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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Feb 02. 2022

엄마의 말말말

작은 목소리, 천천히, 조금씩 말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늘 목이 아팠다. 하루 종일 타자만 친 것 같은데 언제 그렇게 말을 많이 한 건지.


 전화 취재는 얼마나 오래 했는지. 따뜻한 물을 마시며 목을 가라앉혔고 집에선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할 말이 많아


그렇게 생계형 수다쟁이가 돼버린 나는 지금 아기에게 많은 말을 쏟아낸다. 아기가 아침에 눈을 뜨면 시작이다.

쥬쥬야~ 잘 잤어? 해님이 쥬쥬야 잘 잤니~ 해서 엄마가 잘 잤어라고 말했어~

이유식 맛은 어때? 조금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자. 엄마가 이거 다 먹으며 귤 줄게~

쥬쥬가 오늘 기분이 좋네~ 엄마랑 책 보는 건 어때. 사촌 언니가 준 책이 있는데 엄청 재밌을 거야~


해맑은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기에게 나의 말은 끊이질 않는다. 권유형, 청유형, 강조형 등 말의 유형도 다양하다. 심지어 아기가 잠든 후에도 말은 계속된다.


오늘도 엄마랑 잘 놀았지? 코~ 잘 자고 내일 일어나서 엄마랑 또 재밌게 보내는 거야~

오늘은 분유를 많이 안 먹었으니까 내일은 많이 먹고 이쁜 똥 싸자~


육아 선배들은 엄마가 수다쟁이가 돼야 아이의 말문이 트인다고 격려한다. 나는 쥬쥬가 일찍 말하길 원하는 건 아닌데, 왜 해비 토커가 된 걸까.


피곤한 엄마, 더 피곤한 아기


이상하게 말을 안 하면 아기가 심심할 것 같다는 강박이 있다. 남편이 늦게 오는 날이면 아기와 둘이 있는 시간이 많은데 아기가 심심하면 어쩌나 조급해진다.


아기는 모든 게 처음인데, 심심할게 뭐 있겠나 싶지만 지루한 표정, 따분한 얼굴, 한숨 등이 날 부지런하게 만든다.


내가 귀찮아서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기의 성장발달에 자극이 부족할 것 같다는 우려다.

가끔 고요함을 넘어선 공허함, 정막감이 무섭기도 하다. 조용한 집, 차가운 분위기가 어두운 우울함을 몰고 와 나와 아기를 집어삼킬 것 같다. 그래서 목소리와 움직임은 점점 커지고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


쥬쥬야, 공 빠는 것보다 이게 더 재밌을걸? 이거 봐 이거 봐!


아기는 좋아하는 공을 양손에 쥐고 행복한 표정으로 침을 흘리는데, 말이 많은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느라 과호흡까지 온다.  




부모의 욕심대로 아기가 크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너무 많은 가이드를 제시한 건 아닐까. 그 수많은 말속에 단단한 목줄은, 채찍은 없었을까.


아기가 바닥을 쳐다보고 휘휘 손을 젓거나, 양손으로 머리와 귀를 뜯은 건 피곤하다는 표현이 아니었나.


오늘은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조금만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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