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Nov 02. 2019

가난하면 자유롭던가...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한 달 간의 야간열차 생활과 가난이 가르쳐 준 것들     


모처럼 만의 흔들리지 않는 침대에서의 꿀잠이라는 것은 일장춘몽이었다. 벼룩과의 결투에서 일방적으로 몰렸고 완패했다. 전날 밤 부다페스트의 악몽을 뒤로하고 그는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도상으로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는 기차에 타자마다 곯아떨어진 것이다. 어느덧 기차가 더 이상 불편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어지간한 게스트 하우스보다 편해져 가는 사실에 그는 살짝 치를 떨었다.   

   

비엔나에 도착하였을 때는 점심때쯤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늦은 오후가 다 되어있었다. 생각해보니 아침과 점심을 건너뛴 채 잠을 잔 것이다. 비엔나에 내리자마자 슈퍼로 달려가 빵과 잼과 우유를 한통 샀다. 그리고 역 대합실에서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홈리스가 따로 없었다. 주변에 널린 카페나 식당을 두고 홈리스처럼 먹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니 다시 군 복무 시절 PX 훈제 닭발이 생각이 났다.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권력을 가진 채 숙식이 제공되는 군 시절이 차라리 낳았다.      


차고 넘치는 자유는 권력이나 돈 없이는 쓰레기에 불과하였다. 그는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한 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난을 떠벌리며 합리화시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당당하게 가난과 맞서지도 못하는 위인이었다. 가끔은 가난 앞에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아니면 눈빛을 멀리 두어서 순간의 상황을 회피하려 하였다. 특히, 서울에서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주눅이 들긴 하였다. 백화점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이 다가오면 그 자신이 초라해지며 알 수 없는 부담감이 몰려왔다. 그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겪는 일이라고 치기에는 그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뻔뻔함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풋풋한 시골 청년이었다.     


가난과 결코 정면승부를 펼쳐본 적이 없었다. 가난이 주는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권력의 특성을 생각하곤 하였다. 가난에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다는 소신은 자격지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그 사실마저도 애써 감추며 살았다. 그러한 일들은 그 순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 또한 현실에 순응하며 형편에 맞게 살도록 잘 적응된 순종 형 인간이었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의 유럽 기차 여행은 그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흔들어 놓고 말았다. 가난이 주는 것은 고통이었고 궁상뿐이었다.

가진 것이 없이 가난하면 자유롭기라도 할 줄 알았다. 몸도 마음도 말이다.

시인들이 얼마나 읊어댄 안빈낙도였던가!!

하지만 유럽이라는 선진국을 한 달 동안 여행하며 느낀 가난은 현실이었고 실체였다. 형체가 없는 줄 알았던 가난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8명의 남녀가 혼숙을 하며 보고 싶지 않은 꼴을 보는 것도 가난의 민낯이었다.    

  

자기 몸의 백배인 30센티미터까지 뛴다는 벼룩의 점프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검표원이 올 때마다 깊은 잠에 빠지거나 화장실에 가는 쇼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러 번 검표원과 마주했지만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고 버티기도 하였다. 그의 여권에는 Jeon이라는 성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래일 패스에는 Kim이라는 성으로 시작되는 이름이 적혀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가난의 파생상품들이었다. 어쩌면 세상을 알아간다는 사실은 가난을 견뎌내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날은 비엔나에서 로마행 기차를 탔다. 상당히 먼 거리다. 로마행 기차는 케빈 형태의 기차였다. 방으로 된 장거리 열차들은 보통 케빈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케빈에는 보통 4명에서 6명까지 탈 수 있었다. 그 케빈에는 출입문이 있어서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도둑을 막기 위해 배낭들로 그 출입문을 막아두는 것이 이태리에서 야간열차 이용법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주요 물건은 안고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기차가 로마의 트리 미니 역에 도착하기 1시간 전에 이미 동이 터오고 있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일대 아수라장이 되어 난리법석을 떨었다. 12량짜리 기차 전체가 털린 것이었다. 물론 그의 케빈이 딸려 있는 곳도 몽땅 털렸다. 다행히 그는 카메라만 털렸고 여권과 유래일 패스 등은 털리지 않았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수차례 주의 방송을 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승객들은 터덜거리며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트리 미니 역 광장에는 이미 아침 출근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역 광장에는 몇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없는 여행자에게는 아무리 멋진 장면이 다가와도 그림의 떡이었다. 그 장면을 그릴 수도 없고 마음에 담을 수도 없었다. 마음은 이미 가난으로 가득 차 있어서 더 이상의 메모리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슬픔으로 다가온다는 사실도 그는 처음 느끼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가장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될 때만 사진을 찍었다. 대신 일기처럼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글의 형태까지는 아니었다. 간단한 묘사들이 메모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의 메모 습관은 카메라의 분실이 준 선물이었다. 세상에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더니!! 상당히 고가의 카메라는 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고의로 그로부터 탈출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모든 유럽의 도시에서 허락된 시간은 하루였다. 저녁이 되면 가난한 여행자는 다시 가장 먼 거리의 도시로 떠나야 했다. 그렇게 매일 국경을 넘나들며 힘겨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북유럽에서는 페리를 타고 제법 호화로운 크루즈 여행도 하였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넘어갈 때는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했다. 라프족이 사는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땅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휴대폰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였다. 페이지 또는 삐삐라고 하는 것을 차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헬싱키는 하루 종일 비만 내릴 뿐이었다. 시내에도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리를 지나는 차들도 한가해 보였다.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다. 외로움으로 그득한 도시였다. 오슬로보다 더 고즈넉하였다. 노르웨이 숲보다는 핀란드 숲이 보고 싶어 졌다. 하늘을 찌를 듯 한 기세 등등한 전나무 숲이 보고 싶어 졌다. 하지만 숙소가 문제였다. 핀란드에는 도미토리형 게스트 하우스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기차역에서 노숙을 하였다. 밤기차를 탈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슬로 역은 막차가 도착하거나 출발하면 역 문을 모두 닫아서 노숙이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헬싱키 역은 그렇지 않았다. 역에서의 노숙은 공항처럼 편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눈을 부칠만했다. 그는 노숙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가끔 진저리를 치곤 하였다. 가난을 받아들이고 가난과 친구가 되려는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은 무전여행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돈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미술관이나 박물관 앞에서 입장료 때문에 고민하고 한숨지어야 했다. 하루하루가 철저한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신분이 학생이든 일반인이든 중요치 않았다. 가난은 집요하게 그를 공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당화시키려 들었다. 가난해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논리는 집요하다 못해 끈적거렸다.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 깔레를 떠나 도버 항에서 입국 심사가 이루어졌다. 다행히도 입국심사관은 그의 개인 사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6개월 전 입국 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었다. 괜히 나만 조바심을 내고 한 달 전부터 근심 걱정으로 잠을 설쳤던 것이다. 그녀는 만사가 귀찮아 보였다. 전날 부부싸움이라도 한 모양이다. 아니면 몰래 만나는 남자 친구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야 업무에 저렇게 관심조차 두지 않을 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하며 런던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서 그가 내내 생각한 것은 가난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보고 싶었다. 어학연수생이면 어떻고 관광비자면 어떤가! 내일부터 당장 거리에 떨어진 동전부터라도 찾으러 다녀야겠다고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뭐가 돼도 될 놈이라는 데, 8명이 혼숙하고 그것도 모자라 벼룩까지 혼숙하는 삶은 더 이상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가난을 정당화시키려는 자기 합리화부터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뭐가 돼도 될 놈이 그깟 가난 하나 못 벗어날까! 기차는 어느덧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해 있었다. 훗날 해리포터 영화의 배경이 된 역으로 그가 탄 열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 흔한 경적도 울리지 않은 채 말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이전 06화 한 달짜리 유래일 패스 공짜 사용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