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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09. 2019

아까워서 어쩌니! 저게 다 고사리고 녹용이자나!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저걸 어쩌니! 저게 다 고사리란 말이지! 밤에 와서 몰래 좀 꺾으면 안 되니? 저 사슴들 뿔은 다 어디다 버리니? 저 귀한 녹용들 말이야? 제내들이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

그가 사는 영국의 집은 런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집 주변에는 템스 강이 흐르고 반대편에는 리치먼드 파크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공원이 있다. 그 공원에는 몇 천 마리의 사슴이 야생 사슴처럼 살고 있다. 사슴 때 구경도 볼거리지만 봄에 일제히 머리를 내미는 고사리 군락도 장관이다. 고사리가 연한 녹색의 머리들을 내밀 즈음에 공원은 더욱 화사하고 아름답다. 겨울을 밀어내고 제일 먼저 새싹을 내미는 것은 물론 수선화다. 수선화가 시들해질 무렵이면 그 뒤를 있는 것이 바로 고사리다. 한국에서 관광 오신 할머니들은 여의도 몇 배의 면적의 고사리 군락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실제로 그의 장모님도 차를 타고 공원 한 바퀴를 도는 내내 아쉬워하셨다.


고사리는 머리를 내밀자마자 금방 잎이 나오면서 샌다며 연신 안타까워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장모님의 우려대로 해마다 고사리 때는 1미터 이상 자라서 거대한 고사리 밭을 형성한다. 가을이 되면 누렇게 말라간다. 아무도 고사리를 탐하지 못한다. 심지어 사슴들도 고사리만큼은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장모님은 고사리 못지않게 사슴 머리에 달린 집체만 한(?) 뿔들도 아까워하셨다. 저렇게 큰 녹용들 아까워서 어쩌냐며 말이다.   


고사리에는 독성 성분이 있다. 그래서 고사리는 천하무적이다. 사슴들조차도 그 연하고 풋풋한 고사리를 먹지 않는 걸 보면 사슴도 제법 똑똑한 동물이다. 모가지가 길다고 슬프지도 않은 것 같다. 그 고사리를 탐내는 사람들은 유일하게 한국 사람들뿐이다. 물론 그도 몰래 고사리를 채취해서 육개장을 만들어 먹던 시절이 있었다. 채취한 고사리는 일단 삶아서 하루 정도 담가 두어야 독성이 빠진다. 그런 다음 잘 말려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그 당시만 해도 공원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다 걸리면 벌금을 내거나 처벌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지금은 공원 내의 고사리는 물론 도토리나 밤에도 손을 대지 않는다.    

    

그가 이민 온 지 3년 정도 되던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이 40도 가까운 고열에 1주일 이상 시달린 적이 있었다. 많은 고령의 노인들이 창문을 열지 못해 사망하였다. 그의 가족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선선한 여름을 너무도 당연하게 즐기던 그들이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여름에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 지낸다. 38도에서 40도는 영국 사람들도 겪어본 적이 없는 온도였다. 스페인이나 그리스라면 모를까! 갑자기 한국의 한여름으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이상과 현실은 이민생활 중에도 완벽(?)하게 달랐다.

   

그 덥고 더운 날 저녁은 외식을 하였다. 같이 사는 한국 여학생의 제안이었다. 메뉴는 더위에 항거라도 하듯 이열치열의 매콤한 닭볶음탕이었다. 물론 닭볶음탕은 요리는 그의 몫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요리가 바로 닭볶음탕이었다. 문제는 그 닭볶음탕을 공원에 가서 저녁으로 먹기로 한 것이다. 그 당시 그의 집에는 학생 두 명이 같이 살고 있었다. 집세의 절반 정도를 그렇게 셰어를 통해 충당하고 있었다. 어린아이까지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가가 비싼 나라의 영국에서 그것도 수도 런던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한인들이나 학생들이 런던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그가 살아가는 것과 닮아 있었다. 다들 특별한 아이디어로 특별하게 살아가는 듯 보여도 사람 생각이 거기서 거기인 이유다. 생각이라는 사고의 프레임은 외부의 매개변수에 의해 종속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상과 현실이 매번 다른 이유다.     


닭볶음탕을 겁도 없이 공원에 가져가서 먹다가 개들에게 개망신을 당하다.


그는 커다란 생닭 두 마리를 테스코 슈퍼에서 사다 닭볶음탕 요리를 시작하였다. 그의 이마와 등줄기에는 땀방울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예전에는 “닭도리탕”이라고 하였는데 토리가 일본말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그가 유일하게 잘하는 요리 방식은 조금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생닭을 일단 토막을 낸 다음 한번 삶아서 기름덩어리와 불순물을 버린다. 그리고 닭을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볶아준다. 다시 끓는 물을 반쯤 붓고 미리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섞는다. 물론 바닥에 감자를 까는 일도 잊지 않는다. 거기에 온갖 한약재를 넣는다. 그 한약재는 그만의 비법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양파를 넣어 단맛을 낸다. 충분히 끓인 다음 먹기 직전 대파를 넣고 불을 끈다. 평범해 보이는 그의 닭볶음탕은 먹어본 사람들은 다들 비법을 물어볼 정도로 맛이 탁월하다. 그 비법 중 일부는 커피와 된장이 약간 들어간다는 점이다. 맥주와 소주도 살짝 넣어준다. 나머지 한 가지는 절대 밝힐 수 없다. 그의 아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그만의 비밀이다. 그렇게 한 솥 끓인 닭볶음탕을 먹기 위해 그의 가족과 세 들어 사는 학생들까지 돗자리와 솥단지를 통째로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물론 시원한 캔 맥주도 얼음을 채운 박스에 들고 말이다. 저녁인데도 30도가 넘어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그는 이런 더위는 영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처음 경험하였다. 그의 모로코 친구들도 덥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해질 무렵, 공원에 도착해서 돗자리를 깔고 닭볶음탕을 먹기 시작하였다. 맥주 캔을 따서 건배도 잊지 않았다. 한집에 사는 식구들이 이렇게 외식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런던의 공원에서 한국 요리를 먹고 있으려니 문득 런던 어학연수생 시절의 한식당 주방이 생각났다. 이민국 직원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리프트에 숨어서 천당과 지옥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다시 영국에 이민 와서 살 줄은 그도 몰랐다. 인생사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려던 차에 한 치 앞에서 사고가 터지고 있었다.  

   

바로 개들의 습격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 처다 보며 웃을 때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공원에서 취사는 안 되지만 음식을 먹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솥단지 째  들고 와서 먹는 행위는 영국인들이 보기에는 분명 낯선 풍경이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닌 개들이었다. 저녁에 산책을 나온 개들이 우리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개는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 개 코가 왜 개 코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와 셰퍼드는 물론이고 작은 개들까지 열댓 마리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개에게 매운 닭볶음탕 요리를 줄 수도 없었다. 안 주고 계속 먹으니 개들은 더욱 흥분하였다. 개 주인들은 쏘리! 를 외쳐댔지만 개의 본능인 걸 어찌하랴! 결국 그의 가족과 학생들은 먹던 음식을 싸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식구들 모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말이다. 


문화란 무엇인가를 닭볶음탕 요리가 런던의 남쪽 공원에서 가르쳐 주었다.


영국에서 남의 개나 고양이에게 음식을 주인 허락 없이 주어서는 안 된다. 귀엽다고 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주인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영국에서 개나 고양이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다. 바로 자식인 것이다. 아이들이 만 18세가 되면 독립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개나 고양이다. 그래서 개나 고양이는 그들의 자식이 된다. 그의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그의 아들이 곧 독립하면 그 자리를 검은 고양이가 대신할 것이다. 이제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개나 고양이를 단순히 애완동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반려동물 또는 자식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개를 당당하게(?) 우리의 식문화라고 주장하며 식용으로 먹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식용으로 키우는 개는 따로 있다고 해도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문화가 바로 개고기를 먹는 행위였다. 이제는 한국인들도 그런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처럼 문화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해하거나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란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자연스러움이 되기까지는 시간과 세월이라는 퇴적작용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쌀밥과 김치를 먹듯이 말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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