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질병이란 일상에서 해방되어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이다 .
우리는 왜 평생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죽기 전날까지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일하다가 죽는 사람들도 있다. 축구도 전반전을 뛰면 10분간 하프타임이 주어진다. 물도 마시고 작전도 점검하며 휴식을 취한다. 효율적이면서도 반전이 있는 후반전을 위한 규칙일 뿐이지만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는 아직도 매주 축구를 하는 축구광이다. 축구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인생에 있어서도 하프타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1년의 하프타임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리고 1년의 휴식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오로지 나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야 내일 죽어도 후회나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그 과정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려는 욕심도 생겼다. 지난해 가을, 꿈에 그리던 1년의 하프타임을 위해 혼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쉬고 있다.
프로이트는 일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 나아가서 노동이 성불로 가는 지름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굳이 프로이트와 불교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일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노동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피해 갈 수 없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의식주라는 멍에와도 같은 인간의 숙명을 해결하려면 일을 해야만 한다. 원시 수렵 사회부터 현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서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었다. 요즘은 고용인 또는 피고용인의 형태로 일을 하다가 죽어간다.
나도 지난해 안식년을 선언하기까지 쉬지 않고 일해 왔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나 노동의 가치를 위해서 일해본 적은 없다. 해탈을 꿈꾸며 일한 적은 더욱 없다. 결혼 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취직하니까 얼떨결에 취직을 하였다. 결혼 후에는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감당하기 위해 이를 악물어가며 일을 하였다.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가족은 풍요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 볼수록 더욱더 열심히 일의 쳇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때로는 일이 좋아서 열심히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이 주는 부수적인 효과 때문이었다. 그 부수적인 효과에 차등이 없다면 열심히 일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토피아 같은 이론으로 무장한 공산주의가 시궁창 냄새가 나는 자본주의에 패한 직접적인 이유다.
대학시절 유물론자였던 내가 흔들린 것도 졸업 후 취직을 하면서부터였다. 매달 마약처럼 들어오는 월급을 받으면서 입사동기들보다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일이 무엇이지도 모르면서 먼저 진급을 하고 싶어 졌다. 그 이유는 승진을 하면 월급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마약은 중독성이 심각하였다. 해가 바뀔수록 의존도는 높아져만 갔다. 내가 왜 사는지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아가는 생활을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로만 듣던 현대판 노예가 바로 나였다. 그 노예가 되기 위해 스펙을 쌓고 노력해야 하는 행위를 합리화시켰던 자신이 측은해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넥타이를 벗어던지기까지 7년이란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렇게 월급이라는 마약을 끊고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그 결과가 이민이었다. 하지만 이민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마약이 그리워지기 시작하였다. 나의 무모한 결단에 후회도 많이 하였다. 주변에서 이민을 말린 이유를 금방 몸이 체감하고 있었다.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블루칼라로 살아가는 일은 그만큼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젊어서 실행하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는 선택중 하나가 바로 이민이었다. 수많은 카드 가운데 가장 어려운 카드를 꺼내 든 이유도 한 살이라도 젊어서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이민을 한 마디로 정의해보라고 하면 ”맨땅에 헤딩“이라고 하고 싶다. 그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각오로 일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였고 보람과 자부심은 덤으로 주어졌다.
20여 년 가까운 이민생활은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낯선 땅에서 자영업으로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그 신호들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그때마다 강한 정신력을 앞세워야만 했다. 일은 나에게 숙명과 같은 것이고 평생 손에서 놓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참혹하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정신적인 황폐화는 그 어떤 말초적인 통증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육체적 정신적인 통증을 견뎌내는 일은 노동이라고 불리는 실제의 일보다 힘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 일에는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일종의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내 인생에 고비가 찾아왔다.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하프타임은 후반전을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니고 당장에 살기 위해서 필요하였다.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생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내와의 협의 후 급하게 한국행을 서둘렀다. 커다란 여행 가방 두 개에는 사계절의 옷이 모두 들어갔다. 벌써 겨울옷과 봄옷 그리고 여름옷을 꺼내 입었다. 다시 가을 옷을 꺼내 입으면 1년의 휴식이 마무리될 것이다.
1년 동안의 한국에서의 휴식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면서 살아갈 날들의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나와의 대화였다. 그동안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나와의 대화는 이제는 자연스러운 생활이 되었다. 그 치열한 대화의 기록물들이 바로 책 쓰기다. 내가 책을 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1년간의 하프타임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내게 의미 있고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은 엉뚱한 곳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와의 대화를 기록하기 위해 만물과 소통하며 그 좋아하던 술과도 작별을 고하고 있다. 술에 의지하지 않고 맨 정신으로 살아도 하루가 짧기만 하다. 나는 1년의 휴식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있다. 혹자는 1년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빈정 거리기도 한다. 팔자 좋게 일이 싫어서 쉬는 것이 아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고 발버둥일 뿐이다. 나처럼 하프타임이라는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도 하프타임이 주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