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조금씩 불편해져야 할 각오를 해야 할 때이다. 최근 몇 해 간 기후변화의 기조가 유난히 체감되고 있다. 매년 경신되는 여름철 최고 기온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올해가 앞으로 경험할 여름 중 가장 시원할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여러 지역이 건조해지며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에 또 어떤 지역은 관측이래 최대 규모의 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물폭탄을 맞고 있다. 우리의 예측 범위를 월등히 벗어난 기상 현상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이전까지야 여러 기후위기론들을 익히 들었지만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거니와, 상황 발행 후 조치보다 발생 전 예방이 월등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것을 알기에 기후위기론에 대한 경각심은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늘 그랬듯 답을 찾을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이다. 이 대사처럼, 그리고 영화처럼 나는 기후위기론에 있어 우리 인간은 어떻게든 답을 찾을 것이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스텔라 영화 속 그들이 찾은 답은 결국 지구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즉 그들의 목적은 지구 보호가 아닌 인류의 존속뿐이었던 것이다.
윌리엄 앤더스가 찍은 ‘지구돋이’를 보라.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우주 속 푸르른 작은 별 지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왜 이 아름다운 별을 포기해야 하는가? 화성으로 이주해 가겠다는 억만장자들의 공언을 보며 저들은 왜 지구를 지키는 것보다 버리는데 그 많은 돈을 쏟아붓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의 제1의 목표는 성장이다. 경제성장, 주가, GDP, 환율 등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런 단어를 하루에 수차례는 접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기온, 기후위기 등의 단어를 접하는 빈도는 전자에 훨씬 못 미친다. 이처럼 성장 일변도의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는 필수불가결한 사이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비에 지불하는 가격이 정말 합당한 가격일까? 원자재와 인건비, 수송비, 기업이윤 등을 생각하면 얼추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위의 고려사항에 생산과정에서의 탄소 배출과 소비재의 폐기 후 처리 비용은 고려되지 않았다. 소비의 전후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 처리는 온전히 지구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그 결과 지구의 처리능력 이상의 폐기물이 쏟아지고 이는 기후 위기에 크게 일조한다. 지금이라도 비용을 현실화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케인즈vs프리드먼으로 이분화되는 경제 분야의 큰 정부, 작은 정부 이론은 차치하고, 기후환경적 병폐를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필요하다. 그래도 기후위기론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 덕분에 친환경 기술과 제품들이 개발, 출시되고 있다. 수소차, 전기차를 개발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며, 원자력과 화력발전 비율은 줄어들고 곳곳에 보이는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기들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져가고 있다.
하지만 ‘리바운드 효과’로 그러한 노력들은 오히려 기후 변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백열전등에서 형광등의 발명이 전력 소비를 감축시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밝은 밤을 초래하며 전력사용을 급등시켰고, 에너지 효율등급 제도의 시행으로 효율성이 올라간 에어컨으로 인해 선풍기로 버티던 무더운 여름은 에어컨 냉기의 계절로 기억되고 있다.
하물며 전기차는 어떠한가? 전기차가 내연기관보다 매연가스 배출은 줄였겠지만,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과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광물 채굴, 제련과 폐배터리 처리 과정이 발생시키는 각종 오염 물질들이 오히려 지구를 더 병들게 할 수 있다. 태양광 에너지도 마찬가지로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깎여나가는 나무들, 그리고 나중에 수명이 다한 태양광 패널들의 처리 등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과연 더 친환경적인 에너지 인지 의심이 들게 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제 우리 모두 불편을 조금씩 감내해야 할 때가 왔다. 쓰기 편해서, 단순 소유욕 때문에 무분별하게 자행했던 소비들로 지구는 병들고 있다. 친환경 제품을 아무리 만들어 낸다 한들, 친환경 기술을 아무리 개발한다 한들 그러한 생산과 소비가 또 다른 오염과 병폐를 만들고 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우리 모두 덜 쓰고 덜 버리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해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인류의 기술을 맹신했던 것 같다. 각종 친환경 기술들이 나의 편의는 유지한 채 지구를 정화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책은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일깨워 주었다. 나름 일회용품을 덜 쓰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많이 부족하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냉난방도 줄이는 등 에너지 사용도 줄이려고 노력하며 나부터 조금씩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를 있게 한 조상들이 살아온 소중한 터전 지구를 후손들에게 온전한 상태로 넘겨주는 것은,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선심이 아닌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