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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May 02. 2022

호주에는 리어카 끄는 노인이 없다.

어느 작가님이 쓴, 리어카 끄는 할아버지에 관한 글을 읽었다.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보면 목이 멘다고 했다. 왜 한국엔 이리도 리어카 끄는 노인들이 많고, 그분들을 보면서 우린 힘들어야 해야 할까?


코로나 이전에 매년 한국에 가족들을 보러 나갈 때면 나도 리어카 끄는 노인들을 종종 마주쳤다. 허리도 굽은 분이, 몸도 불편하신 분이 박스가 가득인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한 모든 복합적인 감정이 날 힘들게 했다.


호주에는 리어카를 끄는 노인이 없다. 호주에서 노인이라고 하면 한가로이 쇼핑센터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거동이 불편해 요양원에 계신 노인분들은 있을지언정, 거리에서 폐휴지 줍는 노인은 없다. 호주도 캔이며, 공병을 가져가면 적잖은 돈을 준다. 하지만 그런 걸 모으러 다니는 노인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오픈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종종 마주친다.


<사진 출처: freeimages.com>



물론 노인이 되면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힘든 상황을 겪는 것은 호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년에 경제적인 궁핍 때문에, 혹은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폐지를 줍는 노인은 없다.


안타깝지만, 복지 수준의 차이가 하나의 이유다. 적어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품위의 상실에 경제적 궁핍을 얹는 일은 없다. 최소한 정부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품위 상실은 막아주고 있다. 물론 호주의 모든 노인들이 오픈카를 타고 다니며 호화롭게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살 곳과, 먹을 음식과, 품위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정부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다. 그 좋은 복지는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내는 세금으로부터 나온다. 그분들의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위해 젊은 사람들은 수입의 상당 부분, 많게는 수입의 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


세금을 많이 내고 있지만 불평은 없다. 마땅히 내야 할 것을 내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고 말한 것처럼, 내 것은 내게 올 것을 기대한다. 지금 당장 오지 못해도 적어도 내가 절실히 필요할 때 주어질 것을 알기에 불평이 없다. 물론 호주에 산다고 해서 모든 복지 시스템이 완벽하진 않다. 어느 인간 정부도 완벽한 복지 시스템을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것은 제공받을 수 있다.


복지도 복지이지만 호주에선 노인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 지금 호주 맥도날드 광고에는 모델로 머리가 새하얗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나오신다. 지난주 들린 호주 백화점 정장 코너에선 나이가 지긋해 검버섯이 핀 할아버지가 응대를 해 주셨다. 적어도 노인들이 자신의 품위를 지키며 일 할 기회가 주어진다. 나이에 상관없이 직업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고, 나이가 들어도 광고 모델로 발탁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노인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노인을 쓸모없는 퇴물이 아닌 똑같은 '인간'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나이가 들었다고 가엽다거나 안쓰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외되거나 뒤처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이에 상관없이 똑같은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은퇴'의 개념도 한국과 다르다. 기업이나 회사에서 퇴직할 나이를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퇴직할  때를 정한다. 마흔에도 퇴직할 수 있고, 일흔이라도 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구차하게 쫓겨나는 일도 없고, 퇴직 후의 일상을 걱정하지 않는다. 퇴직 후에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노인은 우리와 별개의 개념이 아니다. 누구나 결국 노인이 되고, 노인도 우리처럼 젊은 때가 있던 한 '사람'이었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 노인을 대하는 태도, 노인을 위한 처우가 단지 '노인'이라서가 아니라 그 노인이 한 '인간'이기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그 노인도 한 '인간'이기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사진 출처: skyedaily.com 포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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