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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Nov 07. 2023

파친놈의 파김치 일기

줄줄줄. 흐른다. 침이 가득 고여 한 줄기 쏙 빼먹고 싶은 비주얼. 아삭아삭한 하얀 머리와 길쭉한 푸른 몸을 지닌 너의 정체는. 파김치!

파김치 러버다. 파김치를 좋아하는 일명 파친놈이다. 익은 파김치보다 안 익은 채로 그 자리에서 갓 한 알싸하고 매운맛의 파김치를 선호한다. 다시 흐른다. 줄줄줄.


자칭 파친놈이라고 해도 먹을 줄만 알았지 담글 줄은 몰랐다. 아니다. 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맛에 맞게 담가주시는 친정엄마표 파김치가 있으니. 마트에서 파김치를 봤다. 지나쳤다. 다시 돌아왔다. 살까. 말까. 입에 침이 한가득 고여 침을 삼켰다. 카트를 밀며 애써 지나치며 오늘 엄마에게 전화해서 파김치를 먹고 싶다 말해야겠다고 돌아섰다.

9월부터 12월까지가 제철이라는 쪽파. 그렇다면 파김치의 계절도 찾아왔다. 라면에도 척. 고슬고슬 흰쌀밥에도 척. 긴 파를 휘감아 척척 올려먹으면 알싸한 파향과 뜨거운 음식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먹고 나서 양치를 잘해 줘야 한다는 정도. 오늘만 참자. 친정엄마의 파김치를 기다려 본다.

야생의 파

두둥! 이게 뭐지? 장을 보고 집에 왔다. 주방 한편에 놓인 야생파의 무리들. 아차차. 남편에게 텃밭의 쪽파가 많이 자란 것 같으니 파를 뽑아야겠다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도대체 왜, 무슨 생각으로 파를 뽑으라고 한 건지 그때의 나에게 묻고 싶다. 텃밭 귀퉁이에 오밀조밀 파가 있어서 양이 별로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뽑아보니 그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어떡하나. 어떡하긴. 긴 말 말고 일단 다듬어 보자. 얼결에 다듬기 시작했는데 어라? 맨손이다. 파의 알싸한 향이 코로, 손으로 전해져서 점점 맵다. 손은 이제 맵다 못해 약간 아리고 따가워지지만 멈출 수 없다.

환골탈태한 파

뿌리 댕강. 겉껍질 휘리릭. 노랗게 된 부분도 댕강. 텃밭에서 갓 수확한 거라 싱싱은 했지만 야생의 파였다. 다듬고 매만지니 멀끔해졌다. 자, 그렇담. 이제 뭐다? 유튜브를 켠다. 엄마 찬스를 쓸까 잠시 고민을 했다가 바로 접었다. 엄마의 레시피는 믿을만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이게 뭔 소리람? 엄마는 적당히, 대애충을 외치며 쪼르르, 줄줄줄을 말한다. 도대체 적당히와 대충의 정도를 알 수가 없다. 엄마 찬스는 과감히 패스.


파김치를 한 번도 안 담가 본 나 같은 중생들을 위해서 준비된 유튜브의 많은 선생님들이 계신다. 즐겨 보고 믿고 보는 마카롱 여사님의 파김치를 클릭. 3분 정도의 영상이 휘몰아친다. 정신없이 지나가서 다시 재생. 또 재생. 일단 멈추고 레시피를 읽어 본다. 들어갈 재료를 준비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파김치를 쳐다본다. 시작이다. 우선 파의 흰 부분에 액젓을 고루 뿌려가며 30분 재워 둔다. 재우는 시간 동안에는 파김치 양념을 만든다. 어라? 생강은 없는데? 없는 재료 빼고 있는 재료만 헤쳐 모아 만든다.


양념에는 양파 반 개, 배 반 개, 새우젓 2큰술, 매실진액 5큰술이란다. 있는 재료 때려 넣고 휘 갈아 고춧가루를 섞으니 제법 그럴싸한 비주얼로 탄생했다. 그러는 사이 30분의 시간이 지났다. 양념을 확 쏟아부으려다 이상한 감이 있어 마카롱 선생님을 다시 소환한다. 그렇지! 고춧가루로 먼저 색을 입히라잖아! 그전에 절이고 남은 액젓을 양념에 쪼르륵 부으라잖아! 큰일 날 뻔했다.

고춧가루로 옷 입는 파

 쭈르륵. 액젓을 양념에 투하. 고춧가루로 매만지기. 이제 남은 것은 뭐다? 대망의 치대기다. 김장철이면 아무것도 못하는 나에게 엄마가 그나마 맡긴 것은 배추에 양념을 묻히는 치대기였다. 그것도 요령과 기술이 필요해 힘껏 치대도 엄마는 내가 한 배추를 보면서 허여 멀건하니 양념이 제대로 안 묻었다, 속을 제대로 안 넣었다며 타박을 주곤 했다. 그에 비하면 파김치에 양념 치대기는 일도 아니었다.

양념에 치댄 파김치

팍팍팍. 튀었다. 사방으로 양념이 날아간다. 아무렴 어떻나. 빨갛게 제법 모습을 갖춰가는 파김치에 다시 침이 흐른다. 완성된 파김치를 김치통에 담았다.

에게게. 김치통의 3분의 1도 안 되는 양을 이렇게 씨름하며 담갔다니 스스로 민망하기도 하다. 그래도 난생처음 파김치를 담갔다는 셀프칭찬과 파김치를 먹을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파친놈이 돌아왔다. 더욱 강력해져서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파친놈이 되었다.


"엄마, 이제 내가 파김치 담가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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