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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01. 2019

한 달짜리 유래일 패스 공짜 사용기

미스터리(Mr. Lee) #1. 런던, 전생의 고향

5. 어학연수중 배낭여행    

언제까지 식당일만 해야 하는 것일까?
왜 영국에 와서 이렇게 살고 있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현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였다. 하지만 그는 뭐가 돼도 될 놈이라는 사실을 정말 믿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의 위력은 어느 개인의 삶 자체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진저리가 처진다. 하지만 그에게 이 말은 고비 때마다 삶의 이정표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실제로 그도 그렇게 믿는 눈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사건건 권력을 탐하려는 그를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권력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해바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다시 런던에서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식당일도 포기하고 할아버지 댁에서도 나오기로 작정하였다. 어느새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6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관광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또 한 번의 고비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파리만 다녀와도 다시 6개월짜리 관광 비자를 찍어주었다. 하지만 그냥 파리만 다녀오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파리를 다녀온 목적이 비자 연장을 위한 것이 확인되어도 스탬프를 찍어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처음 영국에 입국할 때의 전과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해야만 하였다. 결국 그는 한 달 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결심하고 바로 다음날 도버 항구로 떠났다. 도버에서 배를 타고 깔레를 통해 프랑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배낭여행은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에는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이 없었다. 대륙으로 넘어가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야 했다. 돈이 없는 그가 선택한 것은 물론 배편이었다.     


프랑스 깔레에서 파리까지는 버스로 한나절이 걸렸다.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시작된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파리 북 역 근처의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김이라는 친구를 우연히 만나면서부터 그가 생각하는 배낭여행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배낭여행은 대부분 버스를 이용한 여행이었다. 자유로운 기차 여행을 하려면 유래일 패스를 사야 하는데 유럽 현지에서 구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서 들어온다. 대신 유럽 내에서는 인터레일 패스를 사야 하는데 가격도 그렇고 유래일 패스만큼 많은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속도보다는 디테일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며칠간 김이라는 친구와 의기투합해서 파리 여행을 하였다.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 그가 누군가와 같이 여행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다. 그것도 파리의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남자 둘이서 말이다.      

김은 며칠 후에는 파리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유래일 패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파리부터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유래일 패스는 처음 시작하는 날로부터 4주짜리였다. 정확하게 28일을 사용할 수 있는 패스였다. 그 패스에는 Kim으로 시작되는 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유래일 패스가 김의 수중에서 그에게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친구의 패스를 훔친 것은 아니다. 그럴 만큼 부도덕하거나 배짱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언제나 운명은 누군가에게는 가혹하게 들이닥친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가혹한 운명이 장난이라도 치듯이 반전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운명의 수혜자가 되는 일 또한 또 다른 운명이 아닐 수 없다.  4일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김은 한국에서 한통의 연락을 받고 당황하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직감은 틀리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의 생각대로 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그것도 갑자기 교통사고로 말이다. 김은 그날 항공권 예약을 하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뭐라고 위로해줄 말이 없었다. 근처의 슈퍼에 가서 맥주 몇 병을 사서 김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를 위로하려 들었다. 그래도 3일간이나 같이 다니며 제법 친해졌다. 김은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다. 군에도 다녀와 나이도 비슷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맥주를 따라주고 마시다 문득 김이 한마디 했다. 자기 유래일 패스를 가져가라는 것이다. 이름 때문에 어차피 거래는 불가능하다. 환불도 쉽지 않다고 하였다. 대신 요령껏 사용하면 걸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약간은 횡설수설하면서도 친절하게 유래일 패스의 특징에 대해 자세하게 개인과외까지 시켜 주었다. 가장 알차게 한 달을 여행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한 김은 유래일 패스 관련된 모든 정보를 넘겨주었다. 대신 부정사용으로 걸리는 순간 모든 것은 끝장나는 일대 모험이기도 하였다. 맥주병이 거의 다 비워지면서 김은 갑자기 오열하였다. 그리고 김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덩치 큰 친구의 슬픔에는 공감하면서도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 오는 순간이었다. 군 복무 시절 PX에서 얻어먹던 닭발이나 만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횡재였다.        


김은 아침이 밝자마자 유래일 패스를 남겨두고 공항으로 떠났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처연하고 아슬아슬한 슬픔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의 불행이 그의 행복이 되는 순간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데, 인생을 조금은 알 거 같았다. 그러한 잡다한 행운들이 자꾸 현실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는 그다음 날부터 유래일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유래일 패스는 개시한 날로부터 28일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중간에 며칠 쉬면 손실이 크다. 매일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그 패스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4주 동안 숙소에서는 딱 4번을 잤다. 나머지 6일은 모두 기차에서 잠을 잤다. 저녁 9시쯤 장거리 행 기차를 타면 아침에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도착하는 방식이었다. 샤워는 기차역에서 코인 샤워 실을 이용하였다. 숙소를 따로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많은 나라의 밤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었다. 물론 그는 서서히 지쳐갔다. 여행이 아니라 군 시절의 전투행군이었다. 물론 그는 그 행군마저도 장갑차를 타고 하였던 사람이다.     


그가 지칠 때마다 자주 가는 곳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였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여행자들의 거리가 있다. 그곳에는 저렴한 도미토리식 게스트 하우스가 몰려있었다. 그는 가장 싼 형태의 숙소에서 머물렀고 오랜만에  맛있는 헝가리 음식도 실컷 먹었다. 동유럽인 헝가리는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비해 물가가 착했다. 그래서 배낭족들의 휴게소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게스트 하우스는 그가 처음 런던에서 묶었던 Earls court의 도미토리보다 불편하였다. 이미 경험한 남녀 혼숙은 그래도 문제가 아니었다. 남녀 혼숙의 이상한 커플들의 장면은 그래도 참을 만했다. 부다페스트의 벼룩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미 악명이 높은 친구들이다. 벼룩들이 뛰기 시작하면 2층 침대까지도 올라왔다. 그는 벼룩을 보면 화가 치밀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빠른 벼룩을 잡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또다시 돈으로부터 시작되는 치사하고 아니꼬운 그 권력이었다. 돈이 있었다면 이 벼룩들과 사투를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화가 치밀었다. 날뛰는 벼룩들을 보면서 그는 밤새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였다. 권력까지는 아니어도 좀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 졌다. 생면부지의 남녀가 좁은 공간에서 혼숙을 한다는 사실 또한 그를 괴롭혔다. 8명만 혼숙이면 그래도 참아줄 만하였다. 그는 성격이 조금 모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제법 너그러운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도 8명의 인간 군상들에 벼룩 때라는 플러스알파에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는 그 벼룩들을 스승으로 모시며 살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그 수업료로 부다페스트의 날뛰는 밤을 고스란히 반납하였다. 잠을 자기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야간열차가 차라리 편하고 좋았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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