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Oct 30. 2019

별똥별이 보내준 런던 어학연수!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1. 별똥별의 사생활 간섭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는 올림픽 준비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한국에서도 올림픽이 열린다며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였다. 골목의 보신탕집들과 노점상들이 첫 번째 정리대상으로 선정되어 몰매를 맞았다. 시국 또한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주화 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그는 대학에 입학하였다. 전형적인 시골 농촌에서 나고 자란 촌놈에게 대학은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왜곡된 군부독재의 잘못된 관행들을 여과 없이 비디오로 시청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디오를 시청할 때는 짭새(사복경찰)들의 감시를 피하려고 보초를 돌아가며 섰다. 운동권이라고 해서 운동하는 곳인 줄 알고 들어갔다. 몸은 막걸리로 망가져갔고 운동이라고는 팔운동이 전부였다. 돌 던지는 투석전과 화염병 던지는 방화전을 하려면 빈 술병이 많이 필요하였다. 그는 주로 술병 모으는 막중한 일을 담당하였다. 심지어 술집을 돌아다니며 20원씩 주고 사기도 하였다.  

       

근 현대사의 왜곡된 진실들을 알아가며 충격과 도탄에 빠져있을 수많은 없었다. 하지만 2년의 대학 생활 동안 수업을 제대로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6월 항쟁을 겪으며 시국은 조금 누그러져갔다. 그 촌놈은 내세울 거라고는 쥐뿔도 없었다. 어딜 봐도 어수룩하고 KS 인증마크가 보장이라도 하듯 촌놈처럼 생겼다. 그래도 그 촌놈에게서 무언가를 찾아보라면 똥 배짱 하나와 무 대포 정신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386의 끝자락에 매달린 채 수업 한번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데모나하고 막걸리나 마시다 올림픽이 끝나고 다음 해에 강원도 춘천에서 3년간의 시집살이를 하게 된다.      


3년의 시간도 그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지는 못하였다. 그는 여전히 꿈과 희망도 없는 무기력한 20대 초반의 넋 나간 청춘이었다. 짬밥을 먹을수록 그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이 손바닥보다 좁고 답답한 남쪽 땅에서 탈출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군 생활이란 계급이 높아질수록 시간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온갖 잡다한 사역 집합에서 열외를 받기 때문이다. 행정반의 서무계란 보직을 가지고 있던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무서운 병사로 변해가고 있었다. 중대 행정반에는 서무계와 교육계 그리고 병기계 라는 3개의 보직이 있다. 이 세 개의 보직을 일등상사인 인사계가 관리한다. 인사계 위에는 중대장이 있다. 중대장 실은 행정반 안쪽에 있다. 아들 같은 새파란 대위와 아버지 같은 인사계의 미묘한 대립에서 줄을 잘 못서는 날에는 하루 종일 괴롭다. 서무계는 인사계의 일을, 교육계는 중대장의 일을 처리한다. 병기계라는 보직은 말 그대로 총을 포함한 병기를 담당한다. 그리고 정비반장이라는 보직이 하나 더 있었다. 이유는 그가 근무하는 부대가 기갑부대이기 때문이었다. 정비반장은 중사가 담당한다. 그런데 그 정비반장이 하필 시골 초등학교 친구의 형이었다. 세상 참 좁다. 인사계의 시집살이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그 정비반장 형 덕분이었다.      


서무계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가장 기본적인 일과는 3일 치 근무 명령서를 작성해서 복도에 게시하는 일이다. 부대 일지 작성부터 월급, 담배 지급 같은 잡다한 행정업무는 물론 군기교육대나 영창에 보내는 서류 작성까지 일들이 많다. 휴가서열도 작성해서 중대원들의 휴가도 보내줘야 한다. 외출 외박도 관리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특히 매일 작성하는 근무 명령서는 그 힘이 막강하였다. 그는 수시로 PX로 불려 다니며 닭발과 만두를 대접받았다. 휴가 서열을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대장들과 부사관들도 PX로 불러댄다. 인사계는 서무계가 행정반 사무실에 없으면 PX로 곧바로 전화한다. 하지만 PX 사병까지도 서무계가 관리한다. 그는 현역이 아닌 방위병이어서 출퇴근이 가능한 병사다. 그마저도 서무계의 눈치를 보고 인사계 전화가 오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 인사계가 찾는다고 살짝 귀 뜸해 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군 생활에서 그는 권력의 맛을 보고 말았다. 제대 후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권력의 맛을 이어가는 길은 단 한 가지의 옵션밖에 없었다. 바로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이처럼 무모한 도박이 없어 보였다. 그는 법학도가 아니다. 심지어 사촌의 팔촌 격인 행정학과도 아니다. 그의 아이큐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고시 패인이 그려질 뿐이었다. 미래의 그의 모습은 바로 고시 패인이었다.      


그렇다면 그저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 권력을 가진 서무계에게 닭발을 사주던 병사들처럼 말이다. 적당히 바칠 것은 바치면서 그가 필요한 것을 얻어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막강한 권력의 맛을 보고 말았다. 전역일자가 다가올수록 그는 근심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떡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이 권력을 유지하며 닭발이라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지만 그가 권력의 근처에 갈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달 밝은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보초근무를 서러 침상에서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봄날 저녁이라고는 하지만 강원도의 밤은 겨울처럼 냉기를 내뿜어댄다. 그가 외곽 보초를 서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을 근무 명령서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매일 밤잠 설치며 보초를 서는 병사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행정반에 와서 따질 용기를 가진 병사는 없었다. 심지어 선임병사도 마찬가지다. 서무계에 찍히면 최악의 근무시간인 새벽 4 시조에 투입하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근무를 나가려면 3시 40분에 깨서 준비를 한다. 그리고 4시부터 5시까지 근무를 서고 돌아오면 5시 15분이다. 침상에 옷을 벗고 눕지도 못한다. 6시면 기상나팔이 지랄을 떨며 깨우기 때문이다.     


달 밝은 봄날 밤의 강원도 부대에서 보초를 서는 일이 낭만이 되려면 최소 상병 이상은 되어야 한다. 아니면 한 시간 동안 악몽의 얼차려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보초는 반드시 2인 1조로 편성되고 시행된다. 근무병들이 졸다가 일직사관이나 일직사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군기교육대나 영창을 갈 수도 있다. 그래서 후임 병사를 혹독하게 다루는 것이다. 군기가 바짝 든 후임 병사를 믿고 앉아서 한숨 잘 수 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날 밤은 분화구들까지 보일 정도로 달이 밝고 탐스러웠다. 물론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촘촘하였다. 순간 별똥별이 하나 떨어지는 것을 포착하였다. 그 순간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졸지 않고 근무를 제대로 선 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별똥별은 그에게 화두를 하나 던져주고 사라져 간 것이다. ”어이 군인 친구! 한국 말고도 살 곳은 저 별들만큼이나 많을 거야. 왜 이 좁은 땅에서만 살려고 하지? 바보 아냐! 그것도 꼴에 권력까지 탐하면서 말이야! “ 찰나의 순간이 삶의 이정표가 될 줄은 몰랐다. 그날도 근무 명령서에서 그의 이름을 살짝 뺐더라면 그는 어쩌면 평생을 한국이라는 좁고 답답한 땅에서만 살았을 것이다. 권력은 고사하고 월급날만 기다리는 조직에 몸을 파는 회사형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것도 지금의 나이쯤이면 이미 밀려났을 것이다. 훨씬 오래전에 그의 책상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별똥별의 가르침을 그는 잊을 수가 없었다. 제대하기가 무섭게 마닐라로 달려가서 약간의 적응기간을 거친 후 마침내 어학연수를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영국으로 갈 줄은 몰랐다. 아마도 그의 독특한 개성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영국행 비행기 표를 마련하기 위해 분당의 아파트 현장에서 5개월 가량 막노동을 하였다. 군 제대 후 젊은 피라고 5만 원의 일당을 받았다. 첫 달은 약값이 더 들어갈 정도로 힘이 들었다. 노동일을 해본 적이 없는 촌놈이자 예비역이었던 것이다. 당시 분당은 절만 정도가 지어지고 있었다. 십장이나 반장이라 불리는 아저씨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대했다.

”젊은 녀석이 왜 이렇게 일을 못해! 군대 갔다 온 거 맞아!! 그래도 시골 출신은 확실해 보이는데 농사일도 안 해봤나! “ 그랬다. 그는 농사일도 안 해보고 군에서도 회사원처럼 사무실에서 지냈다. 심지어  훈련 나갈 때도 행군이 아닌 장갑차를 타고 다녔다. 걸을 일이 없었다. 심지어 아침 구보도 열외였다. 행정반 상황 병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5개월 동안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은 험난하였다. 그 분당이라는 곳이 지금처럼 금싸라기 땅이 될 줄은 몰랐다. 권력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제법 모여 사는 곳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5개월의 노동을 마치고 마침내 어학연수를 떠났다. 홍콩, 뭄바이, 취리히에서 세 번을 갈아타고 런던에 도착하니 이틀이란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의 어학연수는 그렇게 우연하게 별똥별 하나 때문에 시작되었다. 그 연수가 이민으로까지 발전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권력을 탐하지 못할 바에야 권력을 피해 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아마 알량한 권력을 맛보았던 그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이전 01화 아내 성을 따르는 최초의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