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유쾌하고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어제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들이 시골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했다더라'는 소식을 남편이 전했다.
아들은 상당히 바쁜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간혹 할머니들께 안부 전화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도 잘 안 하는 안부 전화를 할머니들께는 한다는 것에 때때로 의아해하기도 한다. 하긴 식구들의 가족 단톡방에서 일상을 곧잘 나누고, h군과 꽁이(고양이)의 사진을 자주 올리는 편이라 엄마 아빠에게 따로 안부 전화를 하는 것도 좀 그렇기는 하다. 어쨌거나 두 분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면 'oo 이가 전화를 했더라'라고 잊지 않고 전해 주시는 것을 보면, 손자 놈이 가끔씩 드리는 전화가 아주 기특하신가 보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들이 친할머니께만 안부 전화를 드리는 눈치이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이들 어렸을 때, 내가 해외 출장이나 교육으로 며칠씩 집을 비우게 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나의 빈자리를 채워주신 분은 대구 사는 친정엄마였다. 먼길 달려오셔서, 아이들 챙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폭탄 맞은 듯 어수선한 집 꼴을 단정히 다듬고 매만져주셨다. 김장철마다 먹거리를 대 주시던 분도 친정엄마 아니던가! 그런데, 친정엄마가 oo 이는 잘 지내냐고 한 번씩 물어보시는 걸로 봐서, 언제부터인가 외할머니한테는 전화를 좀 체 안 하는 것 같다.
남편이 전하는 안부전화 이야기를 전해 듣다가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어 혼잣말로 구시렁대었다.
"아니... oo 이는 요새는 왜 외할머니한테는 전화를 안 한대니?
저 어렸을 때 기저귀 갈아주고 업어 주고 한 외할머니한테...."
옆에서 딴 짓을 하고 있던 딸아이가 내 혼잣말에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외할머니는 전화가 길어~
어떻게 끊어야 될지를 모르겠어.
친할머니는 전화 짧잖아!"
딸아이 그 한마디에 나는 모든 상황이 깨끗하게 이해되었다.
시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리면, 대체로 기운찬 목소리로 짧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별일 없다. 잘 지낸다.
너거도 별일 없지?
코로나 조심해라~
바쁜데 끊자!"
어떤 때는 미처 할 말도 다 못 마쳤는데, 얼릉 전화를 끊자고 하신다. 시외전화 요금이 비쌌던 옛 시절의 습관이 몸에 배이신 걸까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아무튼 짤막한 안부만 씩씩하게 전하고 전화를 끊으시면, 나는 그만 허허 웃고 만다.
친정엄마와의 통화는 대체로 길다. 밥은 먹었냐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안부도 챙기고... 중간중간에 잘 지내야 한다는 당부도 섞고, 당신 불편하시다는 하소연도 조금 섞고....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고 건강이 좋지 않으니, 가끔씩은 서로의 대화가 길을 잃고, 목소리를 높여야 될 때도 있다. 무언가 하실 이야기가 있으신 것도 같은데, 딱히 이야기를 하시지는 않으면서 이 걱정 저 걱정이 이어지다 보니, 전화를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은근 신경이 쓰인다. 막상 전화를 끊고 나면, 뭔가 마음이 불편해진다. 왜 그럴까? 동생이나 언니에게 지나는 말로 슬쩍 물어봤더니, 그들도 친정엄마와의 전화가 어쩐지 힘이 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관계가 관계인지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통화는 대체로 속에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서로 꼭 필요한 안부만 전하면서 건조하게 짤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친정엄마와 딸의 대화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두 분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와 습관에는 그분들 삶의 어제와 오늘이 녹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닿게 된다.
시어머니는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뜻하신 것은 웬만하면 후다닥 실행하시며 살아오셨다. 마음에 안 차는 세상사에는 욕도 한 마디씩 하시면서 솔직 담백하게 살아오신 것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고, 자식을 앞세워 보내는 어려움도 겪으셨지만,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성격대로 살아가시는 것 같다.
친정엄마도 평생을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사셨다. 그 시절의 여느 집처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는 데다가 깐깐한 아버지와 다섯 남매를 낳아 키우며 많은 고초를 강인하게 겪어 내셨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 사모님으로서 체면을 중시하셔서, 큰소리 한번 못 내고 그저 참으며 살아오셨다. 음식 솜씨도 뛰어나고 여러 가지 재주가 많았던 엄마는 나이 70이 넘어서도 불경 공부, 마음공부 참 열심히 하시며 사셨다. 그러나 오랜 병고 앞에 시들고, 아들 며느리와의 내면의 불화로 긴 세월을 힘들어하셨다. 그래서일까? 세상사 모든 것이 걱정이고, 스스로의 연민으로 가슴에 한이 많으시다. 그래서일 것이다. 안부 전화 목소리에 그 시름이 담겨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하시든 그 목소리만으로 외롭고 힘들다고 전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들리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면, 어쩐지 죄책감이 들고, 그럼에도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안부 전화를 통해 들려주는 이 걱정 저 걱정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지 어떨 때는 그만 짜증이 불쑥 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친정엄마에게 하는 안부 전화를, 오늘 해야지 하다가 내일로 미루고, 낮에 해야지 하다가 저녁으로 미루고는 한다. 마치 숙제하는 것처럼 느낀다고나 할까? 딸인 내가 그렇게 느끼는데, 손자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게다. 나는 아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어쩐지 쓸쓸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저녁 설거지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어 자손의 안부 전화를 받으면, 목소리를 씩씩하게 해서, 가능하게 짤막하게 하는 것이 좋다. 목소리 기색만으로 안부는 다 전달이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면, 또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오랫동안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살아왔다면, 목소리 씩씩하고 담백하기가 어찌 쉬울 것인가!
그래서 나는 그냥 유쾌하고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세상은 내가 걱정하거나 말거나 어떡하든 돌아갈 것이고, 아이들은 제 뜻한 바 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세상 걱정일랑 접어두고, 나하고 싶은 것 열심히 하며 가볍게 살아야겠다. 재미진 일로 바빠 전화받을 틈도 잘 안 나는, 전화가 오면 후딱 끊어야 하는 그런, 내 삶으로 바쁜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괜찮은 사람이 되겠다고 지나치게 애쓸 필요 없다. 그저 유쾌하고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모두를 위해 가장 좋은 삶인듯하다. 그것이 나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