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Nov 09. 2019

차에 아이가 갇혀있어요!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선생님 아이가 이상해요! 자꾸 무언가를 돌려요.
세탁기도 핸들도 심지어 살아있는 강아지도요.”


며칠 전 영국 집에서 엄마와 사는 아이로부터 정식 면허를 땄다는 연락이 왔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차를 좋아했던 아이다. 유치원 시절 이전부터 시작된 차에 대한 짝사랑은 남달랐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이의 차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몰랐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운전을 자기 혼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차는 미니 쿠퍼라는 차종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전이었다. 아이는 유독 차와 세탁기를 좋아하였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아이는 세탁기의 원통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집의 세탁기뿐만 아니라 마을에 있는 코인 세탁소도 아이의 놀이터가 되었다. 영국에 있는 모든 세탁기는 드럼식이다. 그래서 아이가 돌리기에 편하다. 실제로 건전지를 통해 작동하는 장난감 세탁기만 해도 10대가 넘었다.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모자라 모으기까지 시작한 것이다. 세탁기를 돌리지 않을 때는 다른 돌릴 거리를 찾기도 하였다. 심지어 살아있는 강아지도 돌리던 아이였다.  

    

한 번은 런던 시내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후배 부부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1주일간 맡겨서 보살펴준 일이 있었다.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맡겨둔 혈통과 족보가 있다는 상당히(?) 비싼 강아지였다. 아이에게 개나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이는 매일 강아지를 돌리고 또 돌렸다. 화가 난 강아지가 참지 못하고 아이를 물려고 으르렁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강아지는 아이의 압도적인 팔뚝과 허벅지에 주눅이 들었던 모양이다. 결국 힘이 센 아이가 갑이 되고 똑똑한(?) 강아지가 을이 되는 쪽으로 자기들끼리 나름대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영화배우 마동석 뺨치는 골격의 아이였다. 신발도 바지도 맞는 것이 없어서 어려서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아이 엄마는 쭈욱 힘들어했다.

어린 강아지도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눈치 빠르게 알아차렸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홈그라운드라는 사실과 강아지에게 먹이와 간식을 챙겨주는 것도 아이였다. 아이를 물어봐야 국물도 없다는 것을 족보 있는 강아지가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그 강아지는 실제로 족보가 있었다. 모계와 부계 양쪽 모두 영국에서 열리는 우수 견 대회에서 입상한 소유자들이었다. 만일, 누렁이었다면 분노 조절이고 나발이고 간에 일단 물고 봤을지도 모른다. 본능이 우선인 동물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가 공격이다. 스포츠, 특히 축구에서도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란 말이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말이다. 그 유일한 방법인 자기 방어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서열 싸움에서 아이에게 진 것이다. 그렇게 1주일간 강아지는 지구와 달이 도는 것도 모자라 아이에게 팽이처럼 돌림을 당했다. 그는 강아지가 떠나던 날 아이가 울면 어떡하지! 하며 내심 걱정이 컸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아쉬워는 했지만 울지 않았다. 강아지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리고 놀던 장난감이 떠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강아지에게 정을 준 것도 정이 든 것도 아니었다. 정이라는 개념을 몰랐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강아지 사달라고 난리부르스를 떨었을 것이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는 차의 핸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차 앞좌석에 않으면 30분도 혼자서 논다. 핸들을 돌려보고 온갖 버튼을 눌러댄다. 매일 즐기는 아이만의 놀이 방식이었다. 심지어는 그와 그의 아내는 GP의 주치의에게 데려가 상담을 받은 적도 있었다. “선생님 아이가 이상해요! 자꾸 무언가를 돌려요. 세탁기도 핸들도 심지어 살아있는 강아지도요.” 선생님은 몇 가지 테스트를 해보더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의 친구가 없어서라고 하였다. 좋은 방법은 동생을 만들어주거나 친구를 만들어주라는 것이었다. 헉! 영국의 주치의 의사 노릇 참 편하다. 저 사람이 과연 의사가 맞는지 의심하며 GP를 나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획에도 없는 아이를 또 낳을 수는 없었다.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아이를 또 낳으라고! 그러던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자 세탁기에는 관심을 뚝 끊었다. 대신 좀 더 실질적인 차를 장난감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차에 타서 핸들을 돌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몰론 그나 그의 아내가 반드시 지켜보고 있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차의 문들도 열어두었다.     


차에 아이가 갇혀있어요     


어느 날 저녁때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놀던 차에서 아이가 갇힌 것이다. 열어둔 뒷문이 바람이 불며 닫혀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차의 문을 잠그는 버튼을 눌러두었던 것이다.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오래된 중고차에는 보조키가 없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결국 창문은 열 수 없었다. 물론 아이가 창문을 잠그는 버튼을 눌러서 문을 열 수 없었다. 결국 아내는 999에 구조 신고를 하였다. 소방관이 아니고 경찰차 2대가 5분도 안되어 달려왔다. 5명의 경찰들이 머리를 맞대고 창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잠시 후 커다란 소방차까지 왔다. 소방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리창을 깨는 방법 외에는 차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아내는 유리창을 깨도 좋으니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아이를 꺼내 달라고 하였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핸들을 돌리고 놀고 있었다. 그는 아이 곁에서 계속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놀아주고 있었다. 아직 아이는 경찰이나 소방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던 시기였다. 아이는 더욱 신이 나서 핸들을 돌리고 빵빵거리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일처리 방식은 그나 그의 아내의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유리창을 깨면 차 안에 갇혀 있는 아이가 다치거나 놀랄 수도 있다며 더욱 신중하게 토론을 시작하였다. 결국 성미 급한 그의 아내는 Yellow book(영국의 전화번호부 책자)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Door rock 전문회사에 전화를 하였다. 아이가 차에 갇혀서 긴급하다고 하니 그 회사차 한 대가 즉시 달려왔다. Door rock 회사 직원은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 긴 철사 줄 2개로 1분도 안되어 차의 문을 열었다. 경찰 5명과 소방관들이 보는 앞에서 문은 이렇게 여는 것이라는 시범을 보여주듯이 너무도 간단하고 쉽게 열었다. 경찰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저 정도의 스킬이라면 남의 집이나 사무실 심지어 은행마저 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영국에서는 고급차들의 핸들에 길고 커다란 자물쇠를 달아두었다. 그는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결국 2시간 만에 구출(?)되었다. 그의 생각은 차 뒤편 유리에 유리테이프를 부친 후 망치로 유리창을 깨서 창문을 여는 것이었다. 뒤쪽 유리를 깨기 때문에 유리가 앞좌석의 아이에게 튀어서 부상을 입을 확률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일이 커진 것에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 경찰이나 소방관이 처리하는 방식은 쉬운 것이 아니라 안전한 것이었다. 뒤 유리를 깼을 때의 부상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유리를 깨는 그 순간에  받을 수도 있는 충격과 트라우마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본에 충실할 때만 선진국도, 강대국도 될 수 있다.
그 기본은 결국 사람이 우선이었다.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같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역시 영국은 영국이었다. 어떤 일이든 안전과 관련된 일을 대충 처리하는 법이 없다. 느려 터지고 서비스도 엉망인 나라가 어떻게 세계의 2/3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에 대한 답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대영제국의 저력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편법보다도 기본이 먼저였고 그 기본에는 항상 사람이 먼저였다.      


런던 거리에서는 실제로 사람들 천국이다. 그런데 그 선진국 시민들이 신호등 앞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신호등을 지키는 사람들은 절반도 안 된다. 그들이 생각할 때 신호등은 차를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편리하면 그만이다. 빨간불에 건너도 차들은 말없이 서서 건널 때까지 기다려준다. 대부분은 빵빵거리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빵빵거리는 사람들은 "자신은 이민자 출신입니다."라고 떠드는 꼴이 되고 만다. 결국 빵빵거리던 운전자도 보행자가 되면 같은 행위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빵빵거릴 수가 없다.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빨간불과 녹색 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즉, 사람이 우선이고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래서 런던의 신호등에는 버튼이 있다. 그 버튼을 누르면 녹색 등으로 바뀐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유모차나 장애인 휠체어가 탈 수 있도록 버스 앞부분이 낮아지며 계단이 버스 본체에서 나온다. 택시인 블랙캡도 마찬가지다. 휠체어가 탈 수 있도록 택시 내부는 방처럼 되어있다. 택시 의자는 극장 의자처럼 접이식이다.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이처럼 단순히 신호와 질서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는 의미다. 그것도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시민정신이고 국가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선 것은 정부나 국가 또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바로 시민들이었다. 영국이 무서운 나라가 되었던 것은 바로 그 시민들의 힘이었던 것이다. 높은 시민의식 앞에서 모든 것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영국의 저력은 사회와 국가 시스템에서 나왔다.


그렇다고 런던에 가면 신호를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길도 핸들도 반대인 나라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교통사고를 자주 당한다. 그처럼 영국에 오래 산 사람들은 익숙하지만 관광객이나 학생들은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런던의 거리들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그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단지 런던의 역사와 외관만은 아니다. 바로 영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에서 오는 힘이다. 그 시스템을 알고 나면 왜 영국이 무서운 나라인지 알게 된다. 그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라는 의문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도 시스템에 대한 이해부터다.

이제는 한국도 시스템을 하나씩 점검해 나가야 한다.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시스템들이 정상적으로 사람을 위해 작동해야 한다. 약자들을 먼저 배려하고 일반인들이 정치는 물론 국가까지도 통제하는 힘 또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시스템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시스템 내에서는 약자라고 무시당하는 일도, 억울한 희생을 감수하는 일도 모두 사라져야 한다. 정부나 국가는 기업 편이 아니라 약자와 일반 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추구지만 그 이면에는 일반 국민들인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 없는 기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제라도 소비자를 봉이 아닌 감사의 대상으로 간주해 주기 바란다.  우리도 나 하나쯤이야! 나만 잘 살면 그만이지! 라는 사고방식으로는 그 시스템을 만들어내기는 요원해 보인다. 이제는 일반 국민들이 깨어날 때이다. 그리고 국가와 기업에 잠깐 위임했던 권력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이전 10화 아들, 아니 청년이 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