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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30. 2019

어이! 한국 촌놈 영국은 처음이지?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3. 런던과 춘천의 개나리 

    

입국과정에서 일생일대의 수난을 당하고 난 그는 런던 히스로 공항을 나와 깊은 심호흡부터 했다.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 한숨에는 그의 결연한 의지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계획대로 연수도 하고 여행도 할 생각이었다. 물론 일도 해야 한다.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악명 높은 런던의 물가를 감안하면 어쩌면 일만 하다가 돌아갈 수도 있다. 일자리야 찾아보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는 1년간의 영국 어학연수를 숨기고 온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강원도의 어느 암자에 들어간 줄 알고 계셨다. 2년 동안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까지 시켜 드리고 왔다는 것이다. 참! 대단한 친구다. 그는 뭐가 돼도 될 것이다.      


런던 서쪽의 Zone 1과 2의 경계쯤에 Earls court라는 지역이 있다. 당시에는 게스트 하우스가 많아서 배낭족들의 천국이었다. 교통도 좋았고 도미토리 형식의 게스트 하우스는 높은 런던의 물가를 비웃을 정도로 저렴하였다. 그는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사전에 예약해 둔 Earls court의 게스트 하우스로 향하였다. 피카딜리 라인은 공항에서 시내 중간까지는 지상으로 달린다. 물론 공항에서는 지하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이 공항을 벗어나 지상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노란 개나리들이 지천이었기 때문이다. 런던의 봄이 선로를 따라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두고 온 한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입대하던 4월에도 강원도의 연병장에는 개나리가 지천이었다. 그 개나리에는 희망조차 품지 못하고 흐느적거렸다. 강원도의 황량함에 비하면 그는 지금 천국에 와 있는 듯 한 표정이다. 같은 개나리인데 이처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놀라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개나리뿐이 아니었다. 지하철은 창밖의 풍경을 강요하며 영국은 이런 나라야! 라며 자랑을 늘어놓기 바빴다. 가끔은 목련도 영국 전통의 정원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며 거들었다.

어쩌면 2층 집들이 저렇게 질서 정연하게 지어질 수 있었을까? 집들만 보아도 영국이라는 나라가 무서워지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저력을 굳이 다니면서 찾을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압도하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그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면서도 그는 권력이란 형체도 없는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제국주의 권력이나 PX 훈제 닭발 권력이나 권력은 편리하였고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권력을 잡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군에 입대해 알량한 권력을 맛보기 위해 PX에서 접대를 받을 수는 없었다. 생각들에 포위당한 채 그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뭔가 특별하게 살아보자! 권력을 잡지 못할 바에야 남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는 집요하리만큼 그 화두를 붙들고 늘어졌다.     

 

30여분 만에 지하철은 Earls court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Earls court 역의 외관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거무스름한 아치형의 역은 우울을 담고 있었다. 활기찬 출퇴근 시간을 빼고 말이다. 역에서 내린 그는 지도를 찾아가며 게스트 하우스로 향하였다. 게스트 하우스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도착하자마자 방이 아닌 침대를 배정받았다. 이유는 도미토리였기 때문이다. 한방에 2층 침대가 4개가 있었다. 그러니까 8명이 한방에서 자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100달러에 집 한 채를 통째로 임대하던 것과 비교하면 물가 차이는 도무지 계산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필리핀은 머리에서 지우고 한국과의 물가만 계산을 했다. 당시 말보로 레드 담배 한 갑의 차이가 4배 정도 났고 국산 담배는 또 그 배의 차이가 날 정도로 런던의 물가는 치명적이었다.      


지금도 Earls court 지역을 지나면 그는 하얀 페인트칠을 한 원기둥이 있는 그 게스트 하우스를 생각한다. 한방에서 8명이 자는 일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보통은 남녀가 구분이 되어 있는데 그 집은 남녀 구분이 없었다. 그는 2층의 구석에 터를 잡았다. 예약은 1주였는데 아까운 하루를 벌써 까먹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공항 오피스에서의 1박은 무료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그는 위안이 되는 눈치다.     


그는 런던에서 1년이나 아니면 1년 반 정도를 체류할 예정으로 영국에 들어왔다. 그래서 세 번이나 환승해야 하는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여차하면 리턴 티켓은 버릴 생각이었다. 그의 계획이 정확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유럽 배낭여행 일정 때문이었다. 배낭여행을 몇 달 할지 여부에 따라 체류기간이 늘거나 줄 수도 있었다. 그의 영국 입국의 숨은 의도는 바로 배낭여행이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유럽의 선진국들을 여행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세계사에서 권력을 쟁취하였는지의 과정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아가서 그 권력을 기반으로 한 착취들이 모여 부를 축적하고 그 부가 국력이 되어가는 과정들이 서양사이고 그 서양사가 바로 유럽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역사 따위에 흥미를 느끼는 인물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어떡하면 청개구리처럼 살면서 권력을 한번 잡아볼까를 연구하는 한량 같은 사람이었다. 딱히 부지런하지도 않았고 돈에 대한 욕심도 많지 않았다. 아니, 평생 큰돈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해서 돈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의 주위에 부자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권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군에서 그 맛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작은 권력에도 굽신거리거나 아부하는 병사들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 그였다. 그 작은 권력은 마약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니코틴 정도의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기 시작하면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PX에서 수시로 얻어먹었던 훈제 닭발의 맛을 잊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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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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