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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07. 2023

보드게임 피서

어제 물놀이도 했겠다. 학교 방학에다 학원 방학까지 하니 어디 갈 데도 없이 늘어진 우리 아이들은 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보드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아빠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빠와 하는 전용게임을 쓱 꺼내 든다. 남편은 애써 외면했지만 오랜만에 기분 좋게 고! 를 외치고 아이들과 하러 갔다. 그 사이 나는 몇 시간이 확보된 자유시간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게임은 바로 부루마블! 공부하지 않아도 여러 나라의 수도와 주요 도시들을 다 외울 수 있다는 장점과 돈계산이 빨라진다는 것, 방구석 세계일주가 가능하다는 여러 장점 외에 게임을 진행하는 러닝타임이 여타의 보드게임보다 길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방바닥에서 펼쳐 놓고 하면 허리가 구부러져 장시간 게임이 끝나고 허리를 펼 때는 아고고 하는 곡소리를 내야 하기도 하고, 민감한 돈계산에 다툼과 삐침이 발생하기도 하는 조금은 피곤한 게임이다. 남편은 어릴 때 부루마블 게임이 당장에 없으면 그림을 그리고 도시카드를 직접 만들어서 했다고 하는 무용담을 펼치니 부루마블을 상당히 사랑했던 시절을 보냈던 것이 틀림없다.  부루마블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과 남편이 함께 하는 게임으로는 제격이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남편에게 양보한 나는 더없이 행복할 따름이다.


남편 사무실로 몰려간 아이들은 널찍한 테이블에 부루마블을 펼쳐서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제공되는 간식도 먹으며 즐겁게 하고 있다고 남편이 사진을 보내왔다. 천국이 따로 없을 시간에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이 예쁘고 저 공간에 내가 없다는 사실에 내면의 기쁨을 표하며 남편에게도 수고하고 애쓴다며 격려를 전한다.

역시나 남편이 제일 잘 하고 있다

사실 내가 보드게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몇몇 보드게임은 좀 힘들긴 하다. 그래서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기대에 많이 부응하지 못해 주어 미안하게 생각은 했다. 그래도 틈이 날 때면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러닝타임도 짧은 달무티를 종종 해왔고, 여행을 갈 때면 보드게임을 항상 챙겨가서 저녁 시간 숙소에서 항상 보드게임 타임을 갖기도 했다.

숙소에서 가지는 보드게임 시간

시간이 없고, 놀아주기 힘들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회피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닌지 잠시 반성의 시간도 가져보지만 그럼에도 혼자 타닥타닥 글 쓰는 시간이 즐거운 것은 또한 사실이다.


아이들도 시원하게 보드게임 피서를 즐기고 있고 나도 이 시간을 즐기고 있으니 모두가 즐거운 보드게임 피서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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