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살았는데 아직도 하찮은 인생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매우 지쳐 있었다. 끊임없이 성적으로 평가받으며 끝도 알 수 없는 길을 달려야 하는 것이.
이제 대학도 들어왔으니, 더는 그런 생활은 사절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정한 목표는 '중간만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도 너무 뒤로 가면 욕을 먹으니까, 딱 욕 먹지 않을 정도만. 너무 앞에 가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적당히만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후가 된 지금까지, 나는 꽤 마음먹은 대로 잘 해내고 있다. 문제는 너무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만 좀 앞서나가도 될 텐데, 도무지 그게 잘 되지를 않는다. 오래달리기를 할 때 아무리 다리에 힘을 줘도 앞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처럼.
드라마, 영화, 소설, 모든 곳에서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앞서가는 사람과 뒤에 있는 사람. 앞에 있는 사람은 아마 주인공일 테고, 뒤에 있는 사람은 그런 주인공을 방해하는 인물일 테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드러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존재감이 없다. 배역은 있으니 나오기는 하는데,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매니아라도 말이다.
나 역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즐겨 썼다. 아주 잘 하는 사람과, 못하지만 질투심만 많은 사람. 대개 주인공들은 뭘 하든 성공한다. 학창시절에 가장 좋은 대학 수석 입학은 놀랍지도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한다. 그렇게 써야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적어도 내가 쓰는 장르문학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창조자인 나는, 그들에 대해 쓸 때마다 늘 쭈굴쭈굴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목표가 '중간만 가자'는 사람이었던 나는, 직장다니던 때에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결국 실력 부족으로 일을 망쳤던 나는, 지금도 웹소설 작가라고 부지런히 글을 쓰지만 딱히 눈에 띌 만한 성과가 없는 나는. 아마도 내가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간다면 열혈 독자들도 나를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 곳에 이름도 없이 묻혀있을 테니까.
나도 내 인생이 이렇게 하찮아질 줄은 몰랐다. '네가 웹소설을 쓴다고? 어디?'라고 물어서 알려줬더니 아무도 그 글을 안 보게 될 줄은 몰랐다.(극소수를 제외하고.) 글이 론칭될 때마다 늘 일말의 기대를 품지만 여지없이 무너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보통 주인공들은 시련을 겪더라도 초반에 끝난다. 난 인생 초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렸다. 이미 주인공 실격이다. 아직까지 '성공'을 하지 못하다니. 그렇다고 악독한 것도 아니니 악역으로 성공하기도 글렀다. 이미 그렇게 된 것이다, 내 인생이라는 것은.
그래서 나는 그냥 내 하찮음을 찬양하기로 했다. 인생 좀 하찮게 살면 어떤가. 모두가 주인공일 수는 없지 않은가.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잘못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실수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하는 것마다 잘 되는 사람이 있으면 하는 것마다 그저 지지부진한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래도 뭐 어떻게 먹고는 살고 있다. 엊그제는 아기에게 장난감도 사 주었다. 아기는 그 장난감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면 된 거다. 장난감 사줄 돈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해줄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하찮아도 꽤 괜찮은 인생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