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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31. 2019

런던에서 뻔뻔함의 미학을 배우다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4. 독특한 런던 방 구하기     


정상적인 입국절차가 아니라 짐짝처럼 통관되고 그는 고양이처럼 움츠리고 있었다. 게으른 고양이는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조금씩 자기만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런던에서의 1주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시차 적응도 어느 정도 되고 무엇보다도 공항에서의 억류라는 충격에서도 벗어나고 있었다. 이제 Earls court 지역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이 비싼 곳에서 더 이상 체류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 예민한 신경을 가지고 있었다. 밤이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방에서 8명이 자면서 만들어내는 온갖 기괴한 소음을 예민한 그가 견뎌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침대 아래층에서 가끔 이를 갈기도 하고 신음소리를 내는 미국 아가씨는 진상이었다. 왜 혼자 여행을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금발의 미인이었지만 여자로서의 느낌이 전해오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이가는 소리에 몇 번 잠을 깨 서일 수도 있다. 낮에는 열심히 런던 시내 관광을 하고 밤늦게 돌아와 잠만 자고 나가는 아가씨였다. 이만 갈지 않았어도 작업의 정석을 이용해 볼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인내심을 발휘한 걸 보면 그녀의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영어의 장벽도 베를린 장벽 못지않았다.      


건너편의 덩치 큰 백인 녀석은 한수 위의 진상이었다. 그 친구가 코를 골면 창문이 들썩일 정도였다. 어쩌다 저런 공룡이 2층에서 자는지 모르겠다. 침대가 그 하중을 견뎌내는 것도 용하였다. 그것까지도 눈감아줄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는 권력이 전혀 없는 가난한 여행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커플이 들어왔다. 각각 1층과 2층 침대 하나씩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그 첫날(?) 밤이었다. 8명이 자는 공간에서 그들은 제법 용감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과감하고 적나라한 행동에도 그의 맞은편 2층의 거구는 코를 골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온 그만 신경이 예민한 것은 아니었다. 그 거구의 아래층 침대에서 자던 이태리 아가씨가 참지 못하고 불을 켜버린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그 광경에도 정작 당황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그를 포함한 동숙자들이었다. 그 커플은 웃으면서 하던 일을 마저 즐기고 있었다. 문화 충격이라기에는 너무 신선(?)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장면이었다. 심지어 한국 영화에서조차 모자이크 처리나 가위질을 당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날 밤 아마도 그는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세상을 살려면 권력도 권력이지만 뻔뻔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용감무쌍한 커플이 가르쳐 주었다. 그 뻔뻔함의 질량과 부피를 난생처음으로 계산해 보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그 커플들이 친절하게 온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 이후로 그는 뻔뻔하게 살기로 다짐하였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배짱이 있다고 하는데 그의 배짱은 사실 배짱이 아니었다. 바로 배짱과 유사해 보이는 뺀질뺀질한 뻔뻔함이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가 살집을 구하는 방법도 좀 유별났다. 그 당시 런던에는 Root라는 1파운드짜리 벼룩신문이 있었다. 색깔이 누렇게 떠서 황색신문이라고도 하였다. 그 신문은 방 광고와 구인구직 광고가 주를 이루는 한국의 가로수와 같은 신문이었다. 보통은 그 신문을 보고 전화를 해서 방을 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던 시절에 그 신문은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바이블처럼 여겨지던 중요한 매체였다. 하지만 그는 방 구하는 방식마저도 남들과 달랐다. 그는 마치 부동산 임장이라는 것을 하듯이 방을 구했다. 아니 그 임장보다 더 심한 방법이었다. 마치 집을 사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어느 날 그는 그가 생각하는 동네로 먼저 간 다음 마음에 드는 골목 전체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집들은 보통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형태가 많다. 한쪽 골목은 번지수가 짝수이면 그 맞은편 골목은 홀수다. 긴 골목은 번지수가 1번부터 1000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는 1번부터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려 혹시 빈방이나 다락방이 있는지를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그의 심산으로는 공짜로 살 방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 청소나 정원관리 등의 노동력을 제공해줄 생각이었다. 런던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낯선 사람의 방문을 경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쉽사리 문을 열어주는 집은 없었다. 열어주어도 문전박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집요하기가 찰거머리 못지않았다. 얼마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빈 방을 찾아내어 그다음 날 이사까지 마쳤다. 이사라고 해봐야 배낭 하나가 전부였지만 그는 뭐가 돼도 될 놈이라는 걸 거침없이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그가 이사한 집에는 전형적인 영국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영국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의외로 깐깐하고 까칠한 분들이 많다. 감시와 신고정신도 투철하다. 그런 난관을 그가 거침없이 돌파한 것이다. 하늘이 돌봐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행운 치고는 너무나 큰 행운을 움켜쥔 그는 의기양양했다.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한국전 참전 용사였던 것이다. 방이 3개짜리 2층 집이었는데 정원이 제법 넓고 집도 컸다. 지역은 Queens park라는 곳으로 주변 부촌과 심지어 런던 시내와도 그리 멀지 않았다. Queens park Rangers라는 프로축구팀 연고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놀던 막강한 팀이었다. 할아버지는 산책하다가 멀리서부터 벨을 눌러대던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가 방문 판매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할아버지의 예상을 깨고 막가파식으로 거처할 방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한국 사람이 그 짓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한국에서 온 젊은 학생이었던 것이다. from Korea라는 한마디에 한국전 참전용사 할아버지는 선뜻 방을 내주었던 것이다. ”아! 저놈은 뭐가 돼도 될 놈이야! “ 를 직감했을 것이다.      


할아버지 덕분에 그는 6개월 동안이나 그 집에서 집세를 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를 가족처럼 대해 주었다. 물론 이것저것 일도 시켰지만 그것은 그를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할아버지가 해도 되는 일들을 그에게 넘겨주신 것이다. 덕분에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 집에서 기거하며 영어도 배우고 한국전 관련 이야기 자료도 많이 수집하였다. 물론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가자마자 한국식당에서 접시 닦이 알바를 시작하였다. 접시 닦이는 주방보조를 겸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한국 요리들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오후 브레이크 타임에는 영어 학원에도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격상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얼핏, 게으른 듯 보여도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그는 사장을 두고 매니저와 주방장의 끈적거리는 암투와 권력 사이에서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인생을 배워가고 있었다. 칼자루를 쥔 주방장은 나이가 그보다 10살쯤은 많았다. 그는 주방장을 처음부터 형이라 불렀다. 주방장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는 주방장의 권력에 놀아날 것을 직감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주방장은 반발하였다. 어린놈이 감히 주방장님을 형이라고 부른다고 국자로 여러 차례 머리통을 맞았다. 하지만 그는 형이라는 호칭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은 술자리에서 호칭은 형으로 담판을 보았다. 그의 생각에 10살이면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였다. 주방장님과 형은 어감부터 다르고 거리감 또한 하늘과 땅 차이다. 결국 주방장은 갑자기 동생이 되어버린 어린 주방보조에게 그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다. 권력의 속성은 의외로 단순하다는 사실을 군의 행정반과 PX에서 실전으로 익힌 그였다.     


주방에는 총 3명의 직원이 일하였다. 찬모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이모가 한 명 더 있었다. 반찬을 담당하고 기본적인 요리를 하는 아주머니다. 학생 시절의 그는 그 찬모 아주머니를 오랜 세월이 지나 이민자가 되어 운영하고 있는 그의 가계에서 만났다. 손님으로 가락국수를 먹으러 온 아주머니는 더 이상 예쁘고 젊은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리고 이마에는 실개천이 흐르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남편인 할아버지는 목사님이라고 하셨다.      


당시만 해도 런던 시내에는 한국 식당이 몇 개 없었다. 가끔 이민국에서 불법체류자나 노동허가서(work permit)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불시에 들이닥친다. 방탄복은 물론 권총까지 들고 완전 문장을 한 상태로 들이닥치면 도망갈 틈이 없다. 그는 딱 한 번 끔찍한 사태를 직접 경험하였다. 운 좋게 리프트에 숨어서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 단속에 걸리면 3일 이내에 추방을 당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가 일하던 식당은 주방이 지하여서 음식물을 1층 홀로 올리는 리프트가 있었다. 겉보기에는 절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2층 형태의 구조다. 그런데 그 2층 구조의 선반을 제거하면 제법 공간이 나온다. 그 공간에 쭈그리고 들어가면 감쪽같이 숨을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다시 권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든 국가든 모든 것은 권력 형태로 한 개인의 삶을 통제하려 들고 있었다. 또다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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