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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24. 2019

제임스가 죽었다. 내 친구 제임스가..

인생은 리셋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제임스가 죽었다. 오랜 친구 제임스가 내가 보는 앞에서 죽어갔다. 죽음은 분명 형체가 있었고 찰나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죽어가는 모습은 슬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었다. 어쩌면 묵직한 허무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그 허무함이 주는 메시지는 나의 삶과 인생의 항로를 바꾸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멋진 친구는 커다란 화두 하나를 나에게 던져주고 다른 별로 떠나갔다. 한마디 작별 인사도 못한 채였다.      


 몇 년 전쯤 어느 날 토요일이었다.
 제임스가 일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급히 구급차가 와서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는 이송 도중 사망한다. 의사는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라고 사인을 사망 조서에 작성하고 서명한다. 그의 사망 확인 진단서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위해 부검을 의뢰하고 실시한다. 자살이나 타살 흔적은 없다. 돌연사가 맞다.      


 갑자기 장례를 치르고 그의 유품들로 남겨진 삶의 잔재들은 거의 대부분 소각 처리된다. 그가 운영하던 핸드메이드 귀금속 가게는 몇 달 동안 을씨년스럽게 방치되다 유족들에 의해 정리된다. 주인을 잃은 가게를 매일 보면서 제임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그가 나와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한바탕 수다를 떨 것만 같았다. 그의 가게는 새로운 주인에 의해 리모델링되고 간판을 바꿔단 채 다시 태어났다. 그의 흔적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토요일에는 아침 7시 전에 출근을 해서 부랴부랴 오픈을 하고 하루 종일 판매할 누들을 준비하고 허겁지겁 운동장으로 향한다. 내가 퇴근할 시점이면 모든 직원들이 출근을 마친 상태다. 출근을 모두 확인 후에는 정신없이 축구장으로 차를 몰고 달린다.      


 그날 아침에도 제임스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나의 가게 바로 옆에서 귀금속 가계를 운영하였다. 제임스는 그날 아침에 그의 커다란 하얀 개와 이른 산책을 마치고 개와 함께 출근하였다. 여느 때와 같이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영국의 중산층이었다. 유머감각도 풍부해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다. 거기다가 잘생기기까지 하였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날 오전 축구경기를 마치고 집에 가서 샤워를 마치고 오후에 다시 가게로 재 출근을 하였다. 토요일은 평일보다 두 배 이상 바쁘기 때문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오후 2시쯤이었다. 가장 바쁜 시간이기도 하다. 막 가게로 들어서려는 데 구급차가 급하게 우리 가게 방향으로 들어온다. 인파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구급차에게 길을 내어준다. 모두의 시선은 그 구급차에 집중된다.  

    

 잠시 후 믿을 수없는 광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 구급차가 내 가게 옆에 선 것이다. 잠시 후 들것에 실려 나온 사람은 아침에 인사했던 건장한 제임스였다. 그의 입에는 산소호흡기 마스크가 물려있었다. 길바닥에서 심폐소생술을 잠시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미 그는 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제임스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사망하였다고 한다. 끔찍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찰나의 순간이 제임스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이별은 노크 없이 그렇게 갑자기 밀어닥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삶이 이처럼 허무한 것이었구나! 내가 왜 이렇게 발버둥을 치며 살고 있지? 지금이라도 항로의 좌표를 점검해봐야 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했던 적은 없었다. 심지어 5년 전 어머니 장례식 때도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막연하고 알 수 없는 깊은 슬픔만이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애도도 아니었다. 자연계의 질서이자 순환의 고리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어머니의 죽음조차도 막연하게 다가왔다. 며칠 후의 장인어른의 장례식에서도 같은 느낌 같은 생각이었다. 어머니 장례를 마치기가 무섭게 장인어른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제임스의 죽음은 달랐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아니, 너만은 그렇게 하라고 산소 호흡기를 낀 채 제임스는 희미해져 가는 하얀 동공으로 나에게 호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제임스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가 떠나면서 남겨준 인생의 과제는 지금까지도 나의 항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좌표를 수정할 때마다 제임스를 생각한다. 그의 단정하고 해맑은  영국 신사의 유머감각과 품격이 그리워지는 하루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살아간다. 그 하루를 보통은 일상이라고 표현한다. 평범함이 주는 안정감과 권태감은 이율배반적이어서 서로를 항상 견제하려 든다. 한 번쯤 일탈을 꿈꾸는 삶은 누구나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 작은 일탈들은 휴식이나 여행이란 이름으로 시도되고 금방 수습이 된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큰 일탈을 저지르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거나 이민을 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삶은 중요한 시기마다 일탈을 시도하였다. 견고하고 철옹성 같은 평범함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평범함이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싫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질이나 성격상의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서는 일은 어쩌면 본능 같은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함이 주는 안락함과 익숙함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나의 지적 호기심과 허영심도 한몫하였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선택을 하고 항로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그 쉽지 않은 일을 피해 가려한다. 머리도 아프고 복잡한 일을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다. 퇴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직장 동기들은 아직도 같은 직장에 몸담고 있다. 다들 올라갈 때까지 올라가서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이다. 타이밍과 눈치 싸움에서 승리해야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 실력과 성실함만으로 조직이라는 곳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복잡한 관계의 그물에서 절묘하게 그물코들을 피해 내야 한다. 그렇게 위태로운 줄타기는 또 다른 제임스의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문제는 인생의 항로를 바꾸어도 바꾸지 않아도 어차피 파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라는 사실은 세월이 자연스럽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고 자상하게 말이다. 파도를 탈 때마다 물에 빠졌지만 운 좋게도 익사는 면하였다. 언제까지 운이 좋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파도를 타는 일은 버겁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무엇이든 내려놓을 시간이라고 파도는 친절하고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 파도의 덕분이었다. 고맙다 파도야!     


 어쩌다 보니 안식년을 가졌고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고 나니 다시 무언가가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신비스러운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1년이란 안식년의 과정들을 책으로 썼다. 그리고 그 후속 편으로 안식년 이후의 삶을 조명해 보고 싶어 졌다. 그 토대는 물론 안식년이다. 온갖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우울 감속에서도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 힘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곳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무언가를 매일 글로 옮기는 일은 신성하기도 하고 지극히 평범하기도 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의 루틴이 되어가고 있다. 글 쓰는 일을 시작하지 못하였다면 어땠을까! 이 모든 이야기들은 묻히지도 못한 채 허공에서 흐느적거리다 안개처럼 휘발되고 말았을 것이다. 제임스가 어느 날 그렇게 휘발되었듯이 말이다.      


 이제는 모든 생각들과 경험들은 그림을 그리듯 글로 표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1년 동안의 안식년이 가르쳐준 것들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부터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가치까지도 재정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 제임스처럼 죽음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 운명처럼 들이닥칠 소멸에 대해서 주눅 들 필요까지는 없다. 그래서 하루라는 용광로에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붙고 있는지도 모른다. 치열하고 열정이 그득한 하루가 모여 나의 글들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제임스는 하루를 한 달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르쳐주고 떠났다.



 불행은 파도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떠한 자비도 보여줄 마음이 없이. 무자비하게.

 제임스가 떠난 지 채 1년도 안 되어서 아내가 공황장애로 쓰러졌고 아내가 공황장애로 쓰러진 지 채 1년도 안 되어서 나는 정신분열 증세를 보였다. 허리와 무릎들은 즉시 수술울 요했다. 매일 지속되는 불면의 밤은 집요하게 내 마음속에 커다란 모래산을 쌓아가고 있었다. 우울증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들었다. 템즈강의 다리 위에 매일 서서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보고 또 보아도 강물 속에 답이 있어 보였다. 두려웠지만 평화를 느꼈다. 

 론칭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던 신규 초밥 사업은 브렉시트 여파로 휘청거렸다. 설상가상으로 황금알을 낳던 거위는 기존의 사업장에 불이 나면서 죽어갔다. 매일 수습한다고 바둥거리다 보면 이미 타 죽어버린 그 거위가 아른거릴 뿐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족이 한국에서 돌아왔다. 하지만 진정한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질병으로 치료차 한국에 가 있던 아내와는 3년이
란 별거를 했고 아내가 돌아왔을 때는 우리는 기존의 남편과 아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한국에 치료 휴양차 들어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혼을 했고 혼자 사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때, 그러니까 제임스가 죽어갈 때 나도 죽어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죽음에 애도와 동정을 보냈던 내게 죽음보다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알지 못했다. 인생에서 커다란 굴곡 한 두 개쯤과 마주했던 그래서 마음의 생체기나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단지 일들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한 번 일어난 일들은 또 다른 일들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그 일들에 저항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그렇다고 담담히 그 일들을 받아들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를 일이다. 어차피 인생은 모르는 일로 가득하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실패자로서, 패배자로서 결코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사랑을 말이다. 인생은 리셋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사랑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아닌가. 
(PS: 본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이 혼합된 글이며, 이혼을 아내가 아닌 남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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