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런던남자 Nov 07. 2019

아들, 아니 청년이 온다!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Hello! I passed my driving test today. “      
”아빠! 나 오늘 운전면허 땄어! “


며칠 전 그의 아들에게 받은 하나의 카톡 메시지는 그를 전율시켰다. 운전면허 합격증도 함께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왔다. 지난해 17세가 되기 무섭게 임시 운전면허(Provisional driver’s license)를 취득해서 운전을 시작한 그의 아들이었다. 영국에서는 임시운전면허 제도가 있다. 커다란 녹색 P자 스티커를 차 유리창에 부착하고 반드시 성인이 동승해야만 운전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서도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그에게 아들의 존재는 꼬맹이다. 그 꼬맹이가 수염이 성기고 목소리가 아빠인 그보다 더 영감 같은 청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때 한국에 혼자 잠깐 다녀가려고 비행기표도 샀다고 했다.

아들에게 결정타를 한방 얻어맞은 것이다. 이젠 누가 뭐래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조만간 독립을 할 것이다. 그는 대견함과 함께 미안함에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아 보였다. 아들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못난 아빠다. 오히려 부실덩어리 아빠 대신 가장 노릇을 해준 아들이었다. 그는 아들이 이처럼 자랑스러워 보기는 처음이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라며 감개무량해하였다. 오랜만에 과메기에 소맥으로 자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 또 혼나! 와 썅 노무 스키는 아이가 가장 자주 하고 잘할 수 있는 유일한 한국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그의 아이는 건장한 사내아이였다. 10개월 만에 아이와 조우는 그를 만감이 교차하게 만들었다. 그의 아이는 6개월쯤에 아직 때가 아닌데도 미리 나오려고 해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다행히 응급조치를 포함하여 달래고 어르기 끝에 10개월을 감사하게도 잘 버텨준 것이다. 물론 한명회처럼 칠삭둥이나 팔삭둥이로 태어나도 훌륭하게 살다 간 위인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똥줄이 타고 세상이 오싹하였다.     


아이의 출생으로 그는 가족이라는 조직의 위대함을 처음 느꼈다. 벅찬 감동이었다. 아이의 탄생은 축복이었고 보람 그 자체였다. 그는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더 열심히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이가 아토피 때문에 고생할 때와 창틀에 있던 커피 잔을 쏟아 화상을 입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역경을 이겨내고 아이는 잘 자라 주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를 데리고 마을로 산책을 나가는 일은 그의 큰 즐거움이었다. 가끔 공원 놀이터에 가서 놀아주는 일도 그의 중요 일과였다.      


그는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6남매를 키워내셨는지 이해 불가였다.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어 태어나는 과정은 고귀하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하였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다는 인연은 과연 어떤 영겁의 시간과 인연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불교에 관심만 많았지 제대로 경전 한 권 읽지 않은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아이만은 결코 가난하지 않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만큼 아이의 출현은 새로운 가족의 울타리를 만드는 동시에 온갖 신비로움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그도 철이 들어가고 있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철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가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의 아이는 빠르게 자랐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의 성격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이는 말이 좀 늦었지만 그렇다고 지능까지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아이에게서 조금의 문제라도 발견되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밤을 새워서 공부하는 적극성은 모성애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남편인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언어 문제에서 어려움을 경험한 아이는 한국말은 아예 배우려 하지 않았다. 부모 입장에서 굳이 아이가 싫어하는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의 모든 소통은 영어로만 가능하였다. 그의 욕심은 한국어까지 가르치고 싶었지만 아이가 한사코 거부하는 바람에 때를 놓치고 말았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먹고살기 바빠서 그때를 놓친 것이었다.      


그가 부자 아빠였더라면 그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 했을 것이다. 물론 아이가 좋아하게 만드는 일부터가 그의 능력과 관련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벅차고 버거운 그였다. 뚜렷한 직업도 직장도 없이 영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이다.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몸을 파는 것이다. 시간과 노동력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시간에 몸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가 영국에서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영국 사람들은 다하는 영어마저도 시원치 않아서 아내에게 타박을 당하는 처지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이라는 나라는 길거리의 홈리스들마저도 영어는 완벽하게 구사하였다. 그 홈리스들을 부러워해야 하는 그는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서만 놀 수는 없었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그토록 불편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에게 번듯한 유모차 하나 제대로 사줄 수 없는 가난한 아빠였다. 템스 강을 건너 맞은편 동네의 중고 가계에서 50파운드짜리 중고유모차를 사오 던 날 그는 만감이 교차하였다. 앞뒤 바퀴 모두는 달아서 울퉁불퉁하였다. 검은색과 흰색의 체크무늬는 빛이 바래 무채색의 회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저 싸구려 유머차를 이용하였을까? 그래도 접히는 기능과 브레이크도 있다며 좋아하던 아내를 그는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속도 모르는 템스 강은 그날따라 햇살을 난반사해대고 있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눈이 부셨다. 그 눈부심 속에는 영롱하다 못해 찬란한 슬픔이 빛의 스펙트럼에 합류되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대낮에 꿈을 꾸는 듯하였다.      


현실과 타협해서 만족하라는 자아와 현실과 타협하면 너는 평생 그 모양으로 살 거라는 또 다른 자아는 맹렬하게 으르렁거렸다. 템스 강을 건너려면 콰이강의 다리 위에 놓인 철교처럼 녹이 슨 오래된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다리 위에는 작은 수중보가 만들어져 있다. 수문 위쪽에 물을 가두는 장치가 있어서 물높이를 맞추어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였다. 아이는 그 다리를 유난히 좋아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강물은 언제나 화가 나 있었다. 비록 작은 수중보였지만 물이 넘치면서 폭포가 만들어지는 구조였다. 그 작은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는 햇살이라도 잠깐 고개를 내미는 날에는 언제나처럼 원형의 무지개를 만드느라 분주하였다. 무지개가 사는 그 다리 곁에는 멋진 선술집인 펍이 자리하고 있다. 자주 가서 한잔 하는 곳이다. 펍에서도 다리 위에서도 그 무지개는 언제나 원형이었다. 단 한 번도 그의 요동치는 마음처럼 세모나 네모 심지어 오각형이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빠를 곤경에 빠트리곤 하였다. 유치원부터는 아이들 생일 파티가 골치였다. 아이들 생일이 다가오면 보통 2주 전쯤에 생일 초대 카드를 받아온다. 그 카드를 받으면 달력에 생일과 장소 및 시간까지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참석한다는 통지도 전화로 해줘야 한다. 파티는 주로 토요일 오후에 열렸다. 문제는 아이들이 교류하면서 서로의 집을 비교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생일 파티는 지역 커뮤니티나 피자헛 같은 곳에서도 가끔은 하지만 주로 집에서 한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놀이공원 등에서도 한다.      


생일 파티를 다니면서 아이가 처음 의문을 재기한 것은 그의 집에는 왜 고양이가 없냐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친구들 중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장난감 고양이를 사서 선물로 주었지만 아이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짜증을 내며 울었다. 그의 아이는 살아서 움직이는 고양이를 원하고 있었다. 급하게 수소문 끝에 고양이를 분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금의 둘째 아들을 분양받아 기르게 된 것이다. 기르는 것이 아니라 모시고 살게 된 것이다. 그를 서열 3위에서 4위로 밀어낸 장본인이 그 고양이이기도 하다.  

   

아이는 생일 파티나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올 때마다 그의 집에 없거나 부족해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지적해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아이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들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른들의 언어였다. 그는 군 복무 시절의 PX닭발과 배낭여행 중 게스트 하우스에서 2층 침대까지 뛰어오르던 벼룩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자라면 아빠처럼 가난을 대물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아이의 교육 문제를 두고 그는 아내와의 의견 조율 또한 쉽지 않았다. 그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아이의 교육은 전적으로 아이 엄마가 도맡아서 하였다. 그렇다고 그러한 일을 두고 다툴 수도 없었다. 뭐 하나 뚜렷하게 해 주거나 내놓은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실 속에서 마주한 가난의 정체는 가난 그 자체였다. 낭만이나 유유자적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것이 가난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의 가난과 아이가 태어나서의 가난은 또 달랐다. 아이가 태어나면서의 가난은 불편함을 넘어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간섭하려 들었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의 아이가 태어나면 바퀴가 커다란 멋진 유모차를 사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그의 꿈은 가을날 떨어진 낙엽들이 쪼그라들어 말라가는 신세와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가 50파운드짜리 중고 유모차라는 옵션이었다. 가난을 가장 가슴 아픈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아내에게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물론 몇 백만 원짜리 유모차를 사준다고 아이가 갑자기 똑똑해지거나 더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유모차는 아이를 태우고 이동하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가 어렸을 때는 유모차는 물론이고 유치원이라는 곳도 없었다. 그는 중고 유모차 하나 때문에 마치 아이에게 죄인이 된 것처럼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될 놈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과연 그는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부자 아빠가 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어려운 난관이 참 많았지만 자식의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에 그는 머리를 떨구고 만다. 그래도 곧 아들이 온다는 설렘에 달력에 매일 하루를 지워나가기 시작하였다. 누구를 이렇게 손꼽아 기다려보기는 처음이다.



이전 09화 잠깐만요! 출산 전 딱 한대만 피우고 올게요!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리 1 런던, 전생의고향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