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일
대화의 방식, 그리고 사람의 깊이 (무농)
사람은 누구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더라도 대화를 풀어 가는 방식에 따라 소통의 깊이와 공감의 정도가 달라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대화를 이끈다. 직접 겪은 일과 삶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말에는 생생함과 진정성이 담긴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에는 사람 냄새가 배어 있어 듣는 이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다만 때로는 자신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해 다른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주장보다 책이나 학자, 혹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용하며 대화를 이어 간다. 이러한 방식은 대화의 논리적 설득력을 높이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생각이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되지 않았다면 대화는 어딘가 차갑고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의 생각을 인용하는 일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자신의 경험과 성찰 속에서 다시 해석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대화가 된다.
한편 어떤 사람은 대화의 출발점을 자신의 인맥이나 지인에게 두기도 한다. 누구를 알고 지내는지, 어떤 사람과 가까운지를 이야기하며 은근히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경우다. 이런 방식은 때로 대화의 흥미를 끌 수 있지만, 지나치면 대화의 본질보다 관계의 과시에 머물기 쉽다. 대화의 중심이 생각과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이름이 되는 순간, 공감의 깊이는 자연스럽게 얕아지게 된다.
이처럼 사람마다 대화를 풀어 가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지식과 인용을 통해 생각을 펼치며, 또 어떤 이는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 간다. 중요한 것은 그 방식 자체라기보다 그것이 얼마나 균형 있게 사용되고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이는 상황과 주제에 따라 이러한 방식들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며 대화를 이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참고하고, 논리와 공감을 함께 고려한다. 이런 대화는 균형이 잡혀 있을 뿐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도 편안한 설득력을 전한다.
반면 어떤 이는 어떤 주제의 대화에서도 오직 자신의 경험과 생각만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이어 가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정작 자신의 생각은 드러내지 않은 채 주변의 ‘잘난 사람들’을 내세우는 데 그치기도 한다. 그럴 때 대화는 점점 생동감을 잃고,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멀어지게 된다.
삶 속에는 다양한 성향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편협하거나 과시적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더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고,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는 순간도 자주 찾아온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어 왔을까. 나 역시 모르는 사이 내 경험만을 앞세우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기대어 말해 온 것은 아닐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대화에 대한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이제는 나에게 어울리는 대화의 방식을 천천히 찾아가야 할 때인 듯하다. 그래야 삶을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은 솔직하게 말하되 타인의 생각에도 귀 기울이고, 경험과 성찰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화 말이다. 어쩌면 좋은 대화란 말을 잘하는 능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진심으로 나누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