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경관의 추억
70년대 중반 무렵, 아마도 중학교 2학년 때 였을 것이다. 친한 친구 K와 대구 종로 만경관에서 닥터 지바고를 함께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밖에 나오니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는데, 나는 도무지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영화에 얼마나 몰입을 했던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은 내가 속한 현실 세상, 내가 실재하는 공간 속으로 되돌아올 수가 없었던 게다.
만경관 극장 앞이 마치 생전 처음 와 본 곳 처럼 낯설고 생경했던 시간은, 길지는 않았지만 강렬했다. 그래서 내 어린 날의 인생 영화 닥터 지바고는, 공포감과 함께 추억된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우리는 그 영화 속에서 어떤 삶의 서사를 건져 올렸던 것일까? 엇갈린 사랑? 불륜의 사랑? 혼란스러운 시대를 건너는 개인의 운명? 사실은 뭐가 뭔지도 잘 몰랐을 것이다.
어릴 적 인생 영화는 이제 스토리는 흐릿해지고, 몇몇 장면들이 사진 처럼 머리에 박혀 있다. 강렬한 눈매의 오마 샤리프, 끝없이 이어진 설경 속을 달리던 기차, 노란 수선화가 화면 가득 피어있던 모습....
몇 해 전이었을 게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만경관이 마침내 문을 닫는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그 기사를 접했을 때는 이미 세월은 흘러, 문을 닫는다는 기사마저 옛날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오래 전 만경관이 서 있던 그 거리를 생각하노라니, 문득 눈 앞에 설원이 가득 펼쳐지고, 저 멀리 연기를 뿜으며 외로이 멀어지는 기차가 떠올랐다. 아득하지만, 마치 내가 그 설원을 헤매고 다닌 것도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 시절, 닥터 지바고는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아니었을까? 함께 영화를 보았던 K는 오래 전에 연락이 끊어져, 이제 물어볼 친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