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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Feb 13. 2021

폴댄스, 여기입니다

움직이는 사람TYPE_폴댄스


운동에도 나와 맞는 곳, 궁합이 맞는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수련할 곳의 분위기와 선생님의 지도 스타일. 가능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몸을 써 보고 싶고 수련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더 선호하는 수업 스타일이란 것이 분명 있다. 가령, 요가원을 선택할 때는 지나치게 하얗고 밝은 조명에, 다이어트를 자극하듯이 끊임없이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다양한 현대식으로 재해석된 요가 수업이 주를 이루는 곳보다는, 잠이 쏟아질 것 같은 달무리 같은 희끄무레한 조명에 은근한 향 냄새가 풍기고, 수업 시작 전후로 "옴~"을 외치는 전통 아쉬탕가 느낌의 요가원에 더 끌린다. 퇴근 후,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은 장소니까.


폴댄스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학원을 3~4곳을 찾아 헤매며 상담받고 체험하던 도중, 폴댄스를 포기할 뻔했다. 실제 찾아간 폴댄스 학원들은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달까. 대부분 벗어야만 폴을 탈 수 있는 환경이었다. 물론, 폴 재질의 특성상 마찰력을 최대화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맨살이 많이 드러나는 복장을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폴댄스 의상이란 게 하나의 카테고리로 존재하지만, 막상 눈으로 보고 나니 자신이 없어졌다. 폴을 이용한 스포츠이자 엄청난 근력을 필요로 하는 아주 좋은 운동이지만, "나는, 딱 속옷 정도의 크기로만 내 몸을 가리고,  작업실 보다도 밝은 조명 아래에서, 과연 운동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꾸만 마음이 뒷걸음질 쳐졌다.


그러다 발견한 실리콘 폴. 거의 반쯤 마음을 비운 상태로 상담차 방문하게 된 폴댄스 학원은, 은은한 조명과 아늑한 분위기 속에 영롱한 색깔의 실리콘 폴이 설치된 곳이었다. 선생님은 폴이 실리콘으로 되어 있어 기존의 요가복을 입고도 충분히 미끄러짐 없이 폴을 탈 수 있다고 했다. 폴 전용 의상 없이 기존의 요가복을 입고도 충분히 폴을 탈 수 있다는 점, 지나치게 밝지 않아 부담이 덜한 은근한 조명, 상담 때 선생님과 얘기를 나눠본 느낌이나 분위기. 모든 것이 합해져 온몸의 세포를 들썩이게 했다. 드디어 결정했다는 안도와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 전의 설렘으로.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조명과 분위기를 찾아서

 

새로운 운동이니까 큰 욕심 내지 말고 우선은 한 달부터, 그룹 수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주 2회, 평일 오후 그룹 폴 수업을 시작했다.


두근거림 90, 두려움 10. 폴댄스를 시작하기 전 수많은 후기를 참고했고,

'폴을 탄 다음날은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파서 일어나지 못했어요.', '발등에 멍을 달고 산다.', '다음 날이 휴일일 때 폴을 타세요.' 등 두려움 반 설렘 반 후기들이 가득했다. 이를 테면 직장 스트레스 같은 정신적인 고통보다는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 낫고, 특히 내가 선택한 운동으로 인한 자극이나 고통은 차라리 즐겁다. 몸이 힘든 만큼 정신적인 고통이 날아갈 것이고, 힘들게 운동한 만큼 몸의 어딘가가 바뀌고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게 될 거란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오니까.


하지만, 왕초초초초보의 폴댄스 수련기는 생각보다 험난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초보이다 보니 참고했던 수많은 영상에서 본 동작은 불가능했다. 내가 본모습은 팔다리를 길게 사용해 우아하게 스르륵 날아서 폴을 타고, 천장에 닿을 듯 올라가서 다시 폴을 타고 돌며 날고, 백조 같은 몸짓을 높이와 관계없이 선보이는, 스피드와 우아함이 함께 있는 동작이었지만 현실은 달랐고, 초보인 나는 깨달았다. 폴을 처음 마주한 나는, 날기는커녕 폴을 오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요가 선생님이 그랬다. '복부를 단단하게 잡으세요.' 필라테스 선생님이 그랬다. '배 쏙!'. 폴댄스도 마찬가지였다. 두 손으로 폴을 잡고 빙그르르 돌아 올라갈 때도 복부를 단단하게 잡고 코어 힘으로 올라가야 했고, 폴 위에서 동작을 유지할 때도 팔 힘에만 의존해 매달리거나 다리로만 버티는 것이 아니라 코어 힘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결국, 어떤 운동을 하든 몸의 중심의 코어 힘은 항상 잡혀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가와 필라테스를 해 온 덕에 코어 힘은 어느 정도 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비록 숙련자들처럼 빙그르르 폴을 잡고 회전하면서 동작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지된 상태에서 폴에 다리를 감아 올라간 뒤, 간단한 동작을 취하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힘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할 만했다. '폴을 탄 다음날은 일어나지 못합니다.'라는 말 때문에 혹시나 폴을 탄 덕분에 다음 날 출근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일어날 수 있었고, 소소하게 군데군데 든 멍은 짠하다기보다는 뿌듯함을 안겨 주었다. '내가 뭔가 했다!'라는 느낌 때문일까. 몸에 새겨진 멍이 새로운 것을 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쓴 나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아직은 겨우 골반 높이 정도에서 정지된 채 맨손 체조를 하듯이 휘적휘적 팔을 뻗어내는 정도지만, 욕심내지 않기로, 폴댄스를 계속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욕심이 앞서서 부족하거나 더딜지도 모르는 결과물에 지치지 않아야 하니까, 적당히 최선을 다하기로. 나도 모르게 "아름다워요, 멋져요!" 하고 외치게 만드는 선생님의 모습을 머릿속에 차분히 새겨 넣으면서, 기대감을 딱 한 스푼씩만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 기대감보다는 조금 더 많이 시간과 몸을 쌓아 올려야지 하고 살짝 욕심도 내면서.



나를 투자하고 싶어 지는, 폴댄스




사진 출처: Image by ArtTow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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