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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30. 2019

영국에 여행 온 거 아니지?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2. 정말 여행 온 거 아니지?      


그에게 이틀간의 비행은 젊은 혈기에도 쉽지 않았다. 어릴 적 시골에서 서울의 이모 집에 갈 때면 어김없이 차 멀리를 하였다. 차의 흔들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유난히 기름 냄새에 약했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차를 타면 머리가 띵할 정도로 경우 냄새가 났다. 물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서 차가 흔들리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산골 소년에게 서울행 나들이는 문명과의 접선이었고 신세계를 향해 발뒤꿈치를 드는 일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그에게는 호기심이 많았다. 그 호기심이 결국 이틀간의 비행까지 연결되고 있었다. 그는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뭄바이에서 다시 한번 갈아타야 했다. 뭄바이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6시간 이상이어서 잠깐 공항을 빠져나가 골목들을 누비기 시작하였다. 가는 골목마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1달러만 달러는 아우성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두 시간 정도 뭄바이 거리를 방황하였다. 아이들을 피하기 위해 큰 길로만 다녔다. 물론 공항 주변에서 멀리까지 가진 못하였다. 1달러를 위해 그 아이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달라붙던 뭄바이는 권력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키고 있었다.

뭄바이 공항을 이룩한 비행기는 다음날 아침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내렸다. 스위스에서도 환승 시간이 맞지 않아 뭄바이처럼 취리히 시내 구경을 나갔다. 그는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방금 뭄바이 거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가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뭄바이와 취리히는 천국과 지옥을 보는 것처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취리히의 아름다운 강이나 호수를 보아도 뭄바이에서 1달러를 외치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다시 취리히 공항으로 돌아와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가는 영국항공에 탑승하였다. 영국 항공기에서 그는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승무원 아가씨는 없고 죄다 아줌마도 아니고 할머니들이었다. 승무원 할머니들은 다정했고 말이 많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직 영국 땅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환상과 편견들이 하나씩 깨지고 있었다. 취리히를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반 정도의 짧은 비행 끝에 마침내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런던은 빌딩들은 안 보이고 공원과 나무들만 보였다. 오밀조밀한 집들은 마치 자나 컴퍼스를 대고 직선이나 원을 그린 것처럼 질서 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지붕 색깔이나 굴뚝 위치까지 통일이 되어 있었다. 저것이 영국의 저력이었구나! 를 생각하는 사이 그는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대로 향하였다.  


입국심사대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그를 더욱 강해지게 단련시키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영국의 입국심사대는 깐깐하기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미국이나 호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려했던 대로 그는 입국심사대에서 오피스로 끌려가야만 했다. 물론 무장한 경찰에 의해서 말이다. 이유는 그의 입국 사유가 문제였다. 2주 정도 여행을 한다는 그는 1년 오픈 리턴 티켓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유럽여행까지 한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차림새로 보아 적당히 일하면서 영어를 배우다 가려는 흔한 그런 부류의 불청객이었던 것이다. 그는 오피스에서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리 항변을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알아들었던 말은 3일 안에 추방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한 두 차례 통역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피스 직원 중 하나가 알려주었다는 점이다. 아마 그가 너무 불쌍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는 뭄바이 뒷골목의 1달러를 외치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신세가 되어 낙담하고 있었다. 그대로 돌아가면 5개월 동안 분당의 아파트 현장에서 막노동한 일이 허사가 되고 만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한번 추방을 당하면 다시는 영국에 재입국할 수 없다는 일이다. 야망이 큰 그가 훗날 대통령이라도 되었다가 영국에 국빈 방문할 일이 생기면 어쩐단 말인가! 이처럼 쪽팔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라 망신도 유분수지! 망상과 환상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무료한 대기시간은 길어졌다. 기다리던 통역관이 온 날은 다음날 아침 일과시간이 시작된 후였다. 그는 오피스의 간이 접이식 침대에서 하룻밤을 잔 것이다. 말이 오피스였지 간이 구치소와 다름없었다.      


통역관으로 온 사람은 중년의 한국 아줌마였다. 50 정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하얀 정장에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구두도 굽이 조금은 높은 검정 구두였다. 안경은 쓰지 않았다. 그녀와 그의 만남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를 보는 순간 아! 이제는 살았구나! 한국 사람이 통역관으로 오다니! 역시 한국말은 어려워!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우리말이 이렇게 어렵게 해 주셔서......, 그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마치 이모나 고모를 대하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의 소박하고 어리숙한 희망이었다. 그녀가 자기소개를 그에게 하면서부터 그의 안색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기는 영국 정부의 이민국 통역 파트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이름을 그에게 소개했다. 근무부서와 연락처도 알려주었다. 그녀는 자기를 한국 사람으로 보지 말라는 말로 나의 취조(?)를 시작하였다. 추방 전에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녀의 빳빳한 단어에서 권력이란 용어가 다시 떠올랐다. 그는 군 목부 시절 그 권력을 훈제 닭발과 엿 바꾸듯이 바꿔 먹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권력의 속성을 이미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추방해도 되는 정당한 사유를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고 그녀는 메모를 시작하였다. 경찰서 조서 작성처럼 절차와 순서가 있었다.      


그는 일관되게 영국에서 일할 이유도 생각도 없다고 하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휴학한 학교를 다녀서 졸업해야 한다. 졸업만 하면 좋은 기업을 골라서 갈 수 있다. 그 이유로 그는 한국의 유명  대학에 다니고 있고 그의 지도교수와 통화할 수도 있다. 돈을 벌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녀는 실제로 한국으로 전화해서 지도교수와 통화를 했다. 지도교수님이 모든 것을 보증한다는 전제하에 그는 추방을 면할 수 있었다. 1년짜리 오픈티켓은 언제 집에 갈지 몰라서라고 설명 하였다. 어차피 3개월이나 1년이나 오픈티켓은 가격차이가 나지 않아서 아무런 생각 없이 1년 오픈티켓을 구입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서류에 서명을 하고 그는 마침내 화물이 통관되듯이 통관이 되었다.

그의 여권에는 6개월짜리 체류허가 검은색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여권을 돌려받은 그는 짐 보관소로 안내되었다. 짐 보관소에서는 거대한 배낭 하나가 보관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빨간 배낭은 쓰러진 채 그에게 다시 권력이란 용어를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그래 권력이 필요해! 어떡하든 그 권력이란 녀석을 움켜쥐고 말 거야! 권력 없이 사는 일은 이처럼 초라하고 고달프단 말이야! 그는 넘어진 배낭을 세워 어깨에 짊어지며 혼잣말로 웅얼댔다. 이틀 만에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떠한 난관이라도 헤쳐나갈 자신이 생긴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공항 입국심사관과 통역관이 알려주었다. 영국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잠까지 공짜로 재워주며 친절을 베풀어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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