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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May 19. 2022

엄마 아빠는 똥개야.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아이가 한 말입니다.

하루 하나 써서 오늘은 그만 써도 된다고 생각한 순간 떠오른 말. 


그 날은 아주 평화로운 날이었다. 나와 남편은 간만에 느긋했고, 아이는 명랑하게 놀았다. 매일 이렇게만 살아도 참 좋겠다고 생각한 찰나, 아이의 입에서 선언과도 같은 말이 떨어졌다.


"엄마 아빠는 똥개야."


우리가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은 전혀 없었고, 아이도 웃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 아이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와야 더 적합했을 것이다.


"엄마 아빠 사랑해. 나는 아주 행복해."


물론 아이는 위와 같은 말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긴 하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라도 그 말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이는 매우 즐거워하면서, 저만 즐거운 말을 내뱉고 말았다. 


며칠 전에 그 비슷한 징후들이 나타나긴 했었다. 누가 누구를 똥개라고 했어, 라는 말을 해서 그랬어? 라고 말하고 넘어갔다. 똥개라는 말을 어린이집에 있는 누군가가 했구나 싶었다. 아이의 부모들은 안다. 아이가 '똥 방구'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그 아이가 진짜 아이인지 알아보려면 딱 한 가지 실험만 하면 된다. 바로 '방구'라고 말하고 아이가 웃나 안 웃나 보는 것이다. 만약에 아이가 회귀자이거나 이상한 약을 먹고 어른에서 아이로 변신한 경우라면 절대 웃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아이라면 백에 아흔아홉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것도 아주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요란한 웃음을.


집에서는 물론 똥이라는 말 자체를 안 하지는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똥개라는 말을 쓴 적은 없다. 그러므로 아이는 백프로 그것을 어디서 들은 것인데, 회귀자도 어른이 변신한 것도 아닌 아이는 그 후로 '똥개'를 어떻게 재미있게 써먹을까를 고심했을 듯하다. 어떻게 해야 똥개로 주변 사람들이 빵 터지게 만들 것인가. 아무도 하지 않는 고민을 홀로 하던 아이는 결국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가장 행복하고 따스했던 어느 순간, 그것을 말로 터뜨려 버린다.


"엄마 아빠는 똥개야!"


아이에게는 참으로 회심의 일격같은 한 방이었을 것이다. 분명 엄마와 아빠는 배꼽을 잡을 것이고, 자신을 안아줄 것이고, 그날 저녁에는 좋아하는 메추리알 반찬을 다섯 개나 먹을 수 있겠지. 브로콜리를 남긴다고 해서 잔소리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계획은 여지없이 실패했다. 아빠는 웃었지만, 엄마의 얼굴은 일그러졌기 때문이었다.


"그 말 어디서 배웠어? 똥개라는 말은 좋지 않은 말이야."


나는 눈치 없이 웃는 남편을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이는 당황스러운 듯했다. 제딴에는 꽤나 머리를 굴려서 한 재밌는 말이었는데. 아빠는 좀 통하는 것 같은데 엄마는 씨알도 먹히지 않으니. 이러다가는 브로콜리는 두 배로 먹고 메추리알은 다섯 개는 커녕 두 개도 먹기 어렵겠다. 게다가 평소보다 목욕도 더 빡쎄게 할 것 같고 이도 두 배로 더 꼼꼼히 닦게 되리라.


아이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듯, 그 말을 계속해서 했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웃어주지 않을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지는 못하니 한 번 하나 두 번 하나 똑같잖아. 나는 이 말이 너무 재밌는데, 데굴데굴 구르다가 배가 찢어질 것처럼 우스운데 왜 반응을 안 하냐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허용했다가 누구에게나 함부로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끝끝내 잔소리를 해야 했다.


아이는 다행히 그 말을 몇 번 더 하다가 요즘은 하지 않는다. 본인도 이게 아닌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아주 눈부신 날에, 아이가 아주 근엄한 표정으로 선언하듯이 했던 그 말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아주 크고 나서 추억처럼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지. 커버린 아이는 자신이 그랬다는 것을 기억도 못 하고 부인하겠지만. 


그리고 솔직히 나도, 아이 앞에서는 참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너무 웃겨서 눈알이 뽑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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