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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Apr 28. 2023

내가 나의 안식처가 되는 사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게 설계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게 설계되기도 했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볼 때 난 그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혼자 있는 시간을 얼마만큼 충만하게 즐길 수 있는 지를 살핀다.


혼자 있어도 충분히 양심의 소리에 따라 자신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

혼자 있어도 즐거운 무엇인가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

혼자 있어도 시간을 충만하게 채울 여력이 있는 사람,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안식처로 삼는 사람.


난 이런 사람들이 좋았고,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아들도 이런 사람으로 커 주길 바랐다.

혼자 있는 시간을 충만하게 채우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있어도 똑같이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고, 나의 마음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혼자 있으면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와 있어도 쉽게 외로워진다. 혼자 있어도 스스로에게 안식처가 되는 사람은, 같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스스로가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내 안의 내가 편안해진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내가 나를 불편해하고 있다면, 혼자인 나를 독대하기가 힘들어진다. 나 자신을 못마땅해할수록 나를 외면하고 싶어, 혼자인 시간이 힘들어진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선 상처가 나 떨어진 꽃잎을 손에 주워 담는 심정으로, 흠이 있는 나를 그런대로 아름답게 보아줄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호주는 플루메리아가 흔한 나라인데 길을 걷다 보면 플루메리아 꽃나무에서 떨어진 꽃들을 쉽게 마주친다. 땅에 떨어진 꽃들은 꽃잎 가장자리가 말랐거나, 찌그러졌거나, 약간의 흠이 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향을 간직하고 있어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손에 쥐어 손바닥에 한참을 올려놓고 보다가, 귀 옆에 꽂거나 옷깃에 꽂아 두게 된다. 그렇게 꽂아둔 플루메리아는 내가 걷는 동안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향을 걷는 내내 나의 걸음에 실어준다. 무언가 꽃나무에 붙어 있을 여력이 되지 못해 떨어진 꽃도 향기만큼은 시들지 못해 그 향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있다.


누군가는 시든 꽃 따위엔 관심도 없이 자기 길을 갈 테지만, 마음이 너그럽고 여유 있는 사람은 그 꽃을 손에 쥐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의 흠이나 부족함을 다독여 줄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향기마저도 놓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흠이나 부족함을 손에 고이 쥐고 감쌀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향기 역시 오랫동안 간직하며 그 향기를 안식처로 삼을 줄 안다.


스스로를 안식처로 삼는 사람은 혼자의 시간도 고독의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이다. 혼자만의 시간은 나를 증폭시켜 그 에너지를 어떤 부딪히는 대상 없이 온전히 쏟아낼 수 있는 시간이고, 그 에너지가 조용한 공간과 맞닿아 무언가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시간이다.

난 혼자 있는 시간에 글을 쓰곤 하는데, 그때만큼은 내 에너지가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히 방출되는 느낌이다. 시계 침소리만 째깍째깍 울리는 고요한 공간이 나에겐 하얀 도화지와도 같아, 난 자유롭게 나만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나를 들여다보고 웃어주기도 하고, 나를 내보내어 펼치기도 한다.


혼자만의 시간은 나의 소리는 물론, 말없이 고요하기만 한 사물들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다. 말이 없는 사물들도 그때는 소리 없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때만큼은 여러 사람들의 에너지에 부딪혀 잠시 묻혀있던, 무심하게 지나쳐진 사물들의 소리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일렁이는 빛과 그림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티브이와 전자기기 소리에 가려졌던 산뜻한 공기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창 밖으로 펼쳐진 잔디가 촘촘히 솟아오르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쌀쌀한 공기에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로 들을 수 있다. 이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내 머리는 맑아지고, 내 가슴은 정화된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음은 꾸준히 나 자신과, 말 없는 사물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그들과 만나는 시간은 나에게 휴식이 된다.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그들을 만날 때, 수줍게 자신을 이야기하는 그들을 만날 때, 난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고, 무심했던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그 시간이 지루하다거나, 고독하다거나, 외롭다기보다는 새로운 친구를 발견하는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 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혼자인 시간도 즐겁게 쓸 수 있다면 우린 자신에게 스스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도 안식처가 되어 줄 것이고, 우린 서로에게 쉬어갈 수 있다.


아들의 손에 땅에 떨어진 플루메리아를 쥐어주며 말했다.

"꽃잎이 상했어도 향은 여전해. 너도 네 향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네가 가진 상한 부분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품은 향을 사랑하기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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