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를 좋아한다. 나는 하루에 한 번 꼴로 주말에 비가 오길 간절히 바라며 일기예보 어플을 들여다보곤 한다. 심지어 날이 흐리기만 해도 비가 오지 않을까 기대에 부풀곤 한다. 아직 주변에 나만큼 비를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왜 이렇게 비 오는 날을 좋아할까?
어릴 적 비 오는 날이면 엄마가 우산을 챙겨주셨지만 나는 잘 쓰지 않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걷는 게 너무 좋았다. 물론 그렇게 젖은 머리와 옷차림으로 집에 들어가면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지만.
단순히 엄마 말을 듣기 싫은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아이는 아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아스팔트 위의 흙을 씻겨주듯 떨어지는 빗방울의 청량함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미약하지만 일탈이 주는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마치 학창 시절에 야간 자율학습을 빠지고 몰래 먹는 분식이 더 꿀맛이듯, 피하고 막아야 하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왠지 모르게 감정이 고양되었던 것 같다.
이런 감정이 고취되는 경험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다. 나는 광화문 근처에서 근무한다. 덕분에 평일 사무실에서도 시위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무더위에 지친 시위대의 투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자 그들의 외침이 점차 격양되는 게 느껴졌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들은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상을 향한 투쟁 의지가 한 껏 고무된 것 같았다.
비는 사회적인 체면을 일소하기도 한다.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노트북의 한 장면을 잠시 보자. 이 영화에서 비의 역할은 특별하다. 서로를 너무 사랑했지만 집안의 차이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노아(라이언 고슬링)와 앨리(레이첼 맥아담스)의 오작교이기 때문이다.
한 여름밤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한 노아와 앨리는 원치 않는 이별을 맞이한다.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둘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앨리는 이미 다른 약혼자가 있었기에, 그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은 모두 정리한 듯 가벼운 안부만 주고받았다. 하지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그들은 사회적 관계 때문에 꽁꽁 감춰 두었던 서로를 향한 진심을 외친다.
[앨리] “너를 7년이나 기다렸는데 왜 나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 나에겐 끝이 아니었어. 하지만 이제 늦었어.”
[노아] “365통이나 보냈어. 1년 동안 매일매일. 나에게도 그건 끝이 아니었어.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야.”
그렇게 그들은 오해를 풀고 뜨거운 키스로 사랑을 확인한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사회적 페르소나를 벗겨주며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게 도와주었다.
이렇게 비를 맞으면 감정이 고양되지만, 이와는 반대로 보고 듣는 비는 마음에 안정을 선사한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언젠가 여행 중에 창 밖을 통해 비가 쏟아지는 바닷가를 넋 놓고 바라본 적이 있다. 드넓은 바다에 투툭투툭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았다. 따뜻한 숙소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다와 대비되어 한껏 평온함을 느꼈다.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잠깐의 행려자에게 그날의 빗소리는 무심한 안정감을 선사하는 백색소음이었다.
이렇게 맞는 비와 보는 비가 주는 모순적 감정의 경험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슷한 소회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나는 태풍이 오는 여름의 끝자락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끔 술 한잔 기울이시며 내가 태어나던 날을 추억하신다. 그날은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날이었단다. 그런데 밤이 되고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더니 자정을 지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즈음 내가 태어났다고 하셨다. 마침 나는 용띠였고 아버지는 용의 승천과 연관하며 아들의 탄생에 특별함을 부여해 주셨다.
사실 당시 한 해에 수 십만 명이 태어났고, 내가 태어나는 여름에도 수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기에 비 오는 날 태어난 용띠 아기라는 이유로 특별함을 부여할 순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말씀은 키 작고 내성적이었던 유년기의 나에게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그런 기억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온 것이 오늘의 나이기에, 나에게 비는 더욱 특별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창밖에 늦겨울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그다지 큰 걱정거리 없이 빗줄기가 기분 좋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향긋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지금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일상의 평안과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더 바랄 것 없을 순간에도 더 바라는 것이 인간이다. 단 하나의 아쉬움이라면 내일의 출근 때문에 비 내리는 풍경을 벗 삼아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잔의 술이 가능하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