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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20. 2019

그건 아니죠! 독서 없이 글부터 쓰라뇨!

책을 쓴다니 지나던 소가 웃었다 #7 독서와 글쓰기의 관계

”평생 손에 꼽을 정도로 독서와 담을 쌓고 살았는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 하루 만에 매주 한 권 책 쓰기 강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독서와 글쓰기의 관계였다. 나의 답변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독서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독서 없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니 오늘부터라도 당장 한 줄이라도 써보라는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째려본다. 독서부터 시작하고 어느 정도 내공이 쌓여야 글을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역설하기 시작한다. 거의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까지 나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까지 글 한 줄 제대로 써본 일이 없었다. 올해 들어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삶은 드라마틱하게 항로를 바꾸기 시작하였다. 그 항로는 그동안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넘어서는 일대 혁명이었다. 물론 나는 아무런 글쓰기 수업을 받을 일이 없다. 글쓰기 서적들도 제대로 읽어본 일도 없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아장아장 걸음마부터 시작하였다. 넘어지면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은 혼자 걷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나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책 쓰기 강의를 하고 코칭을 하고 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닮은 듯 달라 보이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의 관계다.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해서 독서를 중단하거나 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독서는 독서대로 꾸준하게 해야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기 형식이라도 나쁘지 않다. 아니면 내가 말한 내용을 녹음해서 한글로 변환하는 기능을 사용해도 좋다. 정확도는 80%에도 미치지 않지만 수정해 나가며 글을 완성할 수도 있다. 말하기가 곧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말을 활자로 옮겨놓으면 글이 된다. 구어체가 오히려 문어체보다 더 생명력이 있고 공감하기 쉽다.      


나의 경우에는, 글쓰기는 매일 하지만 독서를 매일 하지는 못한다. 비중은 7:3 정도이다. 100%였던 독서량이 30%로 줄었다. 대신 70%는 글쓰기에 시간을 내주었다. 그 결과 많은 양의 글과 책을 쓰면서 아장아장 걷기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는 내 힘으로 당당하게 걸을 날을 기대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난다. 아이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걸었을 때의 희열은 아이보다도 오히려 지켜보는 엄마 아빠가 더 크다. 아이는 그 순간을 기억할 만한 능력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걸음걸이를 배웠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옹알이부터 시작하던 아이가 돌을 전후로 엄마나 아빠 같은 단어를 말할 때 부모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다. 물론 나도 그랬다. 아이가 말이 늦어서 애태웠기 때문에 나와 아내의 희열은 더욱 컸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고 황홀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아이가 이제는 아빠한테 영어 못한다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타박을 준다. 아빠는 영국에 사는데 왜 잉글리시를 사용하지 않고 콩글리시를 사용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가끔 나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해명을 해 보기도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아이는 아빠가 한국에서 받은 영어교육의 방법을 이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 잘못된 영어교육은 영국에 20년을 살아도 고쳐지지 않는 아픔이었다. 언젠가는 아이가 아빠의 말 못 할 사정을 이해해 주기를 은근 기대해 본다.      


그래서 더욱 한국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읽고 모국어로 글을 써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일종의 향수병은 단순히 고국에 대한 사랑과 연민만은 아니었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연민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올봄에 여러 번 꿈에 그리던 남도 여행을 하였다. 하지만 내가 아파하던 향수병의 본질은 찾을 수 없었다.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던 향수병은 바로 우리 글로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 자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독서도 거의 포기하고 나는 메일 카페로 출근한다. 그리고 쓰고 또 쓴다.    

  

이동하는 자투리 시간에는 읽는 시간이다. 그래서 서울을 벗어나 먼 거리로 거처를 옮겼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시간이 한 시간 이상이다. 이 시간이면 많은 분량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그것도 왕복으로 말이다. 글쓰기를 시작 한 이후 나의 삶은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다. 치유와 힐링은 물론이고 작가라는 직업도 생겼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강의와 전자책 판매로 수입도 생기고 있다. 교회의 전도사보다 더 치열하게 글쓰기에 대해 전도하고 있다.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들을 전도하고 나서 비로소 전도사들의 사명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는 무신론자의 종교에 대한 이해도까지 간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쓰면 변하는 것들은 이미 서너 권의 저서로 정리하여 전자책으로 판매 중이다.    

 


PS: 이 글은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년 10월 14일에 제작된 ebook이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0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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