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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Y Sep 09. 2022

(인생영화 #3) Another Year

- 릴케의 가을날이 떠오르는 인생의 계절 이야기

    몇해전 우연히 만난 영화 'Another Year'는 2010년에 개봉된 영국 영화로서, 60대의 부부와 그 주변 인물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톰(짐 브로드벤트)과 제리(러스 쉰) 는 런던에 살면서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부부는 텃밭을 가꾸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텃밭의 사계에 따라  소소한 삶의 순간을 즐긴다.

 

        부부 주변에는 이러 저러한 연유로 불만에 차 있거나, 세상과 불화하며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특히 제리의 직장 동료인 메리(레슬리 맨빌)는, 이미 60대(50대?)가 되었지만, 스스로를 젊은이 처럼 착각하며, 세상과 세상의 계절에 조화를 못 이루며 살아간다. 그녀는 깊이가 없고, 부평초 처럼 주위 사람들과 제리네 집을 떠돌아, 말하자면 마음의 집이 없는 사람같다. 톰과 제리 부부는 이런 주위 사람들을 품고 챙긴다.

         영화적으로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이 영화에 나는 왜 끌렸던 것일까?  세상에 이러 저러한 사람들이 있고, 텃밭의 사계가 천천히 지나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고, 봄이 오면 다시 텃밭 농사가 시작되며 돌고 도는.


       노년에 이르러 왜 어떤 이는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기쁘게 살아가고,  어떤 이는 불만에 가득차 불안한 삶을 떠도는 것일까?  사계의 시간 속에 어떤 사람은 세상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그들의 집을 짓고 삶의 계절에 따라 잘 익어가고, 또 어떤 이들은 뿌리를 못 내리고, 삶의 계절을 놓치고... 놓친 계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기에, 가을이 다가와도 잘 익어갈 수도 없고....


       요는, 인생이 텃밭 농사 같다는 것일까?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철 따라 씨를 뿌리고, 햇빛을 견디는 날들을 묵묵히 거쳐 담담히 노년의 삶으로 나아가는 게 삶이라는. (굳이 해석을 하다 보니 너무나 상투적인  멘트로 흘러가는 이 뻔-함이라니… 어쩔!)


        아무튼 영화는 영국판 인간극장 같기도 하여, 지금도 런던 어딘가에 톰과 제리, 그리고 메리가 실재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인생 영화를 이야기하면, 나는 왠일인지 런던의 그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Another Year’를 인생 영화라고 하기에는 막상 할 말이 많지 않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나에게는 릴케의 시, ‘가을날’을 떠올리게 한다. 어렸을 때 이 시를 읽으면, 나는 두번째 구절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그렇게 남아,...... 나뭇잎들이 뒹굴 때면 가로수 길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거닐 것입니다."


     가을날을 맞아, 집이 없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으며, 오래도록 혼자로 남는다는 것일까?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놓아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완전히 영글도록 명해 주소서;

     그들에게  남쪽의 낮을 이틀  베푸시어,

     그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묵직한 포도송이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그렇게 남아,

      깨어나고, 책을 읽고,  편지를  것이며

      나뭇잎들이 뒹굴 때면 가로수 길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거닐 것입니다.




         릴케의 시처럼, ‘Another Year’ 도 무언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데, 나는 아직 제대로 못 알아듣고 있다. 봄과 여름의 계절을 잘 살아내야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고 묵직한 포도송이에 단맛이 스미고... 그렇게 계절이 계절을 불러 들여 인생은 완성되고 익어간다는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어쩌면 인생의  계절을 놓친 메리의 이야기를   인내심을 갖고 들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릴케가 노래한 집이 없는 사람들이 어렸던 나에게 던져  화두는 영화 ‘Another Year’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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