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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Nov 30. 2023

2023년 은 나에게

2023년 나의 삶은 선택과 정리가 공존했다

2023년 나의 삶은 선택과 정리가 공존했던 해였다. 익숙했던 직장과 이별했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배신은 나를 아프게 했지만, 뜨거웠던 7월을 차갑게 식혀 주기도 했다. 무덥고 습한 한 여름의 날씨와 다르게 나는 건조하고 단조롭게 새로운 길을 가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잘 살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잘 살고 있을까?



그동안의 나는 살아내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채워지지 않는 가슴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다 쓰지도 않았는데 화장품을 또 사기도 했고,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두 개, 세 개 사기도 했다. 일 년이 지나도 입지 않는 옷장을 채우는 것을 보고 밀려오는 허전함에 어떤 날에는 무너지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불필요한 것들로 내 방을 채웠나? 바보 같은 나를 만나는 날에는 픽 웃어 버리기도 했다.



물건을 산다고 해도 나를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한 나를 잡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채우고 싶었던 것은 물건들이 아니었고 그냥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봄이 끝나가는 여름의 시작쯤이었다. 나보다 남의 감정에, 행동에 더 집중하고 맞추려고 하는 나를 만나면서 나는 지쳐갔다.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날에는 나는 더 많은 쇼핑을 했다. 비싸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사들였다. 구매한 물건들을 하나 둘 정리할 때는 늘 허전했고 비슷한 물건을 발견할 때면 나는 늘 고개 숙였다. 내가 바보 같아서. 내가 미련해서.


 

그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순간 나는 쇼핑을 멈추었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방을 정리했다. 필요 없는 물건을 버렸고, 계절이 4번 지나갈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버렸다.


그러면서 내 마음도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별하지 못했던, 늘 붙잡고 살았던 남자친구와의 정리도 이때쯤 했다. 3년 간의 공부를 하면서 당시 만났던 남자 친구와 분명한 이별을 하지 않고 서로를 놓아버렸다. 서로 다른 환경에 다른 시간을 살다 보니 사랑했던 마음도 희미해져 갔다. 비겁했던 건 나였다. 그가 내게 맞추어 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공부에 지칠 때면 그에게 짜증을 냈다. 그가 내게 배려해 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공부를 핑계되면 모른척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명확한 이별의 정리를 하지 않고 연락이 뜸해지는 것으로 서로를 놓았다.


그랬던 그 사람을 올해 다시 만났다. 이별을 하기 위해서. 그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않았던 나는 늘 내 마음속 한 곳에 그를 묻어 두고 있었다. 그리웠던 건 아니다. 아직 사랑이 남았던 것도 아니다. 정리되지 않은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기에 익숙했던 그를 나는 보내지 못했고 보내지 못하니 다른 사람을 들이지도 못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에게 연락을 했다. 무심한 듯 익숙한 듯 ‘안녕’하면 카톡을 보냈고 그와 만났다. 술잔을 기울이며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예민했던 내가 상처를 줬었다고. 그때 미안했다고. 내 말을 듣던 그는 웃으며 너만의 잘못이 아니야, 나도 그때 회사 일로 힘들었다고 그래서 너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고. 미안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정리하지 못했던 3년을 정리했다. 깊어가는 밤과 소주잔 속에 비치던 불 빛에 추억도 함께 보냈다. 이별을 했다. 이별하지 못하고 그를 내 공간에 품고 살던 나는 완전히 보냈다. 그를.


23년은 나에게 그런 해였다. 정리하지 못했던 공간을 찾아 정리했고, 버리지 못했던 물건을 버리면서. 가볍게 가볍게 만들었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물건을 버리면서, 그와의 이별을 하면서 아플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간은 내 삶을 채우고 있었다. 물건을 버리면서 나를 다른 것으로 채웠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한걸음 나아갔고, 묵혀 두었던 꿈을 꺼내 채우고 있기도 하다.


불필요한 물건으로 방 가득 채웠던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꿈을 향한 첫걸음으로 글 쓰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꿈을 이루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 시작을 위해 내가 버려야 했던 것들에 미련은 없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래서 후회도 없다. 바보 같은 날이 모여 진짜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으니, 그 하나하나가 하루하루가 의미 있었던 날들이었다


잘 산다는 것은 나답게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평가가 아닌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삶은 선택과 포기가 공존한다. 우리는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을 다 할 때 나다워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2023년을 내 삶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후회는 없다.  2023년은 내 인생을 따뜻하게 했고 하루하루가 의미 있었던 한 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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