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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Nov 09. 2023

디폴트 값이 웃음

한 달 전 아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아들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무표정하게 있는 얼굴이 미소를 띤 웃는 얼굴인 사람요.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그냥 혼자 있을 때, 무표정일 때도 얼굴에 웃음기가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뉴트럴(neutral)한 표정이 웃는 얼굴인 사람. 디폴트 값이 웃음인 그런 사람요.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랜만에 집밥을 먹고 싶다며 온 아들의 얼굴엔 그런 웃음기가 얼굴 바탕에 스며 있었다. 아들은 매일 다른 문을 열고 자신의 색을 그리는 사람처럼 무언가 설레보였다. 


독립을 하고서 아들은 한동안 힘들어했다. 전기일을 풀타임으로 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만든 자신의 노래들이 죄다 슬픈 노래뿐이라며 우울해했다. 매일 바뀌는 근무 파트너와 일하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젤로 어렵다며 울면서 전화한 적도 있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 배우게 된 여러 가지 색깔들은 아들의 그림을 더욱 다채롭게 빛나게 해 주고 있었다. 아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색깔들을 가지게 되었고, 그 여러 색깔들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아들이 말한 '디폴트 값이 웃음인 사람'은 언제나 그 사람에게 웃을 일만 생긴다는 것은 아니다. 웃을 만한 일이 없더라도 내일을 기대하는 설렘으로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 길을 잃었더라도 길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 새로운 길을 내가 만들어 버리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웃음기 사라질 두려움에 휩싸여도 두려움마저 설렘으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아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큰길로 가지 않고, 어린 나이에 길이 잘 나지 않은 좁은 길을 비집고 들어섰다. 하지만 그 길이 설렌다고 했다. 두렵지만 설렌다고 했다. 언제든 자신이 하는 일이 설레지 않을 때는 설레는 일을 찾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아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 전기일을 시작한 것처럼, 언젠가는 전기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디폴트 값이 웃음인 사람은 하는 일 때문에 자신의 디폴트 값이 변하진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계속 설렐 것이고 그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정해지지 않은 길을 자유롭게 가고 있어 아들은 설레는 것일 테다. 누가 봐도 뻔한 길이 아니라 언제고 없어져 버릴지도 모르고 언제고 새로 날지도 모를 길을 가고 있어 설레는 것일 테다.

디폴트 값을 웃음으로 가질 수 있는 사람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레는 것일 테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들은 드디어 밝은 곡을 쓸 수 있게 되었다며 완성되면 들려주겠노라 약속을 하고 갔다. 삶이 너무 버겁다고 힘들어하던 아들이 오랜만에 웃어주고 갔다.

그 웃음이 오래도록 내 하루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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