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독립을 한 후 음식을 어떻게 하냐는 전화를 자주 한다. 같이 살 때도 곧잘 요리를 하곤 했지만, 가끔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음식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모양이다. 파스타나 샌드위치는 나보다 월등히 맛있게 하는 녀석이 오이무침이나 고추장찌개를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온다. 사실 나에게 백 선생님 같은 특별한 레시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좋은 재료를 골라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나게 요리하는 것이 나의 요리 원칙이다. 그래서 아들 녀석의 전화를 받으면 제일 중요한 건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 일이라고 일러준다.
슈퍼 매대에는 늘 제일 오래된 것들이 제일 앞에 진열되어 있다. 그래서 난 항상 유통기한과 포장일자를 꼼꼼히 확인한다. 그럼 같은 매대에서도 유통기한이 4-5일 정도 더 긴 신선한 것을 고를 수 있다. 채소도 시들어 있는 것은 아무리 급하게 구해야 하는 재료일지라도 집어 들지 않는다. 차라리 그 채소를 대신할 다른 싱싱한 채소를 찾는다. 방금 흙밭에서 나와 뛰어나갈 듯 싱싱한 기운이 전해지는 채소를 고르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과일도 윤이 나기 보다는 스프레이를 뿌리지 않아 살짝 거칠어 보이지만 꼭지가 싱싱한 것을 고른다. 고기는 가정시간에 열심히 배운 대로 윤기가 나고, 선홍색 빛을 띤 신선한 것으로 고른다. 가끔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반값 세일이나 폭탄 세일을 해서 소비자의 마음을 현혹하지만, 오늘 패킹된 제품을 사는 것이 나의 원칙이 되었다.
얼마 전 집에서 먹은 숙주무침이 생각났는지, 숙주무침을 어떻게 하냐는 아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이렇게 알려주었다.
"아무리 잘 무쳐도 숙주 자체가 싱싱하지 않으면 맛없어. 숙주가 색 변한 것 없이 싱싱하고 땡땡해 보이는 걸로 골라. 그리고 잘 씻어서 물기 뺀 채로 냄비에 김이 날 때까지만 불에 올려놔. 너무 물러지지 않게 살짝 익었다 싶을 정도로만 익히다가 불을 꺼. 그리고 소금, 파, 마늘, 참기름 넣고 무치면 끝이야. 쉽지?"
아들은 생각보다 쉬워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더 강조했다.
"꼭 싱싱한 숙주로 잘 골라서 해라. 그게 생명이야."
요리를 할 때 그런 것처럼, 아들이 삶에서도 싱싱한 재료를 선택해 삶을 요리하길 바란다. 아무리 바빠도 살아있는 삶의 재료를 선택해 요리하기 바란다. 누군가가 이렇게 저렇게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가공해 놓은 것을 주워 담는 사람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는 재료들을 삶의 장바구니에 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재료로 자신만의 요리를 하기 바란다.
세상에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혹은 세일 딱지가 붙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그런 재료들이 너무나 널려 있다. 자신만의 뚜렷한 원칙이 없으면 그런 것들에 현혹되어 쉽게 그것들을 주어 담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기가 전해지는 싱그러운 삶의 재료는 움직이고, 노력을 기울여야 얻어지는 것들이다. 발품을 팔아야 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고, 정성을 쏟아야 얻어지는 것들이다. 집에 앉아서 핸드폰 화면의 몇 가지 버튼으로는 얻어질 수는 없다.
이 세상이란 슈퍼마켓에는 너무나 많은 가공품과 죽은 재료들이 널려 있다. 가공식품과 죽은 음식들을 계속 먹으면 언젠가는 탈이 나는 것처럼, 그런 재료들로 삶을 꾸리면 인생도 탈이 나기 마련이다.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생기 넘치는 그런 삶의 재료들로 인생을 요리하길 아들에게 당부한다. 죽은 재료가 아닌, 살아 있는 재료들을 인생에 담길 당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