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나는 새로운 시작을 했던 해였다. 그동안은 시작을 두려워했던 내가 뭔가 시작을 했던 올해는 나에게 그런 해였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왜?라고 반문하겠지만 내 나름의 이유는 있었던 선택이었다. 처음 호텔로 가면서 관리체계를 부탁했던 대표와의 약속을 지켰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내게 이직이라는 선택을 하게 했다. 8월 뜨거웠던 태양과 이별하듯이 나도 회사를 그만뒀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은 나를 긴장하게 했지만, 긴장감은 또 내 심장을 뛰게 했다.
그렇게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일했던 조용한 분위기가 아닌 마치 시장 바닥 같은 그런 소란스러움이 가득한 새로운 회사였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는 하루 종일 긴장 상태였다. 주말이면 몸살이 날 만큼 나는 힘이 들었다. 그래도 하루하루 버티어내고 있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버티어내는 것. 버티는 것 나는 버티어 내고 있었다.
올해는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던 밤이었다. 출근을 위해서는 자야 할 시간을 훌쩍 넘기고 시간은 새벽으로 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눈은 말똥말똥했다. 자야 하는데, 속으로는 생각했다. 생각과 다르게 휴대폰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거다. 아마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직한 지 2달을 접어들고 있을 때, 일일마감을 하고 있었다. 마감표를 대표에게 보내야 퇴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날의 자금흐름표를 만들고 있었다. 틀어진 숫자가 있는지 없는지 온통 나의 눈과 머리는 일일자금현황표 안에 있는 숫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울리는 전화 소리에 잠시 휴대전화에 눈길을 주었다. ‘희’라는 이름이 나왔다. 희에게 연락이 올 일은 많지 않다. 1년에 두세 번 내가 진주로 희를 만나러 갈 때, 혹은 안부 연락이 다였다. 바뀐 계절에 건강한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경우, 혹은 친구의 결혼, 혹은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 그게 희와 주고받는 연락의 다였다. 그때 울리는 전화는 숫자에 집중하고 있던 나에게 사실 반갑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긴장된 상태에서 있다 보니 예민해진 탓도 있었다. 어쩌면 마감을 빨리하고 이 긴장감을 떨쳐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 어 희야’ 어제 만났던 친구인 듯 무심하게 받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누가 또 결혼하나, 얼마 남지 않은 미혼의 친구들 중 누가 결혼을 하나? 아 또 축의금 나가겠네, 언제 할지는 모르는 나는 자꾸만 나가는 축의금이 사실 아까웠다.
곧 이런 내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나는 알았다. ‘00이 동생이 죽었데’ 희의 목소리에 나는 그만 얼어붙어 버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아….’ 한 마디 했던 것 같다. 아.. 다른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보다 어리잖아’라는 말이었다. 바보 같았다.
진주로 올 수 있냐는 희의 말에 나는 망설였다. 이직한 회사도 걸렸고, 차를 팔아 버린지 벌써 몇 년, 버스로 왔다 갔다 해야 했기에 이동 수단도 걸렸다. 아니 아마 나는 가고 싶지 않았을 거다. 몸을 축낸다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었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친구의 동생의 죽음을 보면 몇 해전 보낸 동생의 죽음을 다시 내 가슴속에서 꺼내야 할 것을 알기에 가지 않았다. 나는 그 어둠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희의 전화를 받고 퇴근을 하고 씻고 누웠다. 그리고 00 이에게 부의금을 보내고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만 했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니깐 그냥 시간을 흘러 보내라고 그러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그래야 내일 출근할 수 있는데 생각을 하면서 잠을 자지 못한 것은 oo이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멀리 내 삶에서 떨어트려 놓았던 그 죽음이 다시 내 삶에 들어오는 것 같아서 잠이 오지 않았다. 슬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왜 또, 내 주변의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은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멀리 떠나 버렸나.
죽음은 나와 상관없어.라는 내 생각이 또 틀렸음을 알게 되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쩌면 내일 내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직장인이라는 이름 안에 묻어 두었던 내 꿈을 꺼내 들었다. 홀린 듯 배우고 싶었던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을 검색했고. S아카데미를 찾았고 상담 신청을 했다.
나 시작을 했네. 어쨌든 등산을 가려면 신발 먼저 신어야 하듯, 배우기 위해 시작을 했다는 것에 나는 기뻤다. 그동안은 이유만 찾았다. 할 수 없는 이유.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해도 결과는 없을 거라는 이유.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라는 이유. 이유만 찾았다. 해야 할 이유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랬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에서 생기를 찾았다. 그 생기에 나는 오랜만에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좋았다. 나도 살아 있네. 아직 심장이 뛰네.
사실 그동안 심장이 뛰네 보다는 그냥 살았다. 그냥 살아야 하니깐. 버티어 내야 하니깐, 내겐 엄마와 언니들이 있으니깐 그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했으니, 그래서 살아냈다.
그랬는데 뭔가 시작을 했다. 쿵쿵 심장이 뛰는 것도 느꼈다. 40년 내 인생에 가장 큰 일탈을 했다는 자부심이 심장을 쿵쿵 뛰게 했다. 그리고 잠들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2023년는 내게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하는 해였다.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본다면 이 시작은 일탈과 같은 거였다. 정해진 틀 안에 사는 것에 안정감을 느끼던 내가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의 2023년은 이직을 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했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심장이 쿵쿵 뛴다. 좋아서.