벌꿀이 흐르는 집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는 세상에서 힘듦을 집에 풀어놓기도 하고, 그 힘듦을 가시 돋친 말과 모서리 같은 행동으로 풀기도 한다. 웃음이 터지기는커녕 한숨이 터지는 날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꿀을 모아 나르는 꿀벌들처럼 가볍지만 바쁜 날갯짓으로 벌꿀 같은 기운을 전해주면 집안은 금세 벌꿀의 입김으로 채워지게 된다. 아무 말 없이 흥얼거리는 노래, 기운을 북돋아주는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는 벌꿀이 되어 서로를 달콤하게 채워준다.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을 두고 '집에 꿀단지라도 묻어놨냐'라고 하는 말은 그냥 생긴 말이 아닐 것이다. 정말 그 집에 벌꿀과 같은 달달한 기운이 있어 집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 생기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집에는 그런 꿀단지가 어딘가에 묻혀있을까.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들은 가족보다 친구를, 집보다는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 또래집단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집에 꿀단지라도 있다면, 누군가는 벌꿀 같은 입김으로 위로를 베풀고 있다면 집에 있는 것을 힘들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벌꿀 대신 가시 돋친 잔소리와 비난과 꾸지람만 듣게 된다면 아이는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사춘기 자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집'을 떠올리면 달달한 벌꿀 같은 입김 대신 힐난과 비난의 가시가 생각된다면 누구도 그런 집엔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힐난과 비난이 없다 해도 서로 무관심한 냉랭한 기운이 떠오른다면 그런 집엔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추울 때 따뜻한 아랫목을 찾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벌꿀 같은 입김이 흐르는 집을 원한다. 꿀벌 한 마리가 꿀단지를 다 채울 수 없듯 우리 모두가 조금씩의 벌꿀을 나를 수 있다면 우리 집의 꿀단지는 벌꿀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우리 집엔 벌꿀향이 흐르고, 벌꿀색 빛이 가득 차게 된다. 그 시작이 바로 우리의 입김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따뜻한 입김이 따뜻한 벌꿀색 집을 만들고, 따뜻한 벌꿀색 세상을 만든다.


내가 내쉰 입김으로 따뜻해진 가운데 잠이 드는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멀리 다른 잠자리지만, 따뜻한 입김으로 채워진 이부자리에서 아들이 잠들면 좋겠다.

우리집에 꿀단지가 있어, 자주 아들이 와 주길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 있는 드라이 플라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