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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Dec 24. 2020

인정을 받는다는 것

웹소설 작가로 살다 보면, 투고하고 까이는 것이 일상이 된다.

물론 무료 연재 플랫폼에 연재를 해서 컨텍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출판사에서 컨텍한 글을 가지고 또 플랫폼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내가 쓰는 장르는 주로 네이버나 카카오페이지에 유료 연재 심사를 한다. 심사를 할 때는 어떤 프로모션을 받을 것인지를 심사하는데, 주로 가장 좋은 프로모션으로 심사에 들어가고 떨어지면 그 다음 프로모션 역제안을 받기도 한다.


솔직히 내 글이 떨어지면 떨어진 것이 과연 글인가 아니면 나인가 아니면 나의 영혼인가를 생각하면서 매우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내가 쓴 글이 나하고 분리가 잘 안 되는 까닭으로 꼭 내가 거절된 느낌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많이 해봐서 거절감에 대한 내성이라도 좀 키워볼 걸 뒤늦게 후회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웹소설 작가로 사는 햇수가 늘어가다 보니 참 무수한 프로모션이나 출판사 투고에서 떨어졌다. 이제는 떨어지는 것보다, 떨어뜨리고 나서 과연 어떤 말을 하는지가 더 관심이 가게 되었다.


주로 탈락 메일은 다음의 경우 중 하나이다.


1. 출판사마다 '떨어뜨리는 문구'를 정해놓은 듯이 떨어지면 따로 리뷰 없이 그 문구를 삽입해서 보내는 경우.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출판사에서 꼭 리뷰를 해주어야 하는 의무는 없으니 잘못된 것은 아니다.


2. 리뷰를 보내긴 보내는데 악평만 보내는 경우. 이 경우 역시 매우 기분이 안 좋은 케이스다. 다행히 나는 받아본 적이 없다.


3. 리뷰를 보내는데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섞어 보내는 경우. 이런 경우는 매우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또 도움이 안 되기도 한다. 도움이 되는 경우는 정말 글을 세세하게 읽고 진심으로 답을 하는 경우다. 도움이 별로 안 되는 경우는 약간 의무감처럼 리뷰를 하는 경우이다. 이게 구분이 안 될 수도 있고 매우 주관적인 구분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받아보면 느낌이 온다. '어 이런 내용이 왜 떨어진 이유가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 이것은 후자인 경우가 많다.


내가 오늘 이 글을 갑자기 쓰는 것은, 바로 3번의 리뷰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실은 보낸지 너무 오래되어서 내가 투고를 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글이었다. 메일 확인하다가 발견해서 읽어보니 3번이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내가 받아본 거절 메일 중에서 가장 독특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에 글까지 쓰게 되었다.


솔직히 거절 메일은 1,2,3 모두 기분이 나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거절이므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받은 그 메일은 읽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분명한 거절인데, 읽고 나니 없던 힘까지 생겼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 메일은 일단 매우 정중한 인사로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내 소설에서 좋았던 점을 이야기했다. 이런 부분에서 매우 흥미롭고 좋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아쉬운 점을 짚었다. 메일은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짧은 메일이었으나, 나는 이 분이 얼마나 내 글을 열심히 또 깊이 읽었는가를 알았다. 3번인데 후자인 경우, 의무감처럼 리뷰를 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분명 내 글에서 표현을 한 것인데 의문을 가지기 때문이다. 메일 내용 때문이 아니라 깊이 읽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기분이 별로인 것이다. 그래서 반대의 경우가 나는 감동적이었다. 내 글을 읽었구나, 그것도 아주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구나. 그것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이해를 받는 것, 인정을 받는 것,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생각을 정확히 읽어내려고 상대가 노력하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 비록 거절을 받았더라도 메일에서 그것을 느꼈기에 나는 기뻤다. 그리고 비록 거절을 당했으나 이곳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매우 기쁘게 받았고,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 나 또한 부족하다고 느껴서 수정 중이니, 혹시 수정 중에 재투고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곳에서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곧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아마도 다음주 초면 재투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에서의 진심 어린 응대, '그래야 해서'가 아니라 '그러고 싶어'서 말하는 것, 그런 것들이 늘어간다면 세상은 좀 더 따뜻하고 밝은 곳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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