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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Jul 11. 2023

잘 난 길을 두고 엄한 길로 걸어봅니다.

매일 걷는 동네 호숫가엔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좋게 길을 내어 두었다. 반듯하게 잘 난 길에 '이 길로 걸으시오.'라고 표지판이라도 세워둔 것처럼 사람들은 그 길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 길로만 걸어갔다.

길 옆은 모두 풀밭이다. 풀이 나지 못해 흙길인 곳도 드문드문 있다. 닦아 놓은 길은 말끔하고 깨끗하지만, 그 옆 풀밭에는 가끔 산책 나온 주인이 치우지 않은 반려동물들의 똥이 굴러다니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풀밭 위로는 걷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똥을 밟게 될 수도 있고,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된 곳도 있고, 고르지 못한 탓에 움푹 패인 곳도 있다.

사람들은 깨끗하고 안전해 보이는 반듯한 길 위를 걸으며 호숫가 산책을 한다.


한동안은 길 옆으로 난 풀밭 위로 걸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를 위해 잘 닦아놓은 반듯한 길이 있는데 굳이 다른 길로 걷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딱딱한 시멘트 느낌이 척추를 타고 올라올 때, 불쾌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발 옆으로 자리를 옮겨 풀밭 위로 걸어보기 시작했다.

풀밭을 내디딜 때 느껴지는 땅의 쿠션감, 구겨지며 나를 받쳐주다 풀잎들이 다시 튀어 오르는 생기 발랄한 소리, 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땅의 맑은 기운. 시멘트 바닥을 걸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난 멀쩡하게 잘 난 길을 옆에 두고 엄한 길로 걷기 시작했다. 풀밭 위는 땅이 고르지 않아 울퉁불퉁하다. 풀이 덮이지 않은 곳은 돌부리에 차이기 일쑤다. 하지만 내 발은 땅 표면의 다양함을 즐기며 또 거기에 맞게 유연하게 움직인다. 가끔 똥을 밟기도 하고, 풀잎에 가려진 웅덩이를 밟았다가 발이 젖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묻은 똥은 다시 풀숲에 털어버리면 되고, 젖은 발은 햇살에 말리면 된다.


이제껏 살면서 내가 택한 길은 모두가 보아도 바로 그 길이라고 생각되는 반듯한 길이었다. 똥이 묻거나 발이 젖을 염려가 없는 길들 뿐이었다. 그 잘 나고, 잘난 길 위를 걷지도 않고 달려가곤 했다. 그래서 난 크게 역경을 겪거나 힘든 일을 겪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 고생이나 역경이 보이는 길은 걸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난 길로만 걸은 나는, 그 길만큼이나 쿠션감 없는 시멘트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연하게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똥을 털어내고 젖은 발을 말릴 여유로움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호숫가를 걷는데 누가 물수제비라도 뜬 것처럼 물고기가 세 번을 연거푸 날아올랐다. 물속이 내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물속만 헤엄치는 물고기는 아니었나 보다. 물 밖 세상이 어떤지 보기 위해, 그 짧은 순간이라도 다른 세상을 맛보기 위해 물고기는 세 번이나 몸을 날려 뛰어올랐다.

물고기가 뛰어 오른 자리를 보며, 난 저만큼의 노력도 하지 않고 살았구나 싶다. 감히 내 세상 밖의 세상에는 발도 들일 생각을 못했었다. 내 길이 아닌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걸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닦아 놓은 길 위를 걸을 때는 굳이 발 밑을 볼 필요가 없었다. 고개를 들고 앞만 보고 걸어가면 된다. 넘어질 염려도, 똥을 밟을 염려도 없다. 언제나 탄탄하고 반듯해 보이는 길이다. 하지만 엄한 길 위를 걸을 땐 앞만 보고 걸었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 워낙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한 걸음 한 걸음을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


시원하게 잘 난 길을 걸었을 때, 난 지금을 보지 못하고 내 앞의 미래만 보며 걸었었다. 지금 내 발이 디디는 그 순간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눈앞으로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잘 나고 잘난 길만 보고 달렸다. 학교를 다닐 때도, 사회인이 되었을 때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울 때도 순간을 집중하지 못하고 내 앞에 펼쳐질 길들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함에 걷는 순간들을 놓치곤 했다.


풀밭 위로 걸으면 온전히 걷는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머리를 들고 앞만 보고 걷기가 어렵다. 내 발 밑을 보고 온전히 집중하며 걷게 된다. 내 몸이 바닥과 맞닿는 순간을 즐기며 걷게 된다. 순간을 즐기며 걷게 되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심히 떨어지는 민들레 홀씨가 내 발 끝에 닿는 순간을 볼 수 있었고, 새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지는 순간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운동화 표면으로 풀잎이 스치는 감촉을 느낄 수 있고, 발끝으로 촉촉한 풀이 먹은 습기까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가끔 풀잎에 가려진 어느 짐승의 똥을 밟게 되기도 하지만, 묻은 오물들에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주저앉아 오물들을 털어낼 여유를 갖게 되었다.


잘 나고 잘난 길을 두고 엄한 길로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걸을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가끔은 걸려 넘어지고 가끔은 더러운 것을 묻히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마저도 즐기며 걷게 되었다. 울퉁불퉁한 땅에 익숙하지 않아 아직 걸음도 서투르지만, 서투른 내 발걸음조차도 즐기며 걷게 되었다.


아들과 함께 호숫가를 오랫동안 걸어왔다. 하지만 아들에게 잘 난 길이 아닌 엄한 길을 걷는 나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똥을 밟기도 하고, 웅덩이에 빠져 발이 젖는 나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



호수 한 바퀴를 다 돌 때쯤 숲이 우거진 한쪽 구석 우덩이에 피어난 꽃을 발견했다. 찾아보니 'Whiteweed'라고 한다. 꽃은 분명 연보라 꽃인데 이름이 너무 예쁘지 않다. 차라리 난 '보라 폼폼이'라고 이름 짓겠다. 잡초는 그에 맞는 이름도 하나 갖기 힘들구나 싶어 왠지 서글퍼진다. 웅덩이 근처로 가 몇 가지를 꺾어 다발을 만들었다. 손에 쥐어 보니 근사한 꽃다발이다. 웅덩이에서도 잘 자란 꽃이니 꽃병에 꽂아 두면 오래도록 내게 기쁨을 줄 것 같다.


아들도 잘 나지 못한 길 위를 걷길 바란다.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며, 내 몸이 느끼는 모든 순간을 즐기며 울퉁불퉁한 길을 걷기 바란다. 똥도 밟게 되겠지만, 꽃다발도 손에 쥐게 되는 길 위를 걸으며 그 길을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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