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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29. 2019

아내 성을 따르는 최초의 남자!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제1권, 런던, 전생의 고향


1. 프롤로그: 아내 성을 따르는 최초의 남자!

2. 별똥별이 보내준 런던 어학연수

3. 영국에 여행 온 거 아니지?  

4. 어이! 한국 촌놈 영국은 처음이지?

5. 런던에서 뻔뻔함의 미학을 배우다

6. 한 달짜리 유래일 패스 공짜 사용기

7. 가난하면 자유롭던가!

8. 어학연수생이 런던에 영어학원을 차렸다!

9. 잠깐만요! 출산 전 딱 한대만 피우고 올게요

10. 아들, 아니 청년이 온다

11. 차에 아이가 갇혀있어요

12. 아까워서 어쩌니! 저게 다 고사리고 녹용이자나!

13. 한 트럭의 명품백이 고양이 앞에서 숨죽이다.

14. 섬나라 버버리의 협박에 구겨진 자존심!


#프롤로그


Mr. Lee!! 미스터리하게도 미스터리는 런던 남자라는 아이디로 책을 쓰고 있는 사람의 영국 성이다. 평범하게 보이는데 평범하지 않은 어느 한국 사람의 영국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미스터리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다. 성에 미스터를 붙여 존칭처럼 부르는 영어식 표현이다.       


천안 전 씨인 그가 결혼 후 아내 성을 따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상에서 아내 성씨를 따르는 남자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운명이라 여기며 아내 성을 따르는 세계 최초(?)의 남자가 되어 살아왔다. 물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아마존 정글 속 원시 모계 부족사회에서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아마 그 부족들도 남편들의 성을 따르거나 결혼 전 본인 성을 사용할 확률이 높다. 남편이 아내 성씨를 따르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추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아직 그러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여자가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남편 성을 따른다. 요즘 이혼이 잦아지면서 성이 자주 바뀌는 해프닝이 일자 우리나라처럼 자기 성을 유지하는 여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며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조차 결혼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남편 성을 따른다.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해도 아내는 그 잘난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자기 성씨를 유지하지 않는가! 남편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기 본래의 성씨를 유지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있다. 그것도 영국에서 말이다.    

  

결혼하면 당연히 남편 성을 따르는 영국 땅에서 아내의 성씨를 따르는 남자 이야기는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 남자의 아내는 충무공의 후손인 이 씨 성을 가진 여자였다. 처음부터 그 여자 주변의 사람들은 그 레이디를 미세스리(Mrs. Lee)라고 불렀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남자의 아내는 똑똑하고, 영국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사교성도 좋고, 그것도 모자라 영어까지 잘하는 것은 물론 미소마저 일품이었다. 그 남자가 첫눈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외모였고 성격이었다.      


지역사회나 가계가 위치한 시장에서 그 여자의 볼품없는 남편이 나설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가계에서 일하기 때문에 남편을 호칭하는 문제에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시장의 상인들이나 손님들은 당연히 그 남편이 이 씨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자연스럽게 Mr. Lee가 된 것이다. 결혼한 여자가 남편 성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Mrs. Lee의 남편인 그 남자는 처음 보는 손님들에게도 Mr. Lee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천안 전 씨의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을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아버지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그였다. 그 족보를 곁에 두고 조상들을 나열하시며 자랑스러워하던 아버지의 미소가 떠올랐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 족보가 조선 후기 삼정이 문란할 때 돈을 주고 샀는지 아닌 지에는 관심조차 없던 그였다.      


그 남자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런던에서 Mr. Lee가 되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본인조차도 Mr. Lee가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계속 자랑스러운(?) 천안 전 씨라는 성씨를 위해 투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영국에 이민 가기 전부터 그의 영어의 성과 이름이 같았다는 점이다. 즉, John B. Jeon이 그의 영어 이름이다. 우리가 볼 때는 이름과 성이 다르지만 그들은 같이 발음했다. 둘 다 존으로 발음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왜 하필 이름을 John으로 지었는지 모른다. 오래전 런던 어학연수 때 학교 선생이었던 Tonny가 그의 성을 이름처럼 John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아픔은 시작되었다.     

 

미스터리한 이야기지만 사실이었다. 남편의 성씨였던 전은 이름이 되고 말았다. 전(Jeon)이 존(John)으로 자연스럽게 변하였다. 심지어 그 남자의 아들 녀석의 성씨마저도 학교에서 엄마 성인 Lee라는 성씨로 등록이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불리었다.      


그래도 그 남자는 부인 성을 따르는 일이 부끄럽거나 속상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전혀 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미스터리가 아니라고 해도 그의 성씨는 찾아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씨를 빼앗긴 한을 어떻게든 풀고 싶었다. 한국의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께도 면목이 없었다. 당신 자식이 잘나서 좋은 학교도 나오고 이민도 가서 성공해서 잘 사는 줄 아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 자식이 당신이 물려준 성씨는 고사하고 마누라 성씨를 따른다고 하면 아마 노발대발하실 것이다. 늘 머리맡아 수북하게 쌓아놓은 족보를 보는 분이 그의 아버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족보에 있는 그 넷째 아들 이름에 30cm 플라스틱 자를 대고 빨간 줄을 꾹꾹 눌러서 그으실 것이 틀림없다. 족보에서 파내는 작업이 그처럼 쉽고 단순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가 족보에서 파내 지면 그의 아들이 문제였다. 이 문제를 두고 그의 아버지는 고심을 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 남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성씨를 잃어버린 초라함을 이기지 못하고 천안 전 씨라는 성씨를 버리고 런던 전 씨의 시조가 되었다. 현지 한국 대사관과 한국의 주민 센터에 변경 문의를 했지만 직원들도 모르겠다는 또는 알아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조만간 등록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 보겠다는 입장이다. 그 남자의 엉뚱하고도 기구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 한다.      


한때 전 세계의 2/3를 지배하던 작은 섬나라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나라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렀다. 누구나 잘 아는 대영제국이라 불리던 영국이다. 어쩌다 보니 그 흔한 미국, 캐나다는 물론이고 호주나 뉴질랜드도 아닌 영국이라는 나라의 땅에 그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 남자의 독특한 성격과 취향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평범함이나 상식을 거부하며 일탈을 즐기는 돈키호테처럼 사는 남자의 선택 치고는 영국마저도 평범한 나라였을지도 모른다.      


그 남자는 성을 빼앗긴 낯선 광야에서 거침없이 이민 생활을 개척해 나갔다. 화이트 칼라였던 그는 온갖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행히 영국이라는 나라는 일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편이었다. 그래서 일에 더욱 매달려 살았다. 고군분투하며 나름 작은 성공을 이루기도 하였다. 마누라 앞에서는 항상 작았지만 야망은 제법 컸던 그 남자는 영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들어보면 정말 돈키호테와 같은 그의 이야기들은 실제 그의 경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가 20년 동안 살고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의 시각으로 재해석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영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오해도 간간히 풀어줄 것이다. 그 찬란했던 섬나라를 이민자이고 아웃사이더인 그의 시각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단순한 여행이나 역사책이 아닌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진액 같은 이야기들이다.     


영국이 왜 해가지지 않았던 나라였는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물론 요즘은 해가 져서 좀처럼 뜨지 않는 나라이긴 하지만 썩어도 준치가 바로 영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영국인들의 EU 탈퇴는 1,2차 대전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그 선택의 이면에는 유럽에서 무차별적으로 유입되는 이민자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EU 회원국이면서도 유일하게 자국 화폐인 파운드를 썼고 국경을 완전하게 개방하지 않았던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그는 그 역사의 변곡점에서 사업을 확장하다 호되게 당하며 많은 것을 잃었다. 브렉시트의 엄청난 피해자 중 한 사람이 바로 그다. 하필 그 시점에서 영국이 그의 허락도 없이 EU를 탈퇴하는 바람에 그를 비롯한 영국의 소상공인들은 일생일대의 고비를 맞았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막대한 피해를 온몸으로 체험 중이다.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는 슈퍼 가기가 두려워지게 한다. 최저가를 추구하는 ASDA, 알디, 리들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도 브렉시트 덕분이다. 사실, 물가는 가만히 있는데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최소 1년에 두세 번은 물가가 싼 유럽으로 휴가를 다니던 관행도 사라져 가고 있다. 5시간 거리의 뉴욕으로의 쇼핑도  언간 생심이 되어가고 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바로 영국의 브렉시트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는 일 또한 그의 몫이었다.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온 영국 이야기들은 그의 2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총 3권으로 구성되었다. 대부분은 그의 실제 경험과 사례들에 근거한 이야기들이다. 일부는 흥미를 위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끝으로 이 황당하고 이상한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오기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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