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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07. 2019

잠깐만요! 출산 전 딱 한대만 피우고 올게요!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이게 이민이야! 이사지?   

  

386의 끝자락 세대인 그는 군에서 전역하자마자 90년대 초반을 풍미하며 살았다. 남의 유래일 패스로 한 달 동안이나 유럽을 뻔뻔하게 농락하고 다녔다. 무전여행에 가까운 배낭여행은 여행이기 이전에 고행이고 수행이었다. 그를 단련시켜준 그만의 독특한 생존훈련이었다. 그 훈련이 혹독할수록 그는 권력에 대해 생각하였고 가난을 한탄하면서도 정당화나 합리화시키지 않으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될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그 한마디는 그의 자존감이 바닥을 칠 대마다 스프링 역할을 해 주곤 하였다. 뭄바이의 뒷골목에서 “give me one dollar”를 외치며 새까맣게 달라붙던 아이들의 눈에서, 런던 히스로 공항의 오피스에 끌려가서, 부다페스트의 높이뛰기 챔피언 벼룩들에게서 그리고 이태리 야간열차의 통 큰 도둑들에게서 그는 삶을 배웠고 인생을 배웠다. 가난을 벗어나려는 발버둥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고 그의 인생의 항로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그는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적만 걸어두었던 대학을 졸업하고 7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였다. 그 7년은 한국사회와 한국의 조직문화를 알기 위한 학습이었다. 7년이 지나자 정확하게 퇴사를 하고 결혼과 동시에 이민을 선택하였다. 그 자세한 과정은 이미 다른 책들에서 언급하였다. 심지어 신혼여행까지도 이민 예정지인 영국으로 다녀왔다.     

 

신혼여행이야! 실종여행이야!


결혼 직후 떠난 신혼여행은 홍콩을 경유하는 비행기였다. 아마도 케세이 퍼시픽이었을 것이다. 엉뚱하게도 그의 로망 중 하나는 부인과 홍콩의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짧게 머물렀다. 역시 홍콩의 야경은 황홀하였다. 어디에서 봐도 바다를 품고 있었다. 심지어 비행기가 이륙할 때나 착륙할 때조차 바다가 눈앞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었다 하는 바람에 놀라기도 하였다.      


신혼 여행지는 런던과 웨일스의 카디프와 스완지였다. 그의 아내는 웨일스로 신혼여행을 간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그 다운 선택이었다. 물론 카디프와 스완지는 아름답기는 하였지만 신혼여행지가 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신혼여행을 다른 데로 다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 큰 문제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에 발생하였다. 그의 집이나 처가에 어디로 신혼여행을 간다는 말을 남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너무 급하게 결혼을 하다 보니 시아버지 될 분의 얼굴을 결혼식장에서 처음 보는 해프닝처럼 신혼여행도 마찬가지였다. 3박 4일 정도의 제주도나 동남아쯤으로 생각했던 신랑 신부가 10일이 넘어서야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청개구리가 사는 법은 따로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 전부다.     


그들은 이른 봄에 만나 이른 여름에 결혼해서 그해 가을에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해 겨울에 아이를 출산하였다. 4계절의 리듬을 자연스럽고 절묘하게 탔다. 물론 영국에서의 출산이었다. 그는 아이에게만큼은 권력은 아니더라도 어떤 혜택을 주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아이가 가난으로부터 자유를 박탈당하는 삶에서 해방되기를 꿈꾸었다. 그저 한낮 꿈이었던 것이 지나고 보니 현실이 되어 있었다. 그는 뭐가 돼도 될 놈이 맞는 거 같다며 희미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거려본다.     


영국으로의 이민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중의 하나가 아이 문제였다.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장거리 이사를 간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런데 그는 그 결정을 마치 이사하듯이 해버렸다. 그리고 실제로 영국으로 이사를 하였다. 비자 등 본질에 대한 문제는 생각지도 않았다. 일단 이사 후에 짐 정리하듯이 생각해볼 예정이었다. 배짱이 두둑한 것인지 정신이 오락가락한 것인지 그 자신도 헷갈렸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그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딱히 제동을 걸만한 마땅한 언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부모님 몰래 떠나온 영국 이민, 잘한 걸까? 잘못한 걸까?



심지어 그의 부보님께도 거짓말을 하고 떠났다. 안심시켜드리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발칙하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직장에서 근무 성적이 우수해 2년간 유학을 보내준다고 거짓을 고하고 떠난 것이다. 문제는 3년이 되고 4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비로소 이것들이 이민을 간 줄 아셨다는 것이다. 그가 사는 방식은 항상 청개구리처럼 엉뚱하였지만 어떻게든 그의 목표대로 나아가는 소신과 뚝심만은 무시할 수 없었다.    

 딱 한대만 피우고 올게요! 잠깐만요! 출산 전 딱 한대만 피우고 올게요!

아무튼 그는 뱃속의 아이 때문에 서둘러 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 가자마자 바로 그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한국에 올 수 없었다. 아이가 곧 태어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3년간 그를 새벽밥 해서 먹여주고 2개의 도시락까지 싸주신 할머니의 죽음에 그는 슬퍼하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 12시에는 어김없이 라면을 끓여 밤참을 준비해 주던 분이셨다. 그는 장례를 마친 다음에야 할머니의 부고를 접하였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덤덤하였다. 호상으로 잘 치렀으니 걱정 말고 아이에만 집중하라고 하셨다. 참담한 고부갈등의 최대 피해자인 그의 어머니가 할머니 장례식 때 가장 많이 울었다는 것은 지금도 아이러니 중 하나다.     


부부는 아이 출생 3개월 전부터 출산 과정과 출산방법 등의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아이가 태어날 대학병원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3주에 한 번씩 4번 정도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끝나면 그의 아내는 수고했다고 병원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피시 앤 칩스를 선물처럼 사주곤 하였다. 그 추운 겨울에 하얀 기름종이에 싸여 있는 피시 앤 칩스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갓 튀겨낸 대구와 감자튀김이 전부다. 거기에 소금과 식초를 뿌려서 맨손으로 먹는다. 그 맛에 한번 중독되면 마약은 저리 가라다.      


잠깐만요! 출산 전 딱 한대만 피우고 올게요! 그렇게 런던의 모 대학병원 산부인과 앞에서는 서너 명의 산모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당시 영국 대학병원의 산부인과에 가면 진풍경이 펼쳐지곤 하였다. 출산하러 온 임산부들이 병원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운다. 한 손으로는 처지는 아랫배를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피운다. 환자복을 입은 입산부들의 담배 피우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뱃속의 아이는 어쩌라고 저럴까!! 그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영국의 모성애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에도 영국에서의 출산은 배우자가 전 과정을 함께 하였다.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생명의 소중함도 느꼈지만 여자의 인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그 순간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어쩌면 서글픈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산후조리라는 개념조차 없다. 미역국은 고사하고 출산 후 첫 식사로 빵과 차가 나왔다. 충격이었다.


영국의 병원에서는 출산 후에 산모에게 샤워를 하라고 한다. 그리고 식사로 토스트와 우유와 설탕이 듬뿍 들어간 홍차를 준다. 미역국은 상상도 못 한다. 그래서 그도 미리 미역국을 끓여두었다. 정신을 좀 차린 후에는 집으로 달려가 그가 끓여둔 미역국을 가져와서 먹였다. 생전 처음 끓여본 미역국은 맛이 없다. 그가 먹어봐도 정말 맛이 없다. 그래도 미역국을 먹어준 산모가 고맙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간단한 검사를 받고 엄마와 함께 입원실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를 지낸 다음 퇴원한다. 영국에서는 산후조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참 이상한 나라다. 아니면 한국이 이상할 수도 있다. 언어만큼이나 문화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를 20년 동안이나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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