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Jan 29. 2020

#49주 차, 타인의 계절

매주 한 권 책 쓴다(2020년 1월 6일)


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부제:  무릎 수술을 위해 난생처음 병원 6인실에 입원하면서 일어나는 낯설지만 정겨운 풍경들

@ 분량: 이북 기준 총 135페이지(폰트 22)

@ 판매: 블로그 서점(https://blog.naver.com/jebyi)


@ 프롤로그


새해 벽두 초부터 혼수를 했다. 여자들이 결혼할 때 준비하는 혼수와는 전혀 다른 혼수다. 이제는 혼수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를 희망한다. 혼수란 병원에 입원하여 혼자 수술을 한다는 의미다. 1인 가구들에게 보호자 둘을 선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직계든 방계든 찾아보면 많이 있겠지만 평소 연락도 자주 하지 않는 친척들을 가족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제라도 보호자란에 가족이 아닌 친구나 지인도 끼워주어야 한다.


인간은 과연 어느 선까지 혼자일 수 있을까! 직장인이라면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향하면 된다. 하지만 버스나 지하철도 혼자만의 공간이 되긴 어렵다. 자기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수많은 타인들과 의식 또는 무의식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스치듯 지나가는 타인들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타인들도 나름대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의미를 상실한 타인들이 지구별에서 모두 사라진다면 나라는 존재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말 것이다. 75억의 인구는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숫자임에 틀림없다.


혼밥과 혼술에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들이 필요했다. 이어 혼수라는 용어를 내가 처음으로 사용하려 한다. 혼수란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는 것을 말한다. 수술 시에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고 가족 중 두 사람을 선정하여 보호자로 등록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호자의 긴급 연락처다. 가족이 없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결국은 혼수에 성공하였다.


세상은 1인 가구화가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다. 타인과의 교류나 소통할 일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이번 혼수를 계기로 처음으로 타인과의 의미 있는 소통을 하게 되었다. 배정된 6인실은 소통의 공간이었다.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그들과의 소통법은 하나였다. 같은 방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것이다. 타인과의 생활은 생각보다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같은 처지의 수술 환자들이어서 서로를 적대시하거나 경계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서로를 챙기고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은 환자가 불편한 환자를 챙긴다. 그러한 모습들은 감동적이다 못해 눈물이 핑 돌 장면들이었다.


5년 이상을 1인 가구로 생활한 나로서는 선뜻 먼저 손을 내밀거나 말을 걸지 못하였다. 오히려 위축되어 커튼으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애쓰려 하였다. 1인 가구화가 되는 추세를 부정하거나 막을 생각도 방법도 없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계기로 1인 가구들도 사회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기를 희망한다.


1인 가구로서의 사생활은 유지하되 가끔은 사회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타인들과 소통의 장이 열린다면 고독과 외로움 관리 차원에서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혼자만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타인과의 공간도 반드시 필요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타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하였다. 패키지여행에 대한 부정의 이미지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이젠 혼자가 아닌 패키지도 자주 다녀볼 생각이다.


끝으로 이 글을 쓸 수 있게 만든 축구공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축구가 없었더라면 나의 왼쪽 무릎은 아직도 이상 없이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축구공이 뭐라고 그 볼 하나를 두고 그렇게 투지를 불태웠는지 모르겠다. 그 결과는 몸의 여기저기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맨 처음 반응한 곳은 허리였다. 그다음이 무릎이었던 것이다. 무릎이 해결되면 허리도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할 것이다. 악마 같은 축구공이다. 그런데도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이유는 그놈의 축구공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어느 정도 재활이 끝나가기 때문이다. 2020년의 봄이 기대되는 이유다.


알 수 없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행복과 불행에 대해 선과 악처럼 일방적으로 비방하거나 찬양했던 철학자들이 때론 작게 보인다. 이들은 하나의 단면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생의 어떠한 파고에도 멀미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알고 보면 축구공 하나에도 철학이 들어있고 우주가 그 공안에 갇혀있다. 타인들과 2주간의 동거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나와 동고동락했던 507호실 환우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아빠의 수술 소식을 듣고 런던에서 잠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타난 아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비록 이젠 남이 되었지만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 목차


프롤로그


1화. 발칙한 송년회!

2화. 노벨문학상

3화. 빼앗긴 횡단보도에도 봄이 올 수 있을까?

4화. 오전엔 법원, 오후엔 입원

5화. 수술! 보호자 없는 슬픔

6화. 코를 골다 쫓겨날 뻔하다!

7화. 수술대 위에서 본 어머니

8화. 병실에서 글쓰기와 피카소의 냅킨들

9화. 팬티는 언제 입어요!


에필로그

                                                                                                                                                                                                                                                                                                                                                                                    


@ 에필로그


한마디로 방심했다. 그놈의 축구가 문제였다. 허리에 온갖 신경이 집중될 무렵 혹사당하는 것은 허리가 아닌 무릎이었다. 지난해 6월부터 이상이 생긴 무릎으로 전국체전에 나가면서 무릎은 최악의 상태로 부어올랐다. 그때라도 손을 썼더라면 수술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간단한 시술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결국은 신년 벽두부터 무릎 수술을 위해 병원 밥을 먹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아무런 의미도 인연도 없던 타인들이었던 사람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6인실의 동거는 며칠 만에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있다. 1인 가구의 상승 비율은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물론 이러한 1인 가구들에게도 직장이나 동호회 같은 창구를 통해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 관계들이 불편해질 뿐이다. 그래서 더욱 혼자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사회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대의 트렌드를 떠나 이를 사회문제로 보는 학자들이 대다수다.


축구와 무릎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개인과 타인의 관계는 촘촘할 수도 있다. 앞으로의 미래 사회는 그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일에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AI와 인간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거나 좁혀올 것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다. 나 홀로 무인도에 산다고 타인들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사라질 수는 없다.


이번 6인실의 병실 체험은 타인의 의미와 관계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체험이 되었다. 개인화 고립화되어가는 인간의 미래를 풀어갈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1주일이었다. 나머지 1주일도 타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을 시도할 예정이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물론 인류가 직면할 문제를 풀어갈 단서들이 6인실 병동에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더 이상 단순한 타인으로 보지 않게 되어 기쁘다. 전혀 의도치 않은 병원생활은 부정적인 측면들이 훨씬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들과의 동거를 피할 수 없는 것이 병원생활이다. 자본에 의한 반강제적인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발적인 선택이고 동거다. 돈이 충분하다면 혼자 사용하는 특실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주일간 동거 동락하고 많은 가르침을 준 507호 병실 환우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2020년 1월 13일

분당의 모 병원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47,48,50주 차, 청개구리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